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멕시코와 캐나다·중국을 향해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자 관련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우려하면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맞은 캐나다·멕시코·중국산 상품 총액은 약 1조3천억달러(약 1895조원)어치에 달한다. 2023년을 기준으로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 전체 수입의 약 28%를, 중국은 13.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내 수입품의 약 42%에 해당하는 제품에 고율 관세를 물리면 수출국들의 가격 경쟁력이 타격을 입겠지만 관세를 직접 납부하는 것은 미국 수입업체들이다. 또 관세 부과와 인상은 상품 가격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국 미국인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 경제학자들은 2018~2019년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중국에 물린 관세 부담이 상당 부분 미국 수입업체들과 소비자들에게 가해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전문가들과 언론은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를 예상한다.
이와 관련해 식탁 물가를 비롯해 미국 소비자들의 부담 증가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외교협회는 이날 낸 자료에서 유가는 갤런당 50센트까지 오를 수 있고,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 비용은 대당 최대 3천달러씩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멕시코는 미국 야채 수입의 60% 이상, 과일·견과류는 절반가량을 담당한다. 투자은행 아이엔지(ING)의 수석 국제경제학자 제임스 나이틀리는 뉴욕타임스에 “미국 가계당(4인 가구) 연평균 3342달러(약 487만원)의 부담이 추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 전반적 경기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조처는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심각했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집권한 트럼프의 자기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 “모든 물가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 세무 및 컨설팅 회사 이와이(EY)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그레고리 다코는 관세가 지난해 12월 연간 2.9%였던 인플레이션을 올해 0.4%포인트 상승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코는 또 지난해 2.8% 성장한 미국 경제가 올해 1.5%, 2026년에는 “수입 비용 상승으로 소비자 지출과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2.1%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멕시코·캐나다·중국 모두 보복 관세 부과 등 맞대응을 천명하면서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미국철강노조는 성명을 내어 “연간 약 1조3천억달러어치 상품이 미국~캐나다를 오가면서 140만개의 미국 일자리와 230만개의 캐나다 일자리를 떠받친다”며 관세가 캐나다와 미국 모두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안에서도 존 슌 상원 원내대표, 스티브 데인스, 미치 매코널, 존 코닌, 마이크 크레이포 상원의원 등이 이번 관세 부과에 우려를 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강수를 둔 것은 우선 지지 기반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 진영에 공약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또 국내외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의 파괴력을 과시해 다른 나라들도 고분고분하게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도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가 강조해온 관세 수입을 늘리려는 목적도 드러난다. 10년간 4조6천억달러 규모의 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로 세수 감소분을 벌충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경제 참모인 피터 나바로는 시엔비시(CNBC) 인터뷰에서 “관세 수입만으로도 감세 재원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소득세 중심의 세금 체계를 관세 중심으로 전환하려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 31일 기자들에게 “단기적인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관세 폭탄’이나 ‘관세 전쟁’이 장기적으로 미국에 유리하다고 보고 확전을 꾀할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