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서울대인' 주최로 열린 탄핵 반대 시국선언에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을 파면하라!” vs “명분 실종 탄핵 무효!”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리며 양측 일부가 물리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서울대 재학생들이 이날 오전 11시 30분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예고하자 탄핵 찬성 측이 1시간 먼저 집회를 열기로 맞불을 놓았다. 윤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에서 찬탄·반탄 집회가 동시에 열린 건 지난 15일에 이어 이틀 만이다.
찬탄 측은 ‘서울대 공동행동’ 주도로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모여 “내란수괴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민주주의 지켜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재학생 이시헌씨는 “지난 토요일(15일)에 ‘서울대 대첩’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며 “민주 열사의 혼이 서려 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세력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고 말했다.
1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서울대 재학생과 진보 단체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반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서울대인’ 주최로 열린 반탄 집회에선 12·3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재학생 김민섭씨는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와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비상계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연단에 오른 재학생들은 “헌법재판소(헌재) 재판관 중 4명이 좌파”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주도한 탄핵 반대 시국선언 서명운동에는 서울대 재학생과 동문 약 60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날 집회 현장 곳곳에서는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과 서울대 교직원들이 양측 사이에 진입 금지 테이프를 붙이고 안전지대를 만들었지만, 집회 참가자들이 이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다. 양측이 마주 보고 “빨갱이는 폭력이 전공” ”극우 세력 물러가라”를 연이어 외치면서 참가자 몇몇이 멱살을 잡거나, 침을 뱉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집회에는 오후 1시 30분 기준 총 300명가량(경찰 비공식 추산)이 결집했다.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찬탄·반탄 집회가 동시에 열리면서, 경찰과 서울대 교직원이 양측 사이에 줄지에 서서 충돌을 막고 있다. 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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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학가 탄핵 찬반 힘겨루기 중심 돼
찬탄·반탄 양측은 이날 서울대를 격전지이자 ‘대학의 상징’으로 봤다. 반탄 집회에서 태극기를 들고 실시간 방송을 하던 한 유튜버는 “서울대가 무너지면 다른 대학도 동요한다. 나라가 빨갱이에 접수된다”고 했다. 부정 선거 의혹을 주장하는 ‘STOP THE STEAL(스탑 더 스틸)’ 책을 쇼핑백에 챙겨와 집회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서울대 01학번 졸업생도 있었다.
찬탄 집회에 나온 김남수 고려대 민주동우회장은 “서울대에 이어 전국 다른 대학으로 갈등이 확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적인 갈등과 2030 세대의 남녀 갈등이 조장되는 상황이 안타까워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시생활인구데이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당일인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관저 앞 집회에는 2030 남성(22.0%)이 여성(6.6%)보다 3배 더 많이 참가했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앞 집회에는 2030 여성(27.1%)이 남성(9.9%)의 2.7배에 달했다.
17일 서울대에서 열린 탄핵 반대에서 발언에 나선 한 재학생이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다. 서지원 기자
재학생들은 서울대가 반복적으로 집회의 현장이 되는 걸 우려했다. 서울대 이성준(2학년)씨는 “건강한 토론장이 아닌 (극단적인) 투기장이 열린 것 같다”며 “신입생에게 이런 첫인상을 보여주게 돼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다른 재학생(4학년)은 “양측이 데시벨 싸움으로 힘겨루기를 하다 보니 도서관에서 도저히 공부할 수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집회에선 스포츠 경기 응원전에 쓰이는 부부젤라와 꽹과리, 사이렌 소리까지 동원해 상대 집회를 향한 ‘소음 공격’을 이어갔다.
앞서 지난 15일에도 서울대에서 보수 단체인 ‘트루스포럼’과 탄핵에 찬성하는 학생들이 각각 집회를 열면서 참가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이 때문에 서울대 관계자는 “이날 집회에 경찰과 사전 협의하며 대비했고, 교직원 40여 명을 안전 요원으로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도 “최근 집회에 관해 폭력·위협, 학내 시설물 훼손 등을 신고해달라”며 학생들에게 창구(링크)를 공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