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혜, '무죄' 재심 판결 후 2주 만에 가출
2018년부터 망상 증세 심해져 '행정입원'
25년간 독방서 지내며 증상 악화 가능성
박준영 변호사 "꿈도 잃어...너무 안타까워"
2018년부터 망상 증세 심해져 '행정입원'
25년간 독방서 지내며 증상 악화 가능성
박준영 변호사 "꿈도 잃어...너무 안타까워"
24년 10개월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47)가 1월 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신혜는 앞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완도=조소진 기자
"김신혜요. 나 김신혜예요." "통화료는 60초당 167원, 계속 통화를 원하시면···."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1월 26일. 1541(수신자 부담 전화) 번호로 걸려온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여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전화가 끊길까 봐, 김신혜(47)는 3초 남짓 자신의 이름을 두 번이나 말했다. 1월 20일 오전 고향인 전남 완도 집을 나간 뒤 다음 날 서울 강남구 삼성1파출소에서 어렵게 찾아 한 국립병원에 응급입원을 시켰다는 얘기를 들은 지 5일 만이었다. 김신혜는 재심 무죄 판결로 24년 10개월(9,069일) 만에 살인자 꼬리표를 떼고 석방됐지만, 망상 증세로 2주 만에 입원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연관기사
• '김신혜' 9069일 만에 이름 찾았다..."각본 짠 검경 아무도 사과 안해"(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815030002723)
김신혜의 구체적인 병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병원 측은 김신혜의 망상 증세가 중하다고 판단해 응급입원에서 행정입원으로 전환해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김신혜는 아무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갑자기 자신의 동생 김후성(43)이 죽었다고 하고 자신이 특수 임무를 받고 새로 태어나 중국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엉뚱한 얘기를 했다. 김신혜를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김신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며 "재심에서 무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칙'과 '인권'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던 김신혜가 꿈과 목표를 다 잃어버린 상황이 돼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 16일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김신혜가 동생 김후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김후성 제공
김신혜의 망상 증세는 24년 10개월간 독방에서 생활하며 비롯됐다는 게 박 변호사 판단이다. 그는 노역도 하지 않고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긴 시간을 홀로 지냈다. 김신혜에게서 망상 증세가 보이기 시작한 건 2018년 즈음부터라고 한다. 동생 김후성은 "환청이 들리거나 누군가 날 감시하는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가 왔었다"며 "이후 증세가 점점 심각해져 가족 접견도 거절해 수년간 만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출소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2024년 12월 16일 작성)에도 비현실적인 얘기가 70% 이상이나 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5년 재심 개시가 결정됐지만 검찰이 이에 불복하면서, 본격적인 재심 재판은 2019년에 시작됐다. 김신혜는 이 기간 동안 교도소에서 크게 좌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출소 다음 날인 지난달 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2015년 11월 18일, 재심 개시 결정을 들으러 청주교도소에서 해남지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가장 힘들었다. 재심을 하기로 했는데도 형집행정지는 이뤄지지 않고 국가는 나를 또 가뒀다. 그때가 정말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가 이즈음 외부에 보낸 편지 곳곳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난 왜 태어났을까"라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신문 기사 형광펜 칠하며 의지 보였던 김신혜
김신혜가 수감 생활 내내 망상 증세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2014년 9월 24일, 김신혜가 보낸 편지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널리 알리고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는 변호사들에게 "내가 인권을 가진 인간인지 아닌지 나는 알고 싶다. 반드시 알아야겠다"며 "'원칙'과 '인권' 앞에 타협이나 양보란 있을 수 없다"고 적었다. 김신혜는 특히 빨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며 "적법 절차라는 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이 안으로 단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가 없다. 국민의 인권을 해치는 공권력 앞에 변호인은 단단히 막고서는 '문지기'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신혜가 박준영 변호사 등에게 보낸 편지 일부. 2012년 8월 15일 자 신문 기사가 스크랩돼 있다. 김신혜는 '검사나 당사자의 말을 듣고 과거의 일을 법률적인 사건으로 정리해 법원에 전달한다'며 검사의 역할을 따라 적었다. 박준영 변호사 제공
김신혜가 2015년 9월 적은 편지. 사법기관을 향해 "세상을 한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신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치욕이 아니라 영광의 역사"라고 적었다. 박준영 변호사 제공
법을 공부한 적 없는 김신혜는 독방에서 신문 기사를 통해 자신이 보장받아야 했던 형사사법절차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가 보낸 편지에는 '동행거부 권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불법 체포(2006년 7월 7일)' 등 스크랩 기사에 형광펜을 칠한 흔적이 가득했다. 2012년 8월 15일 지면에 실린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칼럼은 정자체로 따라 쓰기도 했다.
김신혜가 24년 10개월 만에 출소하던 1월 6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려고 곁을 지켰다. 하지만 누군가를 믿기 어려워 오랜 시간 스스로를 가둬버린 김신혜는 이들의 응원도 무서워했다. 무죄를 선고한 재심 재판부 판단에 검찰이 항소한 상황이라, 국가도 김신혜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국립법무병원(충남 공주치료감호소)에서 근무했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형이 확정된 사람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치료 감호소로 갈 수 없고, 치료 감호형을 받기 위해 재판이 이뤄진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신혜가 교도소에서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신혜는 장흥교도소를 걸어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게 수십 년 걸려야 하는 일인지···." 김후성은 매일 누나의 이 말을 곱씹으며 한탄했다. "누나는 지금 자기는 김신혜가 아니라고 해요. 출소하면 누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는데, 정말 오래 걸릴 것 같네요."
김신혜는 2014년 재심을 준비하며 재심 결정이 받아들여지고 형집행정지가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로 '치맥'를 적었다. 박준영 변호사 제공
24년 10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김신혜의 남동생 김후성이 지난달 6일 전남 장흥교도소 앞에서 누나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장흥=조소진 기자
2014년의 김신혜는 동생 김후성에게 "살아있어 고맙다. 사랑한다 내 동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2025년의 김신혜는 김후성이 자신이 동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 제공
연관기사
• 검찰·경찰 "김신혜가 수면제로 죽였다"면서 증거도 못 찾고 재판 넘겨(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415470003320)• "김신혜 사건, 수사 과정 전반이 위법"...재심 전문 변호사도 화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815330004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