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기억하며 삶을 비우다<하>디지털 디톡스 실천기
손동준 국민일보 기자가 14일 경기도 자택에서 퇴근후 성경 필사를 하고 있다. 손 기자 아내 제공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자 잊고 있던 감각이 깨어났다. 고난주간을 맞아 14일 하루 동안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했다. 목표는 단순히 끊는 데 있지 않았다. 중요한 건 비워낸 시간에 무엇을 채우느냐다. SNS, 영상, 이미지 콘텐츠를 멀리하고 성경 필사, 찬양, 책 읽기, 달리기로 하루를 채웠다.
하루의 시작도 달랐다. 평소엔 커피머신 버튼 하나로 마시던 커피를 이날만큼은 드립으로 내렸다. 물 끓는 소리와 커피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게 차분했다. 향도 평소보다 향긋한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국민일보 손동준 기자가 14일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손 기자 아내 제공
이번 디지털 디톡스의 핵심은 성경 필사. 손글씨로 적을 성경 본문은 신약 빌립보서를 골랐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쓴 짧은 서신이다.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고난을 묵상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본문이었다.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지난해 펴낸 새한글성경을 골랐다. 다음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설계된 성경으로 현대어를 사용하고 긴 문장을 짧게 나눴다. 문장이 간결하니 본문의 메시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빌립보서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된 점이 인상 깊었다.
한 줄 한 줄 손으로 옮겨 쓰는 동안,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구절들이 더 깊이 들어왔다. 필사에는 총 5시간이 걸렸다. 손글씨가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더 걸렸고 펜을 쥔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쉬는 틈마다 습관처럼 손이 스마트폰을 향했다. ‘중독’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중독정신의학회는 중독을 ‘조절 실패, 금단 증상, 해로운 결과에도 지속하는 사용, 그리고 일상 기능 저하가 동반된 행동장애’로 정의한다.
손동준 국민일보 기자의 스마트폰 '스크린 타임' 기능에 나타난 지난 7일 스마트폰 사용 시간.
스마트폰의 ‘스크린 타임’ 기능을 살펴보니 지난주 월요일 하루 사용 시간은 10시간 6분이었다. 영상 콘텐츠 소비는 5시간 38분, SNS 4시간 42분, 기타 앱 1시간 7분. 화면을 켠 횟수는 225회에 달했다. 출퇴근길, 식사 시간, 운동 중,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어폰을 꽂고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일상이자 루틴이 돼 있었다.
스마트폰 없이 탑승한 버스에선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관찰할 풍경조차 없는 지하철에서는 손바닥 지문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퇴근 후에는 기타를 꺼냈다. ‘보혈을 지나’, ‘우리 때문에’ 같은 찬양을 불렀다. 모처럼의 기타 연주를 마친 뒤엔 조영민 서울 나눔교회 목사의 ‘헤리티지’(죠이북스)를 읽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돈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글귀가 뇌리에 남았다.
손동준 국민일보 기자가 14일 경기도 자택 인근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손 기자 아내 제공
아이들을 재운 뒤에는 아내와 함께 달리기에 나섰다. 평소 같으면 함께 TV로 OTT 콘텐츠를 볼 시간이지만 이날은 비에 젖은 도로를 함께 달렸다. 이어폰 없이 6km를 뛰며 대화를 나눴고 이따금 찾아오는 침묵 속에서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했다. 달린 뒤의 샤워는 평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손동준 국민일보 기자의 14일 스마트폰 스크린 타임 기록.
하루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남은 필사를 끝냈다. 손은 여전히 아팠지만 마음은 평안했다. 이날 기록된 스크린 타임은 48분. 업무를 위한 최소한의 SNS 사용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루에 10시간 가까운 시간을 되찾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며 짧은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나님, 오늘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내 상태를 돌아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말씀 속에서 다시 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