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마감한 금융시장 지수들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설 명절 연휴가 끝나고 7일 만에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연 지난달 31일, 원-달러 환율이 개장 초부터 급등했다. 연휴 기간 중 미국 주식시장을 강타한 중국 개발 인공지능 ‘딥시크 쇼크’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대상으로 한 25%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1일 토요일에 서명한다”고 1월30일(현지시각) 밝힌 영향이 겹쳤다. 이날 원화가치 하락 폭(원-달러 환율 상승 폭)은 멕시코 페소보다는 작았지만, 캐나다 달러보다 컸다. 우리나라가 트럼프 관세정책의 악영향을 그만큼 크게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명절 연휴 전인 지난달 24일 주간거래 종가에 견줘 14.7원 오른 1446.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오후 3시30분 주간거래는 21.4원 오른 1452.7원에 마감했다. 환율은 야간거래에서 2.8원 더 뛰었고, 뉴욕 차액결제선물환시장에선 스와프포인트를 고려할 경우 1457.8원까지 상승했다.
1월24일에 견줘 31일 야간거래 종가까지 원화의 미국 달러 대비 변동 폭을 계산하면, 원화 가치는 1.5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캐나다 달러 가치는 1.27%, 멕시코 페소 가치는 2.05% 하락했다. 원화 약세 폭이 멕시코 페소보다는 작지만, 캐나다 달러보단 큰 셈이다.
‘딥시크 충격’에 외국인 투자가들이 지난달 31일 삼성전자(7022억원)와 에스케이하이닉스(3932억원) 주식을 대규모로 순매도한 것이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두 종목을 포함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1조1756억원어치나 순매도한 것은 트럼프 관세정책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우려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 부과를 강행한 것을 두고 “삼성과 닛산, 혼다, 폭스콘 등 수천개 아시아 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정치적 긴장 고조 때 공급망을 멕시코와 캐나다로 옮겼는데, 다시 압박을 받게 됐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강도 높은 보호무역 정책을 예고한 것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등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에 타격을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제금융센터는 “노무라 아시아 수출 선행지수가 지난해 8월 103.7에서 올 2월 96.3까지 하락하며 향후 아시아 신흥국 수출 증가세 둔화를 암시했다”며 “에이치에스비시(HSBC) 아시아 전기전자 수출 선행지수는 아시아 신흥국의 정보기술(IT) 제품 수출 증가세 둔화가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 166억2천만달러에서 지난해 556억7천만달러로 급증했다. 이 점도 향후 대미 무역협상에서 큰 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수출은 연초부터 불안한 시작을 알렸다. 전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동향’을 보면,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3% 줄어든 491억2천만달러에 머물렀다. 수출이 감소세로 전환한 건 1년4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