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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신의 책임자
공식적인 정치 수단 자리 잡은 '여조 경선'
성연령비도 반영 안 한 제멋대로 조사
"정치적 의사결정 값싸게 외주화" 비판

편집자주

의심은 가는데 확신은 할 수 없다. 수상한 여론조사 얘기다. 민심의 바로미터라던 여론조사는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미심쩍은 결과물로 신뢰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과연 여론조사는 조작이 가능한 것일까. 한국일보는 지난 두 달 여론조사 시장의 실태를 파헤치며 정치권과 조사기관의 불법 편법 공생 관계를 확인해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확정된 지금,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다시금 경계하고 조사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때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2002년 11월 16일 새벽 국민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에 전격 합의한 뒤 활짝 웃으며 얼싸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당이 선거 출마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①중앙당 지도부가 결정하는 '전략 공천' ②당원 또는 일반 국민이 투표하는 '예비 선거' ③그리고 '여론조사 경선'이다. 전략 공천은 계파 공천·낙하산 공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고, 예비 선거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여론조사는 적은 비용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후보를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론조사 경선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끈 건 2002년이다. 당시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정몽준 후보단일화를 위해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했다. 당원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각 50%씩 경선에 반영했는데, 이를 통해 노무현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이는 대선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특히 당내 조직 기반이 없는 신인에게 '도전의 기회'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경선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대선 후보뿐 아니라 국회의원 경선, 각종 공직 후보 선출 등 선거에 폭넓게 활용된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권리당원 투표 50%와 국민 여론조사 50%를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여론조사의 경우 안심 번호로 100만 명을 추출한 뒤 2개 여론조사 업체가 50만 명씩 여론조사를 진행해 합산한다. 국민의힘은 1차 예비경선은 '여론조사 100%', 2차 경선부터는 당원 50%와 여론조사 50%를 반영해 최종 후보 2명을 추릴 방침이다.

정당이 외주화한 여론조사 공천...사실상 '주사위 던지기'

정영환(오른쪽 두 번째)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해 2월 1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6차 경선 지역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그러나 여론조사엔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나 참값을 추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된 결정 방식으로 포장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히 오차범위 내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면 이는 '주사위 던지기'를 한 것과 다를 게 없다"며 "여론조사에 그런 무거운 임무를 맡기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 경선 여론조사를 진행했던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여론조사로 돈을 벌고 있지만, 사실상
정치적 의사결정을 정당이 우리에게 값싸게 외주화하는 것
"이라고 꼬집었다.

일반 국민의 여론이 공천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점도 또 다른 비판 대상이다. 정당 내부 정책이나 정체성과 무관한 단기적 인지도 경쟁 결과라는 문제의식이다. 당원들도 당내 의사결정에 대한 소외감과 정당의 민주적 운영 원칙이 훼손된다는 불만이 상당하다. 실제 여론조사를 정당 후보 공천의 주요 기준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뿐이다.

정당 내에서도 불만...특정 연령층 과대 대표 등 특정 후보 밀어주기

당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지난해 3월 12일 국회에서 공천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을 경선에서 하 의원은 이혜훈 전 3선 의원에게 졌다. 연합뉴스


주먹구구식 조사로 경선 불복과 당내 분열을 초래하는 일도 빈번하다.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여론조사 설계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하태경 의원에게 승리를 거둔 서울 중성동을 경선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1,001명의 응답자 중 60대 이상 샘플은 66.8%(669명)에 달했지만, 실제 해당 지역 유권자 중 60대 이상 비율은 31.1%에 불과했다. 특정 연령층 의견이 실제보다 두 배 이상 과대표된 것이다. 40대 이하 응답 역시 실제 유권자 비율(51.4%)에 크게 밑도는 14.4%(144명)에 불과했다.

남녀 성비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은 남성이 47.5%, 여성이 52.5% 거주하는 곳인데 여론조사에 응답한 남성은 58.9%, 여성은 41.1%였다. 국민의힘은 성연령 가중치도 부여하지 않은 채 ‘숫자’만 채우고 조사를 마감했다.

'반영 비율'을 조정, 특정 후보를 몰아준다는 불만도 상당하다. 민주당의 지역 관계자는 "지난 총선 때도 전남의 한 지역구 경우에는 반영 비율이 당원 50%, 일반 50%에서 막판에 일반 100%로 바뀌었는데, 이 역시 특정 세력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경선에서 당원 여론조사와 일반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은 지역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정하는데, 이걸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한다는 것이다.

"공천 시스템, 경선 방식 개선 필요해"



전문가들은 경선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예비후보들을 대상으로 당내 합동 연설회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며 “정책 평가 요소를 고려한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 여론조사 수행 기관의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1화 검은 커넥션
    1.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6040002864)
    2. • 여심위, 불법 실태 파악 못한 채..."심증만으론 조사 어렵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2300002753)
    3. • 美에서 퇴출된 ARS 여론조사 韓에선 대세...이유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016240000592)
    4. • ARS 기관 대부분 연 매출 1억 남짓..."선거 물량 잡아야 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0400004131)
  2. ② 2화 '꾼'들이 있다
    1. • 태양광 비리 쫓던 檢, '여론조사 조작' 꼬리를 찾았다...무더기로 발견된 휴대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719090000568)
    2. • '꾼'에게도 급이 있다...누가 당원 명부 최신판을 쥐고 있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918310004424)
    3. • 정치인 위 '상왕' 노릇 여론조작 브로커...고발해도 변한 게 없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611420005837)
  3. ③ 3화 불신의 책임자
    1. • 여론조사 공천 OECD 중 한국이 유일한데…'어디 맡기고' '어떻게 조사하고' 죄다 깜깜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112250000457)
    2. • "돈 주고 후보 선출 떠넘긴 꼴" "사실상 주사위 던지기"...불만 쌓이는 여론조사 경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100550003002)
    3. • '고성국TV' '뉴스공장' 편 가르기 여론조사 뚝딱…극단의 진영 스피커 ‘유튜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122130000559)
    4. • 여론조사 경선 개선 연구 '0'...양당 정책연구소는 '선거 승리 전략'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417440003355)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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