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
‘성장과 통합’ 상임공동대표…‘3-4-5 성장’ 전략 제시
‘잠재성장률 3%·세계 4대 수출국·국민소득 5만 달러’
‘아시아 제조업 데이터허브’ 만들어 새 일자리 창출
서울 주민센터 400여곳 한국형 ‘콤팩트 시티’로 개발
‘성장과 통합’ 상임공동대표…‘3-4-5 성장’ 전략 제시
‘잠재성장률 3%·세계 4대 수출국·국민소득 5만 달러’
‘아시아 제조업 데이터허브’ 만들어 새 일자리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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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는 그동안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온 대표적인 진보 성향 경제학자다. 그런데 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정책자문 그룹으로 알려진 ‘성장과 통합’의 상임공동대표를 맡으며 성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1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성장 전략을 마련해달라고 했다”며 구체적인 전략으로 ‘3-4-5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2030년까지 잠재성장률 3%, 세계 4대 수출국,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달성한다는 의미다. 그는 최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며 경제성장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핵심 전략으로 인공지능(AI)을 제조업뿐만 아니라 농업·서비스업에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에이아이 전환’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신 독재 시절에 민주화운동으로 투옥·제적을 당한 바 있다. 1997년 귀국 뒤에는 양극화 등 당면한 정책 문제를 주로 연구했다. 2018년부터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을 지내다 지난해 11월 퇴임했다. 전공은 경제성장론이지만, 소득분배, 노동시장, 국제금융 등 다양한 영역을 연구해왔다. 학문적으로 케인스주의 이론을 지향하면서 현실 비판에 충실해 ‘개혁적 케인스주의자’라 할 수 있다. 이재명 전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만든 주빌리은행 대표를 맡아 과중채무자 구제 운동을 이끈 바도 있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의 정책 자문단에 참여한다는 뉴스들이 나오던데요.
“제가 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일 때는 공공기관장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어 정치인과의 관계는 좀 멀리 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정년 퇴임을 하고 나서, 이젠 개인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갑자기 젊은 시절에 그 끔찍했던 기억들이 스쳐가면서 잘못하면 후손들에게 도대체 어떤 나라를 물려줄건가 걱정이 들고, 저도 모르게 여의도에 가서 데모를 하고 있더라고요. 제 팔자도 참 기구하다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이재명 전 대표께서 연락을 해 오셔서 성장 전략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도와드려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성장 전략을 마련해 드리고 이런저런 정책 자문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주변에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국민들이 거리에서 탄핵을 위해서 투쟁했던 것처럼 우리 정책 전문가들은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다면 어떤 정책을 가지고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되겠나 이런 것들을 좀 준비해야 되겠다 생각해서 ‘성장과 통합’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계시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3-4-5 성장’이라는 겁니다.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잠재성장률 3%, 세계 4대 수출국,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재성장률입니다. 잠재성장률이 2% 이하로 내려간 상태인데 15년 전만 하더라도 5%였습니다. 이게 5년마다 1%포인트씩 계속 내려가고 있고 그러다보니 국민들 뇌리에, 심지어는 많은 경제 전문가들도 거의 자연법칙인 것처럼 5년 지나면 또 1% 내려가겠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지나면 0.8%, 0.7% 이렇게 내려가는 전망을 하는데, 이것은 결코 그렇게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심기일전해서 잠재성장률을 올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을 풀고 부동산경기를 띄우고 해서 성장률을 끌어올려보자는 게 아니고 근본적인 경제 기초체력 자체를 끌어올리자는 겁니다. 그런데 성장 자체가 목표는 아니잖아요. 성장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좀더 풍요롭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성장 과정 자체가 현재 경쟁에서 좀 밀리는 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많이 창출하는 그런 성장이 되도록 설계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국민 통합도 증진될 수 있는 그런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과 통합입니다.”
―목표는 좀 높게 잡는 게 필요하긴 한데,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7-4-7 공약(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국)이 떠오르는데요. 5년 안에 잠재성장률을 3%로 올리겠다는 건 너무 야심찬 거 아닌가요?
“이명박 정부 7-4-7은 그야말로 무리한 계획이었고요. 그냥 슬로건이었고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어요. 고환율 정책을 통해서 수출을 늘리자는 건데, 저도 그때 강하게 비판을 했어요. 너무 장밋빛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 있는데, 7-4-7과는 달리 상당히 구체적인 대안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잠재성장률인데 이건 생산성 문제거든요. 선진 경제가 될수록 경제성장의 더 많은 부분이 생산성 증가에 의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이 부분이 자꾸 떨어지고 있어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의 전면적인 활용, 즉 에이아이 전환이 있습니다.”
―세계 4대 수출국 목표도 좋지만 지금 대외적으로 관세전쟁이 벌어져서 국제무역 규모 자체가 줄어들 우려가 큰 상황에서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그런 방안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씀인데요, 처음에 3-4-5 성장 전략을 만든 것은 지난해 말 트럼프 당선인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어쨌든 세계 교역량이 줄어드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솔직히 아니고요. 그 안에서 우리가 세계 4대 수출국이 되겠다는 목표을 가지고 해보자는 겁니다. 지금 1~3등인 중국·미국·독일과 우리가 경쟁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앞에 있는 일본과 네덜란드는 잘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천달러 정도인데, 우리가 5만달러까지 가려면 생산성, 혁신 중심의 경제체제로 전환이 필요한데 과연 그게 단기간에 가능할까요?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는 소박한 목표예요. 10년 전에도 3만달러가 넘었어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거죠. 국민소득이 안 올라서 그런 건 아니고 환율이 계속 올라가지고 우리 소득이 올라가도 달러로 계산하면 내려가 버리니까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원화 가치만 정상화되더라도, 4만1천달러 정도로 올라가게 되고, 그다음에 우리가 생각하는 정책들을 추진하면 국민소득 5만달러는 결코 어려운 목표가 아닙니다.”
