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유럽 벗어난 첫 남미 출신 교황
낡은 격식보다 인간성 본질 중시
동성애자 환대·이혼자 영성체 등
이슈놓고 교회 보수파와 갈등도
유럽 벗어난 첫 남미 출신 교황
낡은 격식보다 인간성 본질 중시
동성애자 환대·이혼자 영성체 등
이슈놓고 교회 보수파와 갈등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11월 바티칸 성베드로성당에서 열린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순금이 아닌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거는 등 그의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얻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세계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지 시각 21일 오전 7시 35분 영면에 들었다. 교황의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에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는 가운데 평생을 ‘약자 편에 선 목자’로 살아왔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자취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교황청은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절차인 ‘콘클라베’ 준비를 위해 전 세계 추기경들의 소집 계획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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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약자 곁에…'빈자의 아버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속명)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철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이민 가정의 막내로 자란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문과 신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화학자가 되기를 꿈꿨던 그는 산호세 플로레스성당의 고백실에서 신의 부름을 받고 그때부터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7세 때다. 성직자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인 22세에 예수회에 입문했으며 이후 신학·철학·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9년 12월 13일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아르헨티나 내에서 주교와 대주교로서 꾸준히 사목에 매진했다. 경제 위기와 사회 불평등에 맞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교계에서 그는 ‘겸손과 청빈’의 상징으로 통했다. 2001년 추기경에 선출된 직후에도 로마행 비행기를 타는 대신 국가 부도(디폴트)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빈민을 위해 비행기 삯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2013년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뒤에도 사치를 멀리하고 청빈한 삶을 이어갔다.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해맑은 표정으로 성베드로성당 발코니에서 신자들과 만나 “추기경단이 지구 끝에서 교황을 찾아내 내가 여기에 섰다”는 위트 있는 말을 남기는가 하면 ‘교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로마의 주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역대 교황 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프란치스코는 평생 청빈한 삶을 살면서 세속화된 중세 가톨릭 종교계에 충격을 던진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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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계 이례적 개혁파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전통을 계승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동성애·피임 등 성·생명 윤리 문제에서는 교회의 기본 가르침을 단호히 지켜왔다.
추기경으로 재직할 당시인 2010년 아르헨티나에서 동성애 혼인이 처음 합법화되자 그는 전국 성직자들에게 이 법안에 반대할 것을 촉구하며 “이 법안이 가정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동성애 커플의 자녀 입양 허용에 대해서도 “어린이들이 하느님께서 부여한 인간적 성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2006년 조건부 낙태 허용 법안이 제출됐을 때는 정부의 인간 존엄성 보호 의지 부족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교회 전체에 인간 존엄성 수호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 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했지만 이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23년 이탈리아 로마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교황은 “동성애자들도 가족 안에서 권리를 갖고 있다”며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동성애자도 하느님의 자녀로 가족의 일원이 될 권리가 있다”면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비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해 보수파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가톨릭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으로 가톨릭계에서는 이례적인 개혁파로 분류됐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뿐 아니라 피임,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불법 이민 문제 등에 전향적이었다. 교회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였다. 가톨릭의 식민 지배 가담과 사제의 성추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던 게 대표적이다. 그는 성직자 특권과 성직자 우선주의 문화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하며 가톨릭을 넘어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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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콘클라베 착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만큼 교황청은 새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도좌 공석(sede vacante)’ 기간 동안 교황청은 모든 주요 행정절차를 정리하고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약 15일에서 20일의 유예 기간을 거쳐 전 세계 추기경들이 로마에 집결할 수 있도록 하며 이 기간 동안 추기경들은 자신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콘클라베 참석 준비를 한다.
◇추기경 소집 및 비밀 엄수 서약=유효 선출권을 가진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은 정해진 장소, 주로 시스티나성당 내의 회의실에 모인다. 이 자리에서 추기경들은 외부의 간섭 없이 오로지 신앙과 도덕적 판단에 따라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비밀 엄수와 맹세를 한다. 이 서약은 모든 투표 내용과 회의 과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절차로 엄격한 보안 규정 아래 진행된다.
◇비밀 투표 절차=각 추기경은 ‘나는 교황으로 뽑는다(Eligo in Summum Pontificem)’라는 문구가 인쇄된 투표용지를 받아 자신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기입한다. 투표는 완전한 비밀 보장하에 이뤄지며 추기경들은 자신들의 투표지를 접어 집표함에 넣는다. 모든 표는 즉시 폐기 처리되며 개표 기록은 철저히 봉인돼 교황청 비밀문서고에 보관된다.
◇과반수 득표 요건 및 재투표 절차=새 교황 선출을 위해서는 전체 추기경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만약 첫 번째 투표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정해진 간격을 두고 여러 차례의 재투표가 진행된다. 필요에 따라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진 후 추가 투표가 실시되며 최종적으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모든 절차는 신중한 논의와 깊은 기도를 바탕으로 진행되며 서두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최종 발표와 교황 수락 의식=최종적으로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후보가 당선되면 수석 추기경 또는 최고 서열의 추기경이 새 교황에게 교황직 수락 의사를 묻는다. 당선자는 스스로 새 교황의 이름을 선택하며 교황 전례원장이 증인 사제와 함께 공식 문서를 작성한다. 그 후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의미인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이라는 선언과 함께 전 세계에 새 교황의 탄생이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