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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 김유진(왼쪽 두 번째)씨가 지난 6일 광주 국빈장례문화원에서 열린 부모님과 남동생의 영결식에서 하얀색 국화를 건네받고서 오열하고 있다. 광주=하상윤 기자


“하늘이 제게 너무 좋은 부모님을 주셨어요. 받을 때는 크나큰 축복이었는데, 이렇게 별안간 떠나가시니 그게 감당 못 할 큰 벌이 됐습니다.”

지난 5일 광주 국빈장례문화원에서 마주한 상주 김유진(46)씨는 오른쪽 팔에 링거를 꽂은 채 흐느꼈다. 그는 지난달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었다. 친정 식구가 모두 한날한시 떠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김씨는 “우리의 아픔이 기록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취재에 응했다. 장례 마지막 밤부터 닷새 동안 이들 유족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지난 7일 무안국제공항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 무안=하상윤 기자


“만약에 그때 그곳에서 새들이 날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약에 그 자리에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에 다른 공항에서 다른 비행기를 탔더라면 어땠을까? 만약에 여행을 가지 못하도록 내가 뜯어말렸더라면 어땠을까?” 그날 이후 김씨가 수없이 되뇌는 ‘만약에’의 끝엔 결론적인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

김씨가 모친 故 정선숙씨의 유류품인 휴대폰을 손에 올려 보이고 있다. 광주=하상윤 기자


짧은 유언조차 남길 수 없는 참변이었다. 기적처럼 부친의 스마트폰이 잿더미 속에서 멀쩡한 상태로 발견됐다. 복구된 사진첩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김씨가 마주한 이미지는 그날 아침 아빠가 비행기 창가에서 바라본 찬란한 일출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담은 그 사진은 아빠가 남긴 마지막 언어였다. 김씨는 마치 아빠가 ‘우리 없다고 너무 상심하지 말고, 새 희망을 품고 저기 떠오르는 해처럼 다시 힘차게 살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사진 상세정보를 열어보니, 촬영 시간은 29일 오전 6시 26분. 도착 시간에 가까워질 무렵 구름 위로 뜬 해를 바라본 것이다.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스마트폰 사진첩을 복구했다. 12월 29일 오전 6시 26분, 그는 무안으로 향하는 비행기 창가에서 일출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사진이다. 광주=하상윤 기자


사진첩을 순차적으로 살피며 가족의 시간을 그리고 아빠의 시선을 돌아봤다. 면세점에서 손녀들 선물을 사고, 진귀한 풍경도 감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조형물 앞에서 웃음 짓고,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며 감탄하는 등 앨범은 엄마와 동생의 행복한 모습들로 가득했다. 다정한 시선이었다. 방콕 사원 불상 앞에서 세 사람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은 그들의 영정 사진이 됐다. 사진 속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볕은 따사로웠다.

방콕 사원 불상 앞에서 세 사람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은 그들의 영정 사진이 됐다. 사진 속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볕은 따사로웠다. 광주=하상윤 기자


“시신을 검안한다는 게 무엇인지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거예요.” 김씨는 처참하게 찢어지고 불에 탄 가족을 마주하는 일, 그럼에도 시신이 찾아지길 간절히 기다리는 일에 대해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워낙에 큰 폭발이었기에, 사고와 동시에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졌다. 온전한 시신이 거의 없었다. 김씨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네다섯 시간씩 버스 안에서 가족의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세상을 떠난 이름들이 무작위로 불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아빠와 엄마, 동생의 시신을 확인하며 이 과정을 세 번 경험했다.

유족 김유진씨가 지난 6일 광주 국빈장례문화원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부모님의 관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광주=하상윤 기자


1월 1일 오후 3시, 동생이 먼저 돌아왔다. 많이 탄화하긴 했지만 비교적 덜 해체된 상태였다. 그 이튿날 엄마가 돌아왔다. 시신마다 고유번호가 부여됐다. 179개 숫자 중 동생은 43, 엄마는 115 그리고 아빠는 178. 그런데 아빠 번호는 오래도록 불리지 않았다. ‘확인이 안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짐작했다. ‘우리 아빠가 많이 다치셨나보다’ ‘어쩌면 아빠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

지난 6일 광주 국빈장례문화원에서 열린 추모예배에서 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하상윤 기자


김씨는 처음 사고 소식을 듣고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 가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하루이틀 지난 뒤엔 시신이 온전히 수습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후 더욱 초조한 시간이 찾아왔을 때 ‘정말 단 한 점이라도 아빠를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지난 6일 광주 국빈장례문화원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김유진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광주=하상윤 기자


1월 3일 오후 2시, 다행히 아빠를 찾았다. 신원을 확인하러 간 곳에서 면포 위로 살며시 아빠 얼굴을 만지고 가만히 안았다. 평소 예뻤던 그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었다. 세 사람은 비행기 좌석 32열 중 29열에 앉아 있었다. 창가엔 동생, 복도엔 엄마 그리고 아빠는 가운데.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된 아빠의 팔은 구부러져 있었다. 김씨는 아빠가 그 팔로 동생과 엄마를 많이 안아주셨던 게 아닐까 하고 상상했다. 충분히 몸을 던져 가족을 지키려 했을 그였다. ‘그래서 아빠가 많이 다쳤구나, 아빠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켜주는 슈퍼맨이었구나.’

김유진씨 남편 정찬섭(50)씨가 화장을 마치고 나온 장인·장모의 유골함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유족들이 유골함과 함께 장지인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공원묘지 언덕을 오르고 있다. 나주=하상윤 기자


김씨는 제주항공 임원들이 빈소에 찾아왔을 때 사실 화라도 내고 싶었다.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지만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누군가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내어주라.’ 엄마가 말버릇처럼 건네던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주먹을 질끈 쥐고 꾹 참았다. 또한 더더욱 화를 낼 수 없었던 건, 줄곧 함께 호흡했던 제주항공 유족 전담 직원들에게서 느낀 진심과 그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들이 실직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제주항공이 무너지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故 김덕원(아버지), 정선숙(어머니), 김강헌(동생)씨의 유골함이 지난 6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공원묘지에 안장되고 있다. 나주=하상윤 기자


김유진씨의 딸 정루아(16)·루나(14)·루비(14)양이 지난 6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공원묘지에서 열린 하관식에서 고인의 묘소에 하얀색 국화 꽃잎을 뿌리고 있다. 나주=하상윤 기자




김덕원(아버지), 정선숙(어머니), 김강헌(동생)씨는 지난 6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공원묘지에 나란히 안치됐다. 장례를 마친 김씨는 집으로 향하며 “되돌아온 일상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올 그들의 빈자리를 마주하는 게 막막하고 두렵지만, 따뜻한 위로와 포옹을 건네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유진씨 가족이 지난 8일 삼우제를 위해 부모님과 동생이 안치된 전남 나주의 공원묘지를 찾아 각자 쓴 편지를 읽고 있다. 나주=하상윤 기자


편집자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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