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갈이의 유혹-중국 자본의 역습] <중> 첨단산업에 드리운 中 그림자
게티이미지뱅크
대구 소재 중소기업 A사는 중국 1위 협동로봇 기업 아우보가 생산한 로봇 팔을 모듈·부품 형태로 쪼개서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한다. 이후 로봇 팔에 케이스, 받침대 등 부속품을 덧붙여 ‘메이드 인 코리아’ 딱지를 달고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다른 국내 로봇 기업 B사도 중국 시아순의 로봇 팔을 부품 형태로 들여온다. B사는 조립한 시아순 하드웨어 기반 협동로봇 시스템을 아직 국내에만 팔고 있지만 대미 수출 목적으로 인증 절차(UL)를 밟는 중이다. 아우보와 시아순의 최고경영진은 국내 회사들과 생산 협력을 논의할 때부터 미국의 ‘관세 폭탄’ 우회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제품의 한국산 ‘택갈이’ 유혹의 그림자가 로봇,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도 번지고 있다. 중국 로봇 기업은 직수출이 어려운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이런 식의 협업이 미국 우회수출 조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A사는 위탁생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지난 2023년 아우보와 기술 제휴를 맺었고 지난해 상반기까지 생산 시스템, 조립 기술 등을 이전받았다. A사는 아우보의 요청 아래 자신들이 조립하지 않은 한국 내 아우보 협동로봇에 대해서도 사후관리(AS)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B사는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로봇제조센터 기공식을 열었는데 이 자리엔 류즈쥔 시아순그룹 부총재를 비롯해 시아순 본사 중역들이 대거 참석했다. B사와 시아순이 단순 부품 거래 이상의 특수 관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이 한국 업체에 손을 뻗는 것은 로봇 하드웨어의 원산지를 바꿔 달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미국은 협동로봇을 포함한 산업용 로봇을 수입할 때 관세율 2.5%를 부과하고 있는데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중국산 산업용 로봇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미국 내 제조업 투자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중국산 로봇에 대한 25% 관세를 철회했지만 트럼프 2기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상수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협동로봇이 배치되는 전기차, 반도체 등 공정은 미국의 전략산업”이라며 “미국 정부가 자국으로의 중국산 협동로봇 진입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A사와 B사는 중국산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연산 2만대에 달하는 중국 협동로봇 기업의 제품 가격은 대당 1000만원 아래에서도 형성되는 반면 연산 1000대 수준인 국산 제품 가격은 2500만~3000만원이다. 저렴한 협동로봇에 대한 국내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중국산 하드웨어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우회수출 지적에 대해 A사 대표는 “총 부가가치 가운데 한국에서 창출하는 비율을 51%로 맞춰놨다”고 말했다. B사 대표는 “1500만~2000만원짜리 로봇 팔에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 등 이것저것 붙이면 최종 가격이 1억원을 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미국 정부가 중국산 우회수출로 규정한 ‘알루미늄 포일’ 사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로봇산업협회 관계자는 “추후 미국 현지 협동로봇 업체들이 A, B사 제품에 대해 사실상 중국산 아니냐고 지적하고 나서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