―각론으로 들어가서, 생산성 향상의 핵심 전략으로 에이아이 전환을 제시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에이아이를 전면적으로 활용해서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우리 생활에서부터 다양한 산업 분야의 생산성을 올리는 일에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겁니다. 사실상 거대언어모델(LLM)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경쟁하는 거라고 봐야 하고요. 우리도 나름대로 경쟁할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보다도 한국은 새로운 트렌드를 잘 수용하는 테스트베드라고 하는데, 에이아이를 활용하는 것에서는 우리가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중에서도 제조업 분야는 진짜 먹거리 기반이기 때문에 이걸 살려야 하는데, 에이아이 전환을 통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된다고 봅니다. 그동안 쌓아온 제조업 공정과 노하우들이 있는데, 이것을 빨리 데이터화시키고 아시아 각국과 협력 관계를 만들어서 아시아의 제조업 데이터허브를 만들자는 겁니다. 이걸 기초로 거의 자율 제조업이 가능해지도록 만들어서 경쟁력을 확 끌어올리고요. 그 과정에서 이를 지원하는 엔지니어링 서비스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여기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농업, 서비스업, 교육, 의료 모든 데서 에이아이를 잘 활용해서 전면적인 생산성 향상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그동안 분배의 필요성과 경제민주화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말씀을 해오다 이번엔 주로 성장 쪽에 치우친 것 같은데 분배나 통합 쪽에 대해선 어떤 생각들을 갖고 계신지요?
“성장이 중요하냐, 분배가 중요하냐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묻는 거하고 비슷한 거예요. 당연히 둘 다 중요한 거고요. 경제의 3대 목표는 거시경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성장, 분배, 안정 세 가지예요. 금융위기가 난다 하면 안정이 제일 중요하고, 성장은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불평등이 너무 심화되면 분배 개선을 강조해야 하고요. 그런데 한국 경제는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10년간 악화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성장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어느덧 이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처했기 때문에 이것을 반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 갈등 수준이 극에 달했잖아요. 그 이면에는 불평등과 분배 갈등 이런 것들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려면 이제는 성장 없이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금 올려가지고 재분배 더 합시다, 이게 정치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또 성장 모멘텀을 되살려야 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정책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을 우선 강조하는 겁니다.”
―이재명 전 대표는 기본소득 공약으로 상당히 주목을 받은 정치인이었는데 지금은 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도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논란이 있어서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닌가 싶은데 그 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기본소득이라는 것보다는 기본사회라는 개념을 쓰고 계시는 것 같은데, 기본소득을 고집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 정신 자체는 좋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또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실질적인 평등권 관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보장은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소득 측면에서, 또 사회서비스, 교육·의료·돌봄 서비스 등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차원에서 정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재정 여건이라든지 기본 생활 보장하는 데 있어서 우선순위라든지 그런 걸 봤을 때 기본소득을 하는 것은 지금 우선적인 정책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제 판단이고요. 이재명 전 대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취약계층의 주거 기본권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선 공공부문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고 보는데, 어떤 대책을 갖고 계신가요?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한테 비판받은 가장 큰 정책 실패 중에 하나가 부동산가격 문제인데, 윤석열 정부가 그걸 엄청 비난하면서 빨리 짓겠다고 해놓고서는 안 지었어요. 부동산 공급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데 지금 잘못하면 차기 정부가 덤터기를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해서 좀 걱정스럽습니다. 신속하게 진행될 주택공급 계획을 준비하고 있고요. 공급 방안을 여러 가지 생각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될 거는 콤팩트 도시(도시를 팽창시키지 않고 공간적으로 압축한(Compact) 형태로 개발하는 방식)예요. 수도권에는 집 지을 땅 찾는 것도 사실 쉽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콤팩트 방향으로 가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한 가지만 아이디어를 말씀드리자면 서울에만 해도 주민복지센터가 400여개가 있어요. 주민복지센터는 역세권에 있는 것도 많고 대체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는데 다 저층입니다. 콤팩트 시티 개념으로 이걸 주상복합처럼 올리면, 공공주택을 좋은 위치에 상당한 규모로 공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청년들을 위해서 진짜 희소식이 될 수 있는 그런 공급 방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됐을 때 가장 큰 걱정이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남미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가 될 거다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우리 거 다 뺏어다가 국민들한테 인기 끌려고 막 나눠주는 거 아니냐 그런 관점에서 포퓰리즘 우려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성장 전략 만들어 달라고 했잖아요. 제가 이재명 전 대표하고 알고 지낸 게 오래인데 그런 쓴소리도 조금 했어요. 저야말로 진보 성향 학자로서 불평등 문제, 경제민주화 문제를 쭉 얘기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지향을 제가 반대하지 않죠. 방법론 차원에서 제가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가야 된다는 것, 그리고 분배를 할 때 성장 친화적인 분배를 하는 게 좋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말씀을 드렸고, 이재명 전 대표는 그런 정의감이나 또 민생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 때문에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이 가셨던 것 같고요. 지금은 여러 경험을 겪으시면서 성장하셨잖아요. 그분도 성장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간 정치인으로서 또 행정가로서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더 성숙되고 그래서 지금은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될 만큼 균형감이 생겼다, 그걸 제가 보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