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채팅·대부중개사이트에 숨어들어 활개
연락처 담보로 받아 가족·지인에게 협박 문자
경찰에 신고해도 잠시뿐… “처벌 강화해야”
불법 빚 독촉(추심)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생 김미연(가명·28)씨를 대신해 인터뷰에 나선 김주연(가명·30)씨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미연씨가 돈을 빌린 것은 지난해 11월. 일명 ‘고민방’에서 만나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얘기를 터놓을 정도로 친해진 익명의 친구는 미연씨에게 ‘차 대표’를 소개했다. 차 대표와의 악연은 이름도, 얼굴도, 하다못해 연락처도 알지 못한 채 시작됐다.
대출 모집·상담·추심 모두 ‘비대면’
최근 불법 사금융은 모집·상담·추심까지 모두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온라인 대부업 중개사이트 등을 통해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모은다. 이들을 카카오톡·텔레그램 등 모바일 메신저 채팅방에 초대해 대출 상담을 진행하고, 신분증·지인 연락처 등을 담보로 받은 뒤 돈을 빌려주는 식이다.
예전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대면 추심은 신체를 멍들게 하지만, 비대면 추심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미연씨가 돈을 제때 내지 못한 12월 중순, 추심을 가장한 협박이 시작됐다. 차 대표는 미연씨와 주연씨 그리고 가족에게 시도 때도 없이 “죽이겠다”며 협박 메시지를 보내고, 보이스톡(모바일 메신저 통화)을 걸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차 대표의 카카오톡 계정을 차단해도 소용이 없었다. 차 대표 일당이 받을 때까지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며 미연씨와 가족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미연씨는 그들이 누군지 몰랐지만, 그들은 모두가 미연씨를 알고 있었다.
이들은 미연씨의 친척과 가족이 다니는 교회 사람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 협박하기도 했다. 미연씨가 신분증을 들고 정면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한 메시지에는 ‘XX는 여러분의 정보를 팔고 급전을 땡겼다. 돈을 갚을 때까지 당신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혔다. 주연씨는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엄마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고, 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고 울먹였다.
SNS에 사진 올리고, 개인정보까지 버젓이
불법 사금융 피해는 채권 추심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2020년 8043건에서 2023년 1만3751건으로 71% 늘었다. 이중 채권추심 피해상담·신고 건수는 2020년 580건에서 2021년 869건, 2022년 1109건, 2023년 1985건, 2024년 2429건으로, 4년 만에 5배 폭증했다.
비대면 추심이 늘고, 수법도 악랄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미연씨 사례처럼 돈을 갚지 않은 사실을 단순히 지인에게 알리는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인격 살인’을 자행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돈거래 #사기꾼 등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사진과 영상이 수두룩하다.
보통 신분증이나 차용증을 들고 찍은 상반신 사진이나 영상인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핸드폰 번호, 주소 등의 개인 정보가 가림 처리 없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음해성 발언도 수위를 넘어섰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X’라거나 ‘도박 중독자 X’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채무자의 직업, 직장명, 신체 특징 등을 무차별 공유했다. 이미나(가명·21)씨 역시 SNS ‘얼굴 박제’ 피해자다. 미나씨가 알려준 불법 사채업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여러 채무자의 사진이 게시돼 있었다.
“대포폰·대포통장 처벌 강화해야”
불법 사채업자는 채무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경찰 조사가 시작돼 꼬리가 잡힐 듯하면 사용 중인 대포폰을 바꾸고 한두 달 뒤 또다시 채무자에게 접근한다. 미나씨 역시 비슷한 수법에 당했다고 한다. 미나씨는 “경찰에 신고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또 협박한다’고 신고하자 대포폰이라 추적이 어렵다며 ‘번호를 차단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주연씨는 “경찰에 증거 자료를 모두 제출했지만, 신원 특정이 어려워 범인은 어차피 못 잡는다”고 했다며 “대포폰과 대포통장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불법 추심도 성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불법 추심을 막기 위해선 대포폰, 대포통장 개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상진 불법사채피해회복센터 변호사는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불법 추심의 중심에 있는 대포폰과 대포통장 이용자에 대한 행정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 기소까지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고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이 많기 때문에 과징금·과태료 등을 즉시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차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 일괄 지급 정지와 같이 불법 추심 의심 계좌도 신고 접수 후 바로 계좌를 중지하는 방안도 효과적일 것”이라며 “통신사와 연계해 신고자의 번호로 오는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와 문자 등을 차단하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했다.
연락처 담보로 받아 가족·지인에게 협박 문자
경찰에 신고해도 잠시뿐… “처벌 강화해야”
그래픽=손민균
“생활비가 필요했다고 해요. 우울한 마음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눈 게 시작이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대출을 소개해 준 거죠. 불법 사채업자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해요. 돈을 빌려주면서 대용량 파일 전송 애플리케이션(앱)을 깔라고 한 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갔고, 그다음부터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협박의 연속이었습니다.”
