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이 시민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성동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시작부터 내란 공범이자 중요 가담자로 지목되는 수모를 당했던 경찰이 모처럼 어깨를 펴고 있다. 조직의 최고 수장이 둘씩이나 구속되면서 시민들로부터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냐’며 모욕을 당했던 경찰이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서 기민한 작전을 보이자 박수를 받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와 지난 15일 윤 대통령 체포 작전 이후 경찰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경찰은 계엄 선포 당시 윤 대통령 지시를 받고 국회 출입을 가로막으면서 내란에 가담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국민적 공분을 샀다. 경찰의 통제가 더 철저했다면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가결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조지호 경찰청장·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계엄 선포 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을 찾았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국회를 전면 통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경찰을 향한 비판은 최고조에 달했다.
경찰은 조직의 수장을 직접 구속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비상계엄 수사를 향한 의지를 내보였다. 조직 수장을 직접 수사해 구속한 것은 경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조직의 존재 자체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경찰들이 1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 권도현 기자
반전의 계기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서 나왔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와의 대치를 뚫어내지 못하고 무력하게 물러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주도의 1차 영장 집행 때와 달리 2차 영장 집행에서 경찰은 파죽지세로 저지선을 뚫었다.
1100여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인해전술로 경호처의 저항 의지를 꺾었다. 영장 집행에 착수하기 전부터 최대 걸림돌이었던 경호처를 집중 공략해 지휘부 하나하나를 뜯어내면서 대응을 와해시켰다. 박종준·김성훈·이광우 등 경호처 지휘부를 대상으로 출석요구 3차례, 체포영장 신청·발부 수순을 차근차근 밟았다. 여론전에도 적극 나섰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여야 질의를 가리지 않고 “체포영장은 적법한 것”이라고 14차례 답했다.
경찰이 주도한 집행 작전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체포작전은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마무리됐다. 경호처와 ‘강대강’ 충돌로 인한 유혈사태가 우려됐지만, 경찰은 경호처를 압박하고 달래는 양면작전으로 무혈입성을 이뤄냈다. 체포영장 집행 후 관저 밖으로 나온 경찰 수사관들을 향해 시민들은 “너무 고생 많았다” “국민을 지켜줘 감사하다”며 박수를 보냈다.
강력 사건을 오래 담당한 한 경찰관은 체포영장 집행 당시 능숙하게 사다리를 타고 철조망을 잘라내는 동료 형사들을 보면서 “늘 하던 일인데 당연히 잘한다. 경찰이 일 잘한다”며 뿌듯해했다.
경찰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방첩사령부의 정치인 체포조 동원 요구에 응해 국회에 형사들을 파견했다는 의혹 등 비상계엄 당일의 전말과 경찰이 간여한 사안의 종류는 아직 채 밝혀지지 않았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경찰의 단전·단수 협조 요청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야당은 사실규명이 필요하다며 벼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