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 논설위원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관계자들이 대통령 경호원의 물리력에 막혀 돌아오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2009년 서울 용산 참사나 1989년 부산 동의대 사태 등 시위대가 공권력을 막아서 유혈사태가 벌어진 비극을 기억한다. 그러나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공무원들이 저지하는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벽과 철조망을 두른 대통령 관저에 경찰이 진입하는 장면은 옛 공성전을 연상시켰다.
“안전” 이유로 체포영장 방해 의아
거듭 약속한 헌재 변론도 불출석
법 집행 막아선 경호원은 무슨 죄
박종준 당시 경호처장이 영장 집행을 저지한 직후 “경호처가 개인 사병으로 전락했다는 모욕적 언사는 삼가 달라”며 발표한 의견문은 윤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졌다. 관저 앞에는 박 전 처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쏟아졌다. 난감한 경호처의 고민을 잘 설명한 글이지만,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 “대통령의 절대안전 확보를 존재 가치로 삼는 대통령경호처가 응한다는 것은 대통령 경호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대목은 공감하기 어렵다. 공수처의 영장 집행이 어떻게 대통령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나. 현직 대통령을 수사기관으로 호송하는 과정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는지 의아했다. 오히려 수사기관의 법 집행을 육탄저지하는 행위가 위기를 고조시킬 뿐이다. 윤 대통령 측이 수사에 안전 문제를 제기한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사건을 조사할 때도 안전을 이유로 검사들이 경호처 부속건물을 찾아가야 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인 정부에서 검찰청사가 안전상 문제가 있다는 식의 대응은 논란을 일으켰다.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영장 집행을 앞두고 박 전 처장은 사퇴했다. 그는 경찰에 출석하면서 “현직 대통령 신분에 걸맞은 수사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라리 이게 솔직하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윤 대통령 체포에 임박해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만약 공수처가 소환을 통보했을 때 조사 방식을 논의했다면 가능성이 열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까지 실력 저지한 뒤 압도적 경찰력이 진입한 시점에야 나온 정 실장의 제안은 무색했다.
어제 진행한 체포적부심도 그렇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후 공개한 영상에서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마음일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첫 체포영장 집행에 응했어야 한다. 박 전 처장과 김성훈 차장도 피해가 없었을 테다.
윤 대통령은 당초 약속과 달리 헌법재판소 절차도 회피하는 모습이다. 안전 문제를 내세워 불출석하더니 어제는 공수처 조사를 이유로 2차 변론을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공수처 수사에는 불응하면서 이를 이유로 헌재 변론은 연기해 달라는 것인가. 나날이 새로운 의혹이 폭로되는데 변호인을 통해 내놓는 항변은 황당하다. 포고령 1호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잘못 베낀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검토할 때 왜 못 걸러냈으며, 우원식 국회의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등은 포고령 위반이 아니라면 무슨 혐의로 체포하려 했나. 해명을 내놓을 때마다 더 많은 의혹이 생긴다.
지난 15일 10시 38분쯤 윤석열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관저에서 나와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관저 주변 교통을 통제했고, 인근 일대에선 윤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15일 오전 10시33분 체포된 윤 대통령이 경호를 받으며 경기도 과천 공수처로 향했다. 관저에서 나와 공수처로 향하는 윤 대통령 차량은 여느 외국 정상을 만나러 갈 때와 다름없이 삼엄한 호위를 받았다. 이보다 더 안전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관저로 다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불과 2년여 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요새화한 공간엔 대통령경호처가 법원 발부 영장을 몸으로 막아선 아픈 역사만 새겨졌다. 여기서 벌어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수사가 기다린다. 조은석 감사원장 권한대행은 관저 등 감사에 대한 재심의 검토를 지시했다. 지난해 9월 발표된 감사원 감사에선 1억3000만원짜리 방탄시설을 17억여원에 계약하는 등의 비리가 적발됐다. 관저에 머무르는 김건희 여사에게도 평온한 장소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