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 세월호 참사 11주기 ]
4월 16일 당일 구조돼 5시간만에 이송
'내 아이' 이송 지연 알고자 시작한 소송
마지막 세월호 참사 소송 당사자로 남아
"다른 참사 유족들 지켜줄 선례 되길"
4월 16일 당일 구조돼 5시간만에 이송
'내 아이' 이송 지연 알고자 시작한 소송
마지막 세월호 참사 소송 당사자로 남아
"다른 참사 유족들 지켜줄 선례 되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전인숙씨가 두살 무렵이던 경빈군을 품에 안고 있다. 전씨 제공
"원고들은 망인이 살아 있었음을 전제로, 이송이 지연돼 사망에 이르도록 했다는 책임을 묻기 위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고 다퉈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태의 피구조자이더라도 발견 즉시 신속하게 의료기관으로 이송해야 하고, 의료진의 처치와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묻고자 한 것입니다." (임경빈군 유족측 항소 이유서)
고 임경빈군 어머니 전인숙(52)씨는 세월호 참사 관련 마지막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유족이다. 인숙씨의 소송을 제외하면 세월호 참사와 직접 관련된 민형사 소송은 모두 끝났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바다에서 건져진 경빈이가 왜 5시간가량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해야 했는지 그 과정이라도 알고 싶어서였다.
물어도 대답 없는 5시간의 비밀
2019년 10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 결과, 임군은 4월 16일 당일 오후 5시 24분에 구조돼 6분 뒤 3009함에 인계됐다. 하지만 헬기가 아닌 경비정 3척에 옮겨 이송되다가 오후 10시 5분이 돼서야 병원에 도착해 사망 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임경빈군 구조 타임라인. 민사소송 1심 판결문
임군 부모가 소송을 택한 것은 '왜 이송이 늦어졌는지' 대답해주는 곳이 없어서였다. 인숙씨는 2022년 국가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 이재두 전 3009함 함장을 상대로 이송 지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구조 직후 아이가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거나,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부모를 괴롭혔다.
그러한 마음을 떨치고자 사고 당시 상황을 명백히 알고자 했는데 정보를 얻기는 너무 어려웠다. 자료를 모아 조사를 요청하는 데까지 5년 6개월, 사참위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8년이 걸렸다. "처음엔 '우리 아이'가 왜 구조 후 4시간 41분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정부와 해경 등은 임군 부모가 주장하고 있는 정신적 피해가, '아이가 사망에 이르게 된 책임'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해경 등은 아이가 이미 숨진 상태였으며, 숨진 아이를 늦게 이송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이며, 재판이며 모두 어려운 인숙씨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재판 내내 아이의 피부 온도가 어땠고, 어떤 자세로 물속에서 올라왔는지 등 '아이가 구조 직후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한 공방만 오래 오갔다.
다행히 1심 재판부는 '구조 지연의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이 아닌, 이송이 늦어져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재판'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인숙씨는
'무엇보다 이 엄마가 원하는 건 대체 4시간 41분간 뭘하느라 이송이 늦어졌는지 알려달라고 하고 있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는 재판부의 일갈이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김승곤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일 “대한민국은 원고들(임군 부모)에게 각 1,000만 원씩 총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기울인 주의 의무 위반이 없다'면서 국가배상법에 따라
김 전 청장 등 4명의 개인적인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2022년 10월 30일 구조대원들이 이태원 참사 사상자를 이송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세월호 후에도 계속된 참사를 보며
인숙씨는 세월호 이후에도 이어진 다른 참사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태원 유족들이 보내온 참사 영상과, 뉴스 보도는 경빈이가 세상을 떠나야 했던 사건과 꼭 겹쳐보였다. 오송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명'이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숙씨는 이어진 참사들이 소송을 계속해야 할, 힘이 됐다고 했다. "참사들을 지켜보면서 실무자들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책임'과 '기본'을 가볍게 생각한 이들이 만든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제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자 시작했던 소송이었지만, 이 재판이 '선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초 임군 사건의 항소심 재판 선고일은 공교롭게도 참사 11주기인 4월 16일로 정해졌었다. 그러나 임씨 부모측은 선고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가 더 책임 있는 판결을 해줄 것이라는 데에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기일에 선고를 듣기에는 너무 힘이 들것 같아서였다. 항소심 선고 재판은 다음 달 21일 열린다.
