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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방법원이 19일 새벽 3시에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 과격 지지자들에 의해 부서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새벽 3시께,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무법지대가 됐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구속영장 발부에 항의하며 유리창과 외벽을 깨부수고 법원 건물 안으로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찾으러 다니는 등 난동을 벌였다. 시위대가 헌법기관인 법원을 공격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윤 대통령이 그간 법치를 부정하고 사법체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지지자들을 선동해온 결과인데, 극우 세력의 준동이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며 뿌리째 뒤흔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은 이날, 집단불법행위를 벌인 윤 대통령 지지자 89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이날 새벽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린 46명, 전날 저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이 탑승한 차량을 파손하고, 수사관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40명,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 담을 넘어 무단침입한 3명이다. 경찰은 불법행위자 전원을 구속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윤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 줄 것”을 당부했고,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불법 폭력행위는 그 누구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 더 이상 물리적 충돌과 폭력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지지자 일부는 헌법재판소로 몰려가, 경찰이 봉쇄에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폭력의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폭력 사태를 벌인 이들을 옹호하며 오히려 “경찰의 과잉 대응”이 문제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지지자들의 이런 움직임은 12·3 내란사태 이후 수사기관과 법원의 정당한 권한에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 사실상 ‘내전’을 선동해온 윤 대통령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 쪽과 여당은 내란을 ‘고뇌에 찬 결단’으로 꾸미고, 윤 대통령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드는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꾸준히 보냈다”며 “언제든 집단폭력이 터져 나올 상황이 됐는데,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여당, (윤 대통령 지지 시위의 한 축인 전광훈 목사 등) 일부 기독교 세력들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선동’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새해 첫날부터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시위대에게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동 메시지를 냈다. 이후 자필 편지와 동영상, 변호인단 등을 통해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 ‘서부지법의 체포영장 발부는 무효’ 등의 주장을 거듭하며 사법체계의 신뢰를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려왔다. 국민의힘도 여기에 동조해왔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뒤엔 폭력을 불사하라고 노골적으로 부추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7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우리 우파의 장점이고 약점이 폭력을 못 쓴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저 나쁜 사람들처럼 경찰 폭행하고 경찰차 뒤집고 이런 거 못 해왔는데, 정말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우리도 저항권을 행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서부지법 앞에서 일부 시위대가 법원 담을 넘다 경찰에 체포되자 “(경찰) 관계자와 얘기했고 아마 곧 훈방될 것”이라고 지지자들에게 설명했다. 야당에서 ‘폭력 사태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자 윤 의원 쪽은 “18일 밤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에 대한 발언이다. 폭력 사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정당한 비상계엄, 사기 탄핵’처럼 음모론을 퍼 나르는 유튜브에서 극소수만 공유할 것 같은 주장이 ‘대통령’을 필두로 공론장에서 버젓이 횡행하고, 집권 여당이 이를 뒷받침하고, 극우 세력이 폭력적 행동에까지 나선 것은 일회적 현상이 아닌, 민주주의라는 헌정 체제의 근본적 위기라는 우려가 크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한국의 극우가 파시즘과 테러리즘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향후 심각한 문제는 사회 저변의 극우 대중과 그 배후의 조직적 실체들”이라며 “이미 한국의 극우는 (가장 마지막 단계인) 폭력과 반란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앞으로도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기각했다고, 인용하면 인용됐다고, 그 결과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흐름이 생길 것이다. 대선을 하더라도 당선자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계속 나올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심리적 내전이 일상화되고 심각한 수준으로 가속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습격은 2021년 1월 ‘큐어논’(QAnon)이라고 불리는 온라인 음모론 집단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대선 패배에 불복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권 정치가 극우 유튜브와 밀착할수록 극단적 주장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비비시(BBC) 출신 언론인 게이브리얼 게이트하우스는 지난해 “미국인 넷 중 하나가 큐어논 음모론을 믿고 있다. 큐어논의 핵심 교리가 미국 주류 정치에 완전히 스며들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중국인이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백골단’을 자처한 극우 청년조직한테 국회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기반이 극우의 음모론과 폭력에 이미 위험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는 방증이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이 반드시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통령이 (사법부 결정에 불복해도 된다는 주장을) 시작했던 것이고, 국민의힘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에 동조한 결과가 폭력 사태로 이어진 것”이라며 “공권력이 폭력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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