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뉴스1
법원이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 안건 상정에 반대하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21일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의안상정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유미개발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던 당시 고려아연의 정관은 명시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며 “결국 이 사건 집중투표 청구는 상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적법한 청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영풍의 이번 가처분 신청은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이 지난해 12월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이사 선임 안건 수에 맞춰 1주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본래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의의가 있다.
최 회장 측은 그동안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현재 MBK파트너스·영풍 측의 지분율은 40.97%(의결권 46.7%)로 과반에 육박하는 데 반해 최 회장 측은 우호 지분을 합쳐도 34.24%(의결권 기준 39.16%)에 불과해 이사회 장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주들이 특정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몰아 줄 수 있어 최 회장 측 소액 주주들이 보유표를 집중한 뒤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원하는 이사들의 진입을 막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총의 이사 후보 수는 총 21명(고려아연 7명·MBK 14명 추천)이다. 고려아연 주식 1주를 가진 주주에게는 총 21개의 의결권이 주어지며, 이를 소수에게 몰아주거나 분배해 투표할 수 있다. 특별관계인 53명을 보유한 최 회장 측에게 유리한 제도인 셈이다.
이에 따라 그간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시도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MBK파트너스는 “최윤범 회장의 자리 보전 연장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한 유미개발이 최 회장 일가의 회사라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번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고려아연은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 방식이 아닌 일반투표 방식으로 이사들을 뽑아야 한다. 이 경우 46%가 넘는 의결권 지분을 가진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최 회장 측보다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