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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73
보수주의는 기존 체제 안정적 발전 추구하는 이념
극우는 체제 뒤엎는 폭력…국민의힘 갈수록 극우화
검찰-법원-헌법재판소 공격으로 지지층 결집 노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김경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사진공동취재단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고 국회를 무너뜨리려 한 윤석열 대통령은 보수일까요, 극우일까요? 그런 윤석열 대통령을 감싸는 국민의힘은 보수일까요, 극우일까요?

보수와 극우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진보와 극좌가 전혀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보수는 체제를 지키는 것입니다. 보수주의는 기존 사회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입니다.

근대 보수주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 같은 급진적인 혁명이나 개혁에 반대했습니다. 영국 의회주의 같은 점진적 진보에 찬성했습니다.

극우는 체제를 뒤엎는 것입니다. 파시즘을 창시한 무솔리니는 1922년 국가 파시스트당과 검은 셔츠단의 로마 진군으로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총리가 됐습니다.

히틀러는 나치당으로 1933년 집권한 뒤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극우는 이념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최근 노종면 민주당 의원이 2022년 9월 김건희 여사 발언을 공개했습니다. 최재영 목사가 “진보 일각에서 윤석열 정부의 극우화 우려가 나온다”고 하자 김건희 여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언제부터 극우였나. 말이 안 된다. 아주 극우나 극좌는 없어져야 한다. 그들이 나라를 이렇게 망쳤다.”

“한번은 권양숙 여사와 김정숙 여사 만났다고 보수에서 저를 막 뭐라고 한다. 영부인으로서 제가 그렇게 하는 건 당연한 거다. 극우들은 미쳤다.”

김건희 여사는 극우를 확실히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김건희 여사가 비상계엄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월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 9시께 대통령실에 도착한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게 “(비상계엄 선포 계획) 이거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와이프도 모른다. 비서실장도 모르고 수석도 모른다. 와이프가 굉장히 화낼 것 같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경찰이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 통과를 막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하면서도 정작 아내에게는 야단 맞을까 봐 얘기를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참 서글픈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에게 비상계엄을 하겠다고 얘기했으면 김건희 여사는 반대했을까요? 반대했을 것 같습니다. 김건희 여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철없는 아내’인지는 몰라도, ‘비상계엄으로 국회와 정당의 정치 활동을 금하는’ 극우 쿠데타를 찬성할 정도의 괴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김건희 여사가 가진 보수와 극우에 대한 개념에 비추어봐도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가 아니라 극우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은 어떨까요? 12·3 비상계엄 직후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판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계엄 해제 요구에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찬성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12명이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탄핵소추 이후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고 보수층이 결집하면서 국민의힘 전체가 급속히 극우 쪽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반대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의 내란죄 수사 권한에 시비를 걸었습니다.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영장을 발부했는데도 집행에 반대했습니다.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들을 감싸는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을 기소하자 “불법 수사를 기반으로 한 부실 기소”라고 비난했습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신공격에 나섰습니다.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이 표적입니다. 이재명 대표와의 친분, 재판관의 가족들을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상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자체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여러 신문에서 이런 국민의힘을 비판했습니다. 동아일보 2월 1일 치 사설을 인용하겠습니다.

“헌법이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에 각각 3명의 재판관을 임명·지명·선출할 권한을 준 것은 헌재의 정치적 다양성을 위해서다.”

“진보 성향 재판관 3명을 심판에서 배제하자는 것은 헌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논리라면 윤 대통령이 임명했거나 여당이 추천한 재판관도 제척·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참여해야 하는 탄핵 심판을 하지 말자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습니다. 국민의힘의 헌법재판소 공격은 탄핵심판 불복을 위한 ‘빌드업’입니다. 탄핵 불복으로 보수층을 최대한 결집해 조기 대선에서 이기려는 계산일 것입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1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 마은혁 후보자 임명 권한쟁의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최상목 대행께서 여야 합의가 없는 한에서는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상목 대행에게 대놓고 헌법을 어기라고 주문한 셈입니다.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 심판을 인용했는데도 만약 최상목 대행이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면 탄핵당할 것입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무법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면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해도 “파면 결정이 잘못된 것이니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말고 버티면 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보수는 체제를 지키는 집단입니다. 극우는 체제를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집단입니다.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는 체제를 수호하는 헌법기관입니다. 국민의힘은 보수일까요, 극우일까요?

애런 리 랠스턴(Aron Lee Ralston)이라는 미국 사람이 있습니다. 2003년 유타주 블루존 캐니언 여행 도중 큰 바위가 떨어져 내려 오른팔이 끼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5일 만에 칼로 오른팔을 자르고 탈출해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127시간’이라는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애런 리 랠스턴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큰 바위는 윤석열 대통령과 비상계엄입니다. 오른팔은 당 안팎의 극우세력입니다. 극우세력을 잘라내지 않으면 당 전체가 죽을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와 싸우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지표는 국민의힘의 기대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여론조사입니다. 비상계엄 직후와 비교하면 당 지지도가 많이 좁혀졌고, 이재명 대표와의 양자대결에서 김문수, 오세훈, 홍준표 등 국민의힘 후보들이 선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 양극화가 지금처럼 극심한 상황에서는 ‘5.5 대 4.5’ 정도면 매우 큰 차이라고 봐야 합니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에게 겨우 0.73%포인트 이겼습니다.

둘째, 중도층 민심이 국민의힘에 여전히 싸늘합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보수층 결집은 뚜렷한 현상입니다. 보수층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도층은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무응답에 머물고 있습니다. 중도층 지지 없이 국민의힘이 이길 수 있을까요?

이런 정치 지형에서는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을 감싸며 반이재명 기치로 결집하면 할수록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이재명 기치는 국민의힘이 재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소진할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극우가 보수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민주당 대 극우’로 재편될 것입니다. 전광훈 목사와 윤석열 대통령이 극우 정당의 리더가 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메모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마무리하겠습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으로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히틀러는 그곳에서 인종차별, 전체주의, 세계 정복의 야망 등 자신의 사상을 담아 많은 글을 썼습니다. ‘나의 투쟁’이라는 책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많은 영상과 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 반국가세력 국회 장악론,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적대감 등입니다. 언젠가 윤석열 대통령이 극우정당을 이끌게 된다면 그 정당의 강령이 될만한 내용입니다.

끔찍하지요? 하지만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12·3 비상계엄이라는 내란 범죄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무관용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국민의힘이 하루속히 윤석열 대통령을 제거하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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