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켜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로 지난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 조사를 마치고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과 법률 지식, 지지자를 총동원해 처벌을 피해가려는 ‘법꾸라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온갖 ‘법 기술’을 끌어모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 하나하나에 제동을 걸었다. 피의자 방어권을 악용하고 장외 여론전을 펼치면서 자신이 검사 시절 비판하던 법꾸라지 권력자의 행태를 답습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형사·사법체계를 흔들어 스스로 탄핵의 늪으로 들어간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 측이 동원한 방어 전술은 진술거부권(묵비권) 행사, 조서 서명·날인 거부, 조사 전면 불응, 체포적부심 청구, 변론기일 연기 신청 등이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가 16일 오전에 하려던 2차 조사를 ‘건강상 이유’로 미루더니 오후 조사도 “어제 충분히 입장을 얘기해 더 조사받을 게 없다”며 불응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공수처에 체포되기 전에도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의 보호를 받으며 ‘버티기’로 일관해 왔다.
윤 대통령은 전날 공수처 조사실에서 8시간20분간 조사받으면서 진술을 일절 거부했다. 조사를 마친 뒤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하지도, 서명·날인하지도 않았다. 서명·날인이 없는 조서는 향후 재판에서 증거 능력이 없다. 전날 저녁에는 체포가 적법한지 판단받는 체포적부심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고, 서울중앙지법이 아니라 서울서부지법에서 발부받은 영장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전날 공수처 조사 내내 입을 닫고선 이날 예정됐던 탄핵심판에 대해선 공수처 조사를 이유로 ‘2차 변론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금된 상태라 헌재가 변론을 열면 당사자의 출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주장도 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6일부터 일주일간 헌재가 보낸 답변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하면서 시간을 끌기도 했다. 헌재가 결국 서류를 받은 걸로 간주하고 5차례 변론기일을 일괄 지정하며 속도를 내자 “방어권을 제한한다” “편파적 재판 진행”이라고 반발했다. 지난 14일 1차 변론에는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해 안전이 우려된다며 불출석했다.
국회 측 대리인 송두환 변호사(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 조대현 변호사가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수사·탄핵 절차마다 문제를 제기하며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주장한다. 윤갑근 변호사는 지난 13일 입장문에서 “불법 수사에서 취득한 증거는 모두 증거능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권력자들의 이런 행태를 자주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 검찰총장 퇴임사에서 “힘 있는 자들은 사소한 절차와 증거 획득 과정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법치’를 강조하면서도 장외 여론전으로 강성 지지층을 결집해 수사·재판을 압박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편지를 전했다. 체포된 직후 공개한 영상과 자필 편지에서는 “이 나라 법이 모두 무너졌다” “부정선거 증거는 너무나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수처가 입주한 과천정부청사, 윤 대통령이 수용된 서울구치소 앞에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수사와 탄핵심판에 대한 방해는 윤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017년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검찰·특검 조사에 불응하고 압수수색을 거부했다는 점을 파면의 주요 사유로 꼽았다. 헌재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며 “대통령 지위에 있으면서 형사·사법체계 자체를 부정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는 메시지만 던져 국법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다음날인 16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