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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 극단화에 공론영역 실종
수사당국 논란 자초하며 분열 가속

한국 사회에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중 ‘집단별 감정적 거리에 대한 인식’으로 나타난 결과다. 감정적 거리가 멀 경우 ‘차갑다(0~20도)’, 가까울 경우 ‘따뜻하다(80~100도)’의 온도 척도 조사에서 한국인이 정치적 성향이 다른 타인에게서 느끼는 평균 감정 온도는 2023년 49.6도로 조사됐다. 이 온도는 2021년 57.9도에서 2022년 51.5도로 계속 하락 중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로부터 느끼는 감정 온도는 한국인이 고령층(59.0도), 청년층(61.6도), 성별이 다른 사람(57.5도), 종교가 다른 사람(51.5도)을 대할 때보다 낮다. 세대와 성별, 종교보다 정치적 성향이 더욱 큰 사회적 갈등 요인이 돼 있다는 의미다. 점점 많은 이들이 거대 양당의 적대적 정치 속에서 내 편만 찾아 뭉치고,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다”며 공론영역의 정보를 믿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는 극단화한 진영 논리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결합해 법치주의의 마지막 선을 넘어선 결과로 평가된다. 헌법재판소와 수사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과거 대통령들의 탄핵심판 때보다 강성 지지층의 태도가 더욱 극렬해졌다”고 말했다. 헌정사상 첫 법원 습격 사태 자체에서 볼 수 있듯 향후 헌법재판과 형사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제시되든 다수의 불복이 우려된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말이다.

정치가 법치를 덮어버린 상황의 원인 제공자는 정치권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치권은 타협 대신 고소·고발을 남발했고 종래에는 정당의 의결 과정에 대해서도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법원·수사기관을 찬양하거나 비난하며 사법 불신 여론을 조장했다.

100여명의 시위대가 정문과 유리창을 깨고 법원청사에 난입한 이번 사태의 경우 윤 대통령과 여권이 불법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을 ‘반국가 세력’과 ‘애국 시민’으로 이분화하고, 체포와 구속에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과 폭력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여야 지도부 모두가 각자 지지층을 향해 ‘적대적 대립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마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경향도 극단화와 분열의 원인으로 꼽힌다. 서부지법 폭력 사태 직후에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판사 집무실 문을 발로 차고 난입한 남성이 특정 방송사의 기자였다느니, '좌파 유튜버'가 배후에서 법원 침입을 부추겼다느니 하는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들이 급속히 퍼졌다. 일부는 현행범들이 체포된 뒤에도 온라인 공간에서 "폭력 시위가 아닌 저항 시위다" "폭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먼저 시작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실정이다.

윤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던 시기 주변에 현재 언론 지형이 편향돼 있으니 유튜브를 보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작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는 미확인 정보가 많고, 알고리즘 영향을 받은 이용자들의 확증편향은 더욱 강화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갔다가 미국 ESTA(전자여행허가제) 비자를 거절당했다"는 글은 아직도 인터넷에 다수 게재돼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환경을 감안해 현직 대통령의 수사와 재판이 더욱 신중하게 진행돼야 더한 사회 분열을 막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의 영장을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점, 국회 소추위원단이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 등 형법 위반 부분을 철회한 점 등은 사법부와 헌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지속되는 실정이다. 장 교수는 신중한 절차 진행이 중요하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론 갈등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돼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합의한 것이 바로 헌법"이라며 "헌재와 법원의 판단이 이뤄지면 승복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룰"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에 따라 정치권이나 당사자가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법치의 정당성까지 흔들려는 시도가 이뤄진다면 공론장을 해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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