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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한 부지에 세워진 아파트 견본주택 모습. 사진=연합뉴스

‘악성 미분양 2만 채’.

국토교통부가 지난 2월 4일 배포한 ‘2024년 12월 주택통계’ 속 한 수치가 다시 부동산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2만1480채를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미분양 주택이 2만 채를 넘어선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선분양이 일반화된 국내 주택시장에서 아파트가 다 지어지도록 주인을 찾지 못하는 준공 후 미분양은 ‘악성 미분양’으로 여겨진다. 통상 개발사업자들은 최초 분양 후 잔여 물량이 대거 발생하면 무순위 청약, 중도금 대출 지원 등 어떤 방식으로든 물량을 털어낸다. 그런데도 팔리지 않은 아파트가 전국에 쌓여 있다는 뜻이다.

일부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유명 건설업체도 휘청였던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침체 터널에 진입한 경기도 문제지만 한번 꺾인 매수심리는 돌아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한 시장원리 앞에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여전히 한정적이다.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나온 미분양 대책의 선례를 보면 크게 ‘세제 완화, 대출 한도 상향, 주택 매입 후 임대주택 활용’ 등이 꼽힌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나온 현 정부의 미분양 대책 역시 선례를 따르고 있다.

관건은 대책의 ‘강도’에 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에 대해 관련 업계에선 “한참 부족하다”는 입장인 반면, 거시경제부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수도권까지 확산한 미분양
국토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가구수는 7만173가구로 정부가 위험수위로 판단하는 6만 채를 훌쩍 넘겼다. 주목할 곳은 대구·경북과 수도권이다.

대구는 준공 후 미분양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2674가구로 나타났고 경북도 2237가구를 기록하며 두 지역이 전체 악성 미분양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수도권은 최근 들어 미분양 물량이 급증했다. 수도권 미분양은 1만6997가구로 전월 대비 15.2% 늘어 같은 기간 5.0% 증가한 지방 미분양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었다. 특히 경기도 평택과 인천에 물량이 집중됐다. 12월 평택 미분양 가구수는 4071가구에 달했다.

인천은 총 3086가구 중 계양구와 서구에서 각각 1415가구, 1152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 좋았던 시기 이들 지역은 좋은 분양 성적을 냈다. 이 때문에 공급이 위축된 지방과 달리 최근까지도 아파트 분양이 많았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현재 미분양 물량이 준공 후 미분양으로 남을 가능성도 크다. 수도권까지 빈집이 쌓이면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분양과 함께 ‘리턴’한 대책
‘대구 미분양 심화’, ‘수도권 확산’ 등의 현상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도 발생했다. 공급도 수요도 탄력적인 주택시장의 특성 탓이다.

통상 주택 사업자가 부지를 사들여 인허가를 받는 과정은 최소 2~3년이 걸리는데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처음 사업을 기획해 비싼 값에 부지를 마련한 뒤 불경기에 분양을 하게 되는 경우 급격히 위축된 수요로 인해 미분양이 나게 된다. 특히 미착공 상태로 버티기 힘든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밀어내기’ 대상이 될 수 있다. 비교적 분양이 잘됐던 수도권에 최근 미분양이 급증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미분양이 심해진 지역에 몇 년간 주택공급이 없어지면서 가격이 서서히 오르면 수요가 다시 가파르게 늘면서 아파트 시장이 과열된다. 즉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금융위기 이후 하락기에 미분양이 심각하던 대구 등 지방 주택가격이 수도권보다 먼저 오르게 됐다. 그리고 다시 공급이 증가한 것이다.

당시 대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나 대책의 내용도 현재와 비슷하다. 2008년부터 약 10년 전까지 이어진 주택 미분양 시기 초반에는 사업자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됐다. 제조업이나 유통업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사업 결정에 의해 쌓인 주택 재고는 가격 할인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서울 등 일부 지역에 집값 상승의 불씨가 남아 과감한 정책 시행을 더욱 망설이게 했다.

따라서 총선을 앞둔 2008년 상반기 여당의 공약은 지금 정부 정책과 마찬가지로 지방 미분양 해소에 집중됐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거래세 및 보유세 인하 방침을 내놓은 터였다. 그러나 주택수요 진작 정책의 핵심인 양도소득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의 혜택은 지방 미분양이나 1가구 1주택을 대상으로 한정됐다. 자칫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만 공공기관이 준공 후 미분양 주택 1600여 가구 매입 후 임대하거나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임대사업을 하는 부동산 리츠 또는 펀드에 대해 종부세를 완화하는 등의 대책이 이때 나왔다. 2008년 11월에는 강남3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시원하게 풀어라” 요구 빗발
아파트 미분양이 건설업 위기에서 국내 경제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상황으로 확산하면서 결국 대책의 강도도 점차 강해졌다. 2013년에는 ‘10대 건설사’(2010년 시공능력평가 1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던 두산건설이 경기도 고양시 소재 고급주상복합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가 대거 미분양을 내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잔여물량을 털기 위해 할인분양을 지속하면서 적자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초이노믹스’를 통해 양도소득세 및 대출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빚내서 집 사라”는 구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현 정부 대책은 큰 틀에서 전 정부를 따르되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무엇보다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올해부터 스트레스DSR 3단계를 적용하기로 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스트레스DSR은 대출 이자까지 차주의 대출 상환 능력에 반영해 한도를 설정하는 기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방식에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단계마다 가산금리 수준이 높아진다. 주택 관련 규제 완화와 강화 사이를 오간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스탠스와 유사하다.

그런데 주춤한 듯했던 미분양이 다시 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추가적인 규제완화 요구를 받고 있다. 정부가 기존에 내놓았던 대책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CR리츠의 경우 도입 1년이 다 된 지금 허가가 ‘0건’이다. 이 같은 매입 임대 사업은 리츠나 펀드는 물론 공공기관도 사업자와 주택 매입가격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실적을 내기 어려웠던 게 지금까지의 선례였다.

게다가 주택 미분양으로 인해 이미 태영건설, 신동아건설이 각각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과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이며 대구에서 대규모 미분양에 시달렸던 신세계건설이 2월 24일 상장폐지될 예정이다. 빨리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또 다른 건설사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관련 업계에선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 등 대출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한시적인 DSR 완화를 요청한 상태다. 아파트 미분양으로 내수·건설경기 회복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비수도권 준공 미분양 사태에 대해서는 DSR 대출 규제의 한시적 완화를 금융위원회와 국토부에 요청했고 금융위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당장 큰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규제완화의 수위는 조정이 필요할 전망이다. 미분양 규모가 2007년 말 11만 가구에 비하면 확연히 작고 강남권 등 서울 중심지에는 아직도 집값 상승의 온기가 남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재고가 어느 정도 발생하면서 시장 수요에 따라 분양가격이 조정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만 지금처럼 미분양 심화로 인해 시장의 위기감이 커지면 결국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다만 미분양도 민간 사업자들의 경영상 결정에 따른 결과이므로 이를 무조건 지원한다는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그 방안을 신중하게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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