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 회장./한국경제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 개발자이자 초고속 인터넷의 선구자인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향년 92세로 지난 14일 별세했다.
고인은 1933년 경북 영덕군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한 뒤 특이하게 수학 학원 강사이자 수학 참고서 저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1966년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나 유타대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과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소장을 역임하며 본격적으로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활약했다. 이 시기 컴퓨터에 한글을 입출력할 수 있는 터미널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했으며, 국내 정부·공공기관의 행정 시스템 전산화도 주도했다.
컴퓨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보던 고인은 1980년 청계천에서 삼보컴퓨터의 전신인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자본금 1000만원, 직원 7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설립 6개월 만에 국내 최초의 PC 'SE-8001'을 만들었다.
삼보컴퓨터는 한때 '국민 PC'로 불리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가정용 PC 시장이 열리자 금성(현 LG) 등 대기업들도 PC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고인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데이터통신을 위한 전용 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82년 한국데이타통신(데이콤)을 설립하고 데이터 통신망 구축에 나섰다. 1996년 한국전력이 설치한 광케이블망과 지역 케이블TV망을 이용하기 위해 한국전력과 함께 두루넷을 설립했다. 한국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1999년 두루넷은 미국 나스닥(NASDAQ) 상장에도 성공한다.
그러나 PC 시장의 성장이 둔화하고 실적이 악화되면서 2005년 삼보컴퓨터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고인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정보산업연합회 명예회장을 맡아 한국 전자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이후 70세가 넘은 나이에 인성교육 단체인 박약회(博約會) 회장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한 채 고인은 성공보다 '행복'을 외치며 삶의 후반부를 마무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장남 이홍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차남 이홍선 전 두루넷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