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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조폭 이씨, 도박빚 갚으려 불법추심 가담
“추심 잘하면 빚 빨리 갚으니 더 잔인해진다”
불법사채 피해자 1년 새 50% 넘게 늘었는데
경찰 수사는 더디고, 초범은 솜방망이 처벌

제도권 대출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에게 급전을 빌려준 뒤 수천%의 이자를 받고 악질 독촉(추심)을 일삼는 불법 사금융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불법 사금융의 형태는 점조직·비대면화되며 더욱 악랄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유치원생 딸을 홀로 키우던 30대 여성이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이 전해지며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조선비즈는 불법 사금융의 현주소와 취약계층이 겪고 있는 피해 상황,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일러스트=조선DB

“불법사채 조직에서 함께 일했던 20대 또래들은 죄다 도박 때문에 사채를 썼어요. 자기들도 빚 독촉을 당하다, 도저히 안 되겠으니 불법사채 조직에 들어가 추심을 하면서 빚을 탕감하는 거죠. 추심을 많이 할수록 빚을 빨리 갚으니까, 욕심이 생기고 본인이 당했던 것 이상으로 악랄하게 괴롭히는 거예요. 상상을 초월해요.”


과거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20대 이건우(가명)씨는 “불법추심은 사람이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불법추심이 인격 살인이란 말이 모자랄 정도로 잔인해진 이유 중 하나는 ‘MZ조폭’ 등 20대가 불법추심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도박·유흥 때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하며 자신이 당했던 고통에 ‘이자’를 붙여 또 다른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과거 불법사금융 조직의 총책이었던 A씨는 MZ조폭들이 사채업자가 되는 과정에 대해 “도박을 하다 돈이 궁해지면 사채를 쓰는데, 금방 따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결국 이자를 감당하지 못 하면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말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업자도 아무나 일을 시킬 수는 없고, 이 사람이 도망가지 않겠다고 판단돼야 범죄에 가담시킨다”라고 덧붙였다.

건우씨는 자신이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하게 된 이유도 불법사채를 썼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2016년부터 소위 ‘20에 40’을 썼다가 아내와 이혼하는 파국을 맞았다. 20에 40이란, 일주일 간격으로 ‘20만원 대출 40만원 상환’, ‘40만원 대출 80만원 상환’ 등을 반복해 빚을 순식간에 늘리는 불법사채업자들의 영업 방식이다. 이 과정이 몇 차례만 반복되면 이자율은 수천%까지 늘어난다. 불법사채업자들은 상환 시간이 1초라도 늦어지면 이자를 더 내라는 등 억지를 부리고 피해자들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건우씨는 “눈 감고 떠 보니 열 군데서 불법사채를 쓰고 있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빚이 불어난 건우씨는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협박 대상은 건우씨의 가장 큰 약점인 딸이었다. 조직원들은 건우씨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전화해 “(건우씨 딸이) 몸을 팔고 다닌다” “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어린이집 교사까지 협박했다. 이런 괴롭힘은 강도가 점점 높아져 건우씨 친척과 친척의 자녀에게까지 이어졌다.

결국 건우씨는 조직원에게 함께 일하며 빚을 갚을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조직이 제공한 거처에서 숙식하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던 20대들도 건우씨처럼 빚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돈을 빌린 이유는 물론 제각각이었지만, 열에 아홉은 토토·바카라 등 불법 도박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근 비대면으로 바뀐 불법추심 방법. 피해자 신상정보가 드러난 프로필 사진으로 피해자에게 협박(왼쪽)하고, 대포폰을 이용한 '국외발신'으로 피해자 신상정보를 지인 등에게 유포(오른쪽)하는 모습. /독자 제공

조직은 20만원을 추심해 오면 7만원을 돌려줬다. 하루에 10명을 추심하면 70만원, 20명을 추심하면 140만원을 버는 셈이다. 하루만에 25명을 추심하는 사람에게는 대표가 “수고했다”며 현금 200만원을 보너스로 지급했다.

실적이 좋을수록 더 빨리 빚을 갚을 수 있다 보니 협박과 괴롭힘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건우씨는 4일 동안 ‘사수’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는데, 사수는 빚 때문에 채무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장례식장을 찾아가 유가족에게 부의금으로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건우씨는 “악에 받치니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라고 했다.

2년 동안 또 다른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B씨는 “대부분은 내 인생이 먼저고, 내 빚을 탕감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수금을 못하면 자기 빚의 이자만 늘어나니 악랄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는 “특히 20대는 추심 경험이 없다 보니 강압적인 방법밖에 떠올리지 못한다”라며 “이로 인해 투신이나 번개탄을 피우는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를 여럿 봤다”라고 했다.

불법추심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다시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의 굴레는 현재 진행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경찰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2789건으로, 전년 동기(1675건) 대비 58% 증가했다. 하지만 협박 때문에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한 사례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들은 통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손민균

불법사채 조직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모객팀과 원금·이자를 회수하는 추심팀, 현금을 전달하는 전달팀 등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불법사채의 모든 과정이 대포폰·대포통장으로 운영되다 보니 추적도 쉽지 않다. B씨는 “팀장 1명이 팀원 3~10명을 관리하고, 팀원들도 서로의 실명·연락처를 알 수 없다”라며 “팀장의 경우도 팀장끼리는 소통할 수 없게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조직을 관리하는 ‘부장’과만 연락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원 파악이 쉽지 않은 만큼 경찰 수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비즈가 만난 전직 사채업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채업자들은 경찰에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가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수사가 불가능해 피해자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초범이면 벌금형’이라는 말이 불법사채업자들에게 공식처럼 통할 정도로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91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18건(19.8%)인 반면 벌금형은 47건(51.6%)으로 절반이 넘었다. 지난해 대부업법 위반 혐의 1심 판결 287건 중 집행유예가 142건(49.5%)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은 81건(28.2%), 실형은 59건(20.6%)에 불과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법사채가 대포통장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수사기법을 정교화하는 것보다 대포통장이 사라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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