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지쳤던 것 같습니다. 시작은 작년 12월 계엄이었습니다. 탄핵이 마무리되면 좀 나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습니다. 관세 폭탄을 투하해 시장에 풍파를 일으켰습니다. 밤에도 미국 시장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적응이 좀 되자 한덕수 대통령 대행이 느닷없이 선출된 대통령 행세를 하며 헌법재판관 지명이라는 돌멩이를 연못에 던졌습니다. 정치가 경제를 짓누르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현안을 따라가기 위해 운전하거나 휴식할 때는 유튜브를 켜놨습니다. 앉으면 뉴스를 뒤적였습니다. 며칠 전 잠시 멈춤 버튼을 눌렀습니다.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유튜브와 인터넷을 중단했습니다. 대신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이라는 ‘낯선’ 실체가 돌아왔습니다. 그 생각의 대부분은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음악을 주로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은혜를 입고도 잘 돌아보지 못한 분들은 없나? 우리 조직은 잘 돌아가고 있을까? 내 삶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인데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잠시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슈라는 급류에 떠밀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게을리한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리고 책장을 둘러봤습니다. ‘무지의 역사’란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눈에 들어오는 문구들을 에버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존 F 케네디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유권자 한 명의 무지가 모두의 안전을 해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무지가 모여 집단적 무지가 되고, 이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영국과 미국에서 경고는 현실이 됐습니다.
2016년 영국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왜 브렉시트에 찬성했을까. 브렉시트 찬성자들 중 상당수가 이민자들이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영국에서 이민자의 범죄율은 영국 주민들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었고 영국 전체의 범죄율도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연합을 탈퇴해야 범죄율도 낮아지고 경제도 좋아질 것이라는 무지가 찬성 투표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영국 경제는 그 여파로 7명 중 1명이 식량 부족을 겪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저자인 피터 버크 케임브리지대 종신 석학교수는 2016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집단적 무지의 결과라고 평했습니다. “일반인의 무지는 독재 정권에는 귀한 자산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안 요소다”라는 말과 함께. 한국은 이 범주에서는 벗어나 있는 듯해 다행입니다.
대중적 무지와 통치자의 무지가 결합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트럼프는 코로나19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의도적 무지였습니다. “살균제를 인체에 투입해보라”는 이상한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1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책에서는 통치자의 무지도 다룹니다. 버크 교수는 “사회 위쪽에서는 아래쪽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거리 때문에 무지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곳에서 무지가 발생하고, 이는 때로는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이 경험한 일입니다. 타인의 삶, 국민의 삶 자체를 경시하는 통치자들 말입니다.
이와 함께 고의적 무지란 단어도 등장합니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없다고 우겨대는 등 심각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편한 진실을 무시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물론 정말 위험한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겠지만요.
그래서 다시 질문이라는 단어로 돌아가게 됩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무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수많은 실패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질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깊이 있는 질문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선조체와 측면 전전두엽입니다. 다른 동물보다 훨씬 발전한 전전두엽, 그 진화적 승리가 있었기에 우리가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증거입니다.
전전두엽은 공감능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의 시민들은 전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한 이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