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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화물트럭 등을 타고 상경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을 경찰이 막았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2024년 12월22일 오전 서울 관악구 과천대로 남태령고개 인근에 모여 경찰에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근본적으로 윤석열 내란은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태가 아니라 한국 엘리트 위임 정치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한다. 그 실패는 이미 한국 사회에 잠재하던 것이지 외계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다만 시민을 향한 폭력과 전쟁까지 불사하는 ‘폭주형 극우 엘리트’가 출현했다는 점은 새로운 현상이며 주의 깊게 분석되어야 한다. 윤석열, 김용현 등이 기존 우파 엘리트 그룹과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뚜렷한 폭력성, 다른 하나는 음모론이다. (지난 칼럼에서 이런 음모론을 ‘어준석열 유니버스’라 명명한 바 있다.)

민주공화정의 대통령은 법을 준수해야 한다. 삼권분립과 정치적 견제에 의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제한된다. 개혁 의지가 넘쳐흘렀을 뿐 아니라 공부와 준비도 많이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종종 무력감을 토로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이라도, 아무리 선의와 신념으로 무장해도,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라는 대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극우는 그게 불만이다. “악랄한 저들이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는데 왜 선한 우리가 양보해야 하지?” 여기서 음모론은 폭력에 불을 붙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일반적 상황이면 법을 지켜야겠지만 지금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적으로 선거를 조작하는 비상사태 아닌가. 법질서를 지키려면 타협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게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불법’이라는 형용모순이 출현한다.

윤석열 일당이 실제로 음모론을 믿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 내면이 어떻든 간에 중요한 건 음모론이 ‘폭력의 명분’으로 당당히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다. 이번 내란에서 음모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껏 인류가 벌인 많은 집단학살이나 전쟁에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비인간화하는 음모론적 서사가 있었음을 엄중히 기억해야 한다. 약물이나 외과 수술 없이 인간의 뇌를 해킹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토리텔링, 즉 그럴듯한 이야기다. 특히 이야기 속 감정이 핵심이다. 이성은 좀처럼 인간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감정은 즉각 행동하게 만든다.

‘브레인 해킹’이 항상 잘 먹혀드는 건 아니다. 잘 작동하는 조건이 존재한다. 바로 사회적 고통이다. 정확히는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한 인식이 공유되고 나면 다음 단계는 ‘범인 찾기’다. 인간이 가장 참기 어려워하는 고통은 이유 없는 고통이며 그래서 인간은 자기 고통의 근원을, 설령 허구일지라도, 반드시 찾아내려 한다. 주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여기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좌파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너무 거대한 답을 내민다. 하지만 극우파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 “이게 전부 무임승차자와 불순세력 때문이다. 난민·이주민, 무슬림, 중국인, ‘김치녀’, 호남인, ‘종북세력’, ‘빨갱이’,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기여도 없이 보상만 챙기면서 나라를 망가뜨린다.”

극우정치의 세계적 확산에서 볼 수 있듯이 ‘분배’와 ‘인정’의 불만, 즉 가난해지고 멸시당한다는 울분은, 말만 번드르르한 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결합해 기층 인민을 급격히 우경화했다. 지지부진한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서 ‘결단력 있는 독재자’를 은근히 기대하기 시작한다. 제도와 관행의 외피에 가려져 있던 날것의 폭력성, ‘힘 숭배’ 욕망은 스멀스멀 폭력과 전쟁의 기운으로 전이된다. 폭주형 극우 엘리트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탄생했다. 이들은 군대를 불법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음에도 탄핵 직전의 박근혜보다 훨씬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바야흐로 극우는 현실 정치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피노자는 ‘감정은 이성으로는 통제될 수 없고 다른 강력한 감정으로만 제어될 수 있다’면서, ‘지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로운 수동적 감정에서 용기와 관용 같은 능동적 감정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가 일종의 ‘감정 서사’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걸 이겨낼 수 있는 건 대항논리가 아니라 대항감정인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혐오를 이겨내는 힘은 서로 돌보는 마음에서 나온다. 이러한 능동적 감정은 파산한 엘리트 정치를 ‘누구나의 민주주의’로 바꿔내기 위한 절대적 동력원이다. 트랙터와 응원봉이 만들어낸 남태령의 기적을 소중히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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