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인지, 전략인지…대상·시점 전부 모호
트럼프발 ‘공개 입찰’에 발 벗고 나서는 각국
EU, 관세 검토…인도는 재빠르게 협상 마쳐
트럼프발 ‘공개 입찰’에 발 벗고 나서는 각국
EU, 관세 검토…인도는 재빠르게 협상 마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소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상호관세 부과 조치를 두고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응 방안 고심에 나선 각국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추가 10% 보편관세,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조치에 이어 이날 상호관세 방침까지 발표하면서 사실상 무역 전쟁의 무대를 전 세계로 넓혔다. 그러나 관세 부과 대상은 행정부 내 연구를 거쳐 국가별로 다를 것이며 시점은 4월 초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약 한 달 반 동안 국가별 협상을 통해 관세를 면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실제로 관세 장벽을 높이려는 목적이라기보다, 협상을 끌어내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세 협박’을 통해 멕시코·캐나다 등으로부터 원하는 바를 대폭 받아낸 전략을 전 세계를 상대로 적용하려는 목적이란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조치를) 즉시 시행하지 않기로 한 건 협상을 시작하자는 ‘공개 입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CNN도 “이날 상호관세 조치는 구체적인 세부사항과 적용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모호한 문구로 발표됐다”며 “트럼프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당장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게 아니라, 무역을 더 공평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라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월가와 시장 역시 이런 차원에서 의연하게 반응해 뉴욕증시도 이날 강세 마감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번 조치로 대미 수출에 경제 의존도가 큰 국가들부터 미국과 집중적인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망했다. 특히 영향을 받을 국가로는 유럽연합(EU), 인도, 일본을 꼽았다. 유럽 국가들은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몇 주 동안 관세 위협을 확대해오자 EU에서 부과하는 관세를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율보다 낮은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은 그의 전략이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는 신호라고 평가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손을 잡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역시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 미국산 석유와 가스, 무기 수입을 늘리겠다며 발 빠르게 협상에 나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상호 관세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의사소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정권에 들어간 한국도 정부·민간 차원의 대미 협상을 본격화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상 외교 부재는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상호 관세 조치가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려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미국 내 비판 여론도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계획을 그대로 강행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미 언론들은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복 관세’ 대응으로 이어져 무역 전쟁이 촉발할 수 있으며, 피해는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조세재단의 연방 세금 정책담당 에리카 요크는 WP에 “자기 발에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련의 관세 조치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고, 이미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상황에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언제든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전략을 사용해 실제로 미국의 관세 장벽을 크게 높이려는 건지, 다른 국가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