불법 빚 독촉(추심)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생 김미연(가명·28)씨를 대신해 인터뷰에 나선 김주연(가명·30)씨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미연씨가 돈을 빌린 것은 지난해 11월. 일명 ‘고민방’에서 만나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얘기를 터놓을 정도로 친해진 익명의 친구는 미연씨에게 ‘차 대표’를 소개했다. 차 대표와의 악연은 이름도, 얼굴도, 하다못해 연락처도 알지 못한 채 시작됐다.
대출 모집·상담·추심 모두 ‘비대면’
최근 불법 사금융은 모집·상담·추심까지 모두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온라인 대부업 중개사이트 등을 통해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모은다. 이들을 카카오톡·텔레그램 등 모바일 메신저 채팅방에 초대해 대출 상담을 진행하고, 신분증·지인 연락처 등을 담보로 받은 뒤 돈을 빌려주는 식이다.
예전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대면 추심은 신체를 멍들게 하지만, 비대면 추심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미연씨가 돈을 제때 내지 못한 12월 중순, 추심을 가장한 협박이 시작됐다. 차 대표는 미연씨와 주연씨 그리고 가족에게 시도 때도 없이 “죽이겠다”며 협박 메시지를 보내고, 보이스톡(모바일 메신저 통화)을 걸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차 대표의 카카오톡 계정을 차단해도 소용이 없었다. 차 대표 일당이 받을 때까지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며 미연씨와 가족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미연씨는 그들이 누군지 몰랐지만, 그들은 모두가 미연씨를 알고 있었다.
지난 11월 김미연씨의 가족과 친척, 지인들이 불법 사채업자로부터 받은 문자. /김주연씨 제공
이들은 미연씨의 친척과 가족이 다니는 교회 사람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 협박하기도 했다. 미연씨가 신분증을 들고 정면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한 메시지에는 ‘XX는 여러분의 정보를 팔고 급전을 땡겼다. 돈을 갚을 때까지 당신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혔다. 주연씨는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엄마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고, 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고 울먹였다.
SNS에 사진 올리고, 개인정보까지 버젓이
그래픽=정서희
불법 사금융 피해는 채권 추심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2020년 8043건에서 2023년 1만3751건으로 71% 늘었다. 이중 채권추심 피해상담·신고 건수는 2020년 580건에서 2021년 869건, 2022년 1109건, 2023년 1985건, 2024년 2429건으로, 4년 만에 5배 폭증했다.
비대면 추심이 늘고, 수법도 악랄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미연씨 사례처럼 돈을 갚지 않은 사실을 단순히 지인에게 알리는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인격 살인’을 자행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돈거래 #사기꾼 등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사진과 영상이 수두룩하다.
보통 신분증이나 차용증을 들고 찍은 상반신 사진이나 영상인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핸드폰 번호, 주소 등의 개인 정보가 가림 처리 없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음해성 발언도 수위를 넘어섰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X’라거나 ‘도박 중독자 X’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채무자의 직업, 직장명, 신체 특징 등을 무차별 공유했다. 이미나(가명·21)씨 역시 SNS ‘얼굴 박제’ 피해자다. 미나씨가 알려준 불법 사채업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여러 채무자의 사진이 게시돼 있었다.
이미나(가명)씨가 지목한 불법 사채업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채무자들이 신분증과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과 영상이 게시돼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대포폰·대포통장 처벌 강화해야”
“돈을 바로 못 갚자, 신분증을 들고 얼굴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곤 인스타그램에 제 아이디를 태그해 사진을 올려버렸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처음엔 춤을 추는 영상을 찍어 보내라더니 반나체, 나체로 수위가 점점 높아졌어요.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한 달 잠잠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이 채팅방에 저를 초대해 “돈 갚으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니 주인”이라며 예전 사진과 영상을 보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불법 사채업자는 채무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경찰 조사가 시작돼 꼬리가 잡힐 듯하면 사용 중인 대포폰을 바꾸고 한두 달 뒤 또다시 채무자에게 접근한다. 미나씨 역시 비슷한 수법에 당했다고 한다. 미나씨는 “경찰에 신고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또 협박한다’고 신고하자 대포폰이라 추적이 어렵다며 ‘번호를 차단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주연씨는 “경찰에 증거 자료를 모두 제출했지만, 신원 특정이 어려워 범인은 어차피 못 잡는다”고 했다며 “대포폰과 대포통장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불법 추심도 성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불법 추심을 막기 위해선 대포폰, 대포통장 개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상진 불법사채피해회복센터 변호사는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불법 추심의 중심에 있는 대포폰과 대포통장 이용자에 대한 행정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 기소까지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고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이 많기 때문에 과징금·과태료 등을 즉시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차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 일괄 지급 정지와 같이 불법 추심 의심 계좌도 신고 접수 후 바로 계좌를 중지하는 방안도 효과적일 것”이라며 “통신사와 연계해 신고자의 번호로 오는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와 문자 등을 차단하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