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법 주52시간 적용제외 두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노동자들 “반대”
“삼성 위기는 경영실패와 조직문화 탓
적용제외땐 야근 강요 회귀…인재 유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노동자들 “반대”
“삼성 위기는 경영실패와 조직문화 탓
적용제외땐 야근 강요 회귀…인재 유출”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의 민원을 반영해 일정 소득 이상의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주 52시간제)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도 3일 이재명 대표가 주재하는 ‘정책 디베이트’를 열어 적절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특별법 추진 배경에 반도체 산업의 위기 타개 필요성이 깔려 있다. 하지만 2일 한겨레가 인터뷰한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에 반대하며,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위기 극복의 해법이 아니라고 밝혔다. 특히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위기의 원인은 경영진의 전략 실패와 현장 의견이 묵살되는 조직 문화라고 지적했다.
위기 해법은 근로시간이 아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10여년 근무한 수석연구원 ㄱ씨는 한겨레에 “연구개발은 단순히 시간만을 투입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우수한 인재들의 자발적 의지와 목표 의식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20~30년 전 사고방식으로 근무시간만 늘리는 해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발상”이라며 “현재 위기를 근무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삼성 반도체의 위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ㄴ씨도 “삼성 반도체가 잘나갔던 2017~2018년이나 지금이나 직원들은 똑같이 일하고 있다”며 “근로시간 부족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직원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주 70~80시간 일하는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와 경쟁에서 이기려면 그만큼의 근로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며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를 주장한다. 하지만 같은 근로시간 규제를 받는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추월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를 모두 22번 사용했지만 에스케이하이닉스는 한번도 쓰지 않았다.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메모리반도체 개발을 담당하는 10년차 연구원 ㄷ씨는 “현재 사용 중인 1개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로도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충분히 휴식이 보장돼 업무 몰입도도 높다”며 “사내에서도 바쁘다고 손꼽히는 부서에 꽤 오래 근무했지만 주 평균 52시간을 넘겨 일해야 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섬식품노조 에스케이하이닉스기술사무직지회에 따르면, 연구개발 노동자의 지난해 평균 노동시간은 주 43시간에 그친다.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삼성 반도체 위기의 원인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인원 축소 등 경영진의 전략 실패와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수직·강압적 조직 문화를 꼽는다. 삼성전자는 2019년 에이치비엠 개발 인력을 줄였는데, 그 배경으로 정현호 사업지원티에프장(부회장)의 재무 중심의 리더십이 꼽힌다. ㄴ씨는 “당장의 성과만 보고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전장 반도체 연구조직을 없앴다가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이 잦았다”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미래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원 ㄹ씨도 “‘3+3=6’이라고 보고해도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을 거치면서 ‘8’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며 “(경영진이)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지만, 그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회귀?
현재 반도체 특별법안은 ‘주 52시간제 적용제외’를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 시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자발적 동의가 되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ㄱ씨는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 제도가 시행될 경우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고 공언하겠지만, 성과 보상 제도에 대해서는 직원들과의 논의보다는 회사가 일방적 통보를 해왔기 때문에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라며 “적용제외도 실제 보상을 기대하며 직원들이 동의하기보다는 전체 분위기에 끌려 반강제적으로 모두 동의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보상의 기준 또한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되는 경우 주 52시간제 시행 이전의 ‘야근 강요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ㄹ씨는 “주 52시간제 시행이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주 7일 근무 금지’였다”며 “‘월화수목금금금’을 경험해본 입장에선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보상 수준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노동환경까지 안좋아지면 인력유출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ㄴ씨는 “보상 수준이 떨어져 경쟁사로 인력 유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회사는 인재들을 붙잡는 대신 쥐어짤 생각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ㄱ씨 역시 “제도가 시행되면 젊은 인력들은 미국·일본·대만이나 다른 이공계 분야로 이동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법안에 규정된 주 52시간제 적용제외 대상은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 종사자에 한정돼있지만, 다른 직종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연구개발 업무를 하는 ㅁ씨는 “반도체 산업은 연구개발·생산·설비 등이 협력해 업무가 이뤄져 연구개발 직군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는 다른 직군과 협력업체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경영진의 미래전략 실패로 초래된 위기를 노동자들을 갈아 넣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연구개발을 통한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력을 더 뽑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 1위의 반도체 장비업체 에이에스엠엘(ASML)의 한국지사 노동자들로 구성된 화섬식품노조 에이에스엠엘코리아지회 관계자는 “에이에스엠엘이 극자외선(EUV) 공정으로 기술을 혁신할 때 인력을 본사기준 1만명에서 3만명으로 늘리는 등 인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며 “세계적으로도 장시간 노동을 시키면 임금이 아무리 높아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인력을 통해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