마지막 '세월호 소송'을 진행 중인 고 임경빈군 어머니인 전인숙(맨 왼쪽)씨가 지난 14일 임군의 기일을 이틀 앞두고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마련된 '기억교실'(4·16생명안전교육원 내)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안산=홍인기 기자
몸이 아픈 기일, 세월호 해설사로 활동
지난 11년은 인숙씨에게 어떤 세월이었을까.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는 아이를 바다에서 잃어야 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겐 그 시절을 다시 겪는 것처럼 아픈 드라마였다.
'예은아빠' 유경근씨는 페이스북에 "한 시간 내내 대성통곡을 했다"며 "(애순 부부는) 그렇게 살아진 게 떠난 자식에게 미안하고, 이렇게밖에 못 살아진 게 남은 자식에게 미안했을 것"이라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인숙씨는 이 드라마를 봤는지 묻자, 내내 똑 부러지던 어투의 인숙씨는 "아이유가 왜 그렇게 연기를 잘 해가지고"라고 농담을 꺼낸 뒤 "애순이가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모습,
기일만 되면 아파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참 내가 겪은 일 같았다
"며 목이 메였다. 이사를 갔지만, 경빈이가 어린 시절 쓰던 작은 수저도 아직 찬장 속에 있다.
고 임경빈군 어머니인 전인숙씨가 지난 14일 임군의 기일을 이틀 앞두고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기억교실'(4·16생명안전교육원)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기억교실에 마련된 임경빈군의 자리에서 바라본 인숙씨. 안산=홍인기 기자
'세월호 해설사'로 활동하는 인숙씨는 매년 찾아오는
함께했던 부모들이 힘들어 하나둘 떠났고,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할 사람들은 줄어가서, 인숙씨는 점점 더 바빠졌다. "잘 이야기해야 하는데, 가끔은 눈물이 나서 양해를 부탁하기도 해요. 오늘은 제 아이를 떠나 보낸 날이라고···."
아들을 잃은 충격은 경빈이의 여동생인 딸에게도 무슨 일이 생길까, 전전긍긍하게 했다. "고3 수능 끝난 뒤, 새벽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아이에게 큰소리를 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이가 처음 그 말을 꺼내더라고요.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면서."
또 명절이면 경빈이와 찾아갔던 친정은 경빈이 없이 가는 것이 힘들어 자주 찾아뵙지도 못한다. 친정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기일이면 조용히 경빈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딸을 찾아왔다고 했다. "올해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챙겨주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용돈만 챙겨보내 주셨는데···."
인숙씨는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기억교실에 학생들을 추모하는 기록물들이 놓여 있다. 뉴스1
점점 잊혀가는 그날, "잊지 말아주세요"
세월호 참사는 잊히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시청 '세월호 기억관'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두 시간 남짓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세월호 기억관을 찾는 이는 딱 한 명뿐이었다.
관심을 갖고 다가온 외국인 두 명은 '무슨 장소인지'를 묻더니 자리를 떠났고, 한 청년만 고요히 기억관을 찾아 묵념했다. 주변에서 봄을 만끽하는 이들에게 기억관은 마치 보이지 않는 듯했다.
"작년(10주년)이 아마 국민적 관심을 받는 사실 마지막 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때도 유난히 봄 추위가 오래가서, 벚꽃이 늦게 피었는데 올해도 그렇네요.
수학여행을 떠났던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올해도 16일이 딱 수요일이더라고요
." 14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기억교실에서 다시 한번 인숙씨를 만났다. "다크 헤리티지(부정적 문화유산)가 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어 뒤에 핸드폰 커닝하지 마시고요."
쾌활하게 농담을 던지며 열한 명 남짓한 기억교실 수강생들을 이끌던 인숙씨는, 세월호 참사 설명 영상을 켜준 후 복도로 나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숨을 골랐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인숙씨 바람은 다른 이들은 부디 자신과 같은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정치도, 법도 모르던 자신이 이런 삶을 살게 될 줄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사고가 일어나면, 그 어떤 순위보다 생명이 우선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송이 판례가 돼서, 저처럼 힘들게 내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자료를 모아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이들은 싸우지 않고 그냥 오롯이 아픔에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들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