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연설 도중 주먹을 불끈 취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해외에 도둑맞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대만이 훔쳐갔다는 주장인데, 이번엔 한국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건 전적으로 대만에 있다. 대만이 우리에게서 훔쳐갔다. 대부분은 대만에 있고, 조금은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대만을 겨냥해 여러 차례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갔다는 발언을 해 왔지만, 이번엔 공개석상에서 한국을 함께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회사에게 보조금을 주기로 한 반도체법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재차 펼쳤다. 그는 “그 회사들한테 10%도 주지 않겠다. 관세 내기 싫어서 미국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미국에 각각 370억 달러(약 53조원)와 38억7000만 달러(약 5조60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패키징 시설을 계획 중이다.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으로 투자금의 11~13%를 받기로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지난해말 계약했는데, 트럼프는 이 돈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지난 4일 재취임 이후 첫 의회 연설에서도 “반도체법은 끔찍하다”며 반도체법을 폐지하고 보조금을 줄 돈으로 부채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물론, 수혜 지역으로 꼽히는 인디애나·텍사스 등에 지역구를 둔 공화당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반도체법 폐지엔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도체법 덕분에 여러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 시작해 이제 혜택을 볼 참인데, 이런 움직임 자체가 중단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법적 구속력이 있고 완료된 협상은 의회의 동의 없이 철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톰 라마지 정책연구원은 “미국의 반도체 칩 정책에서 당근을 채찍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미국이 반도체 지배력을 되찾는 속도가 빨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