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군 두루미 태양광발전소 전경. 구글어스
지난 16일 강원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두루미 태양광 발전소. 나무를 벗겨낸 산등성이마다 태양광 패널이 빼곡히 들어섰다. 가파른 비탈길 곳곳에는 그물 같은 임도가 들어섰고 터전을 잃은 동물은 자취를 감췄다. 새 소리가 사라진 민둥산에는 발전기 소음만 울렸다.
“저거(태양광 발전소) 때문에 산이 없어져서 그런가. 동물들이 마을 도로로 많이 나와서 깜짝깜짝 놀래” 마을 주민 이모씨(78)는 발전소가 들어선 뒤 마을에 야생 동물이 나타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문혜리 일대에서 채소 농사를 짓는 권모씨(75)는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난 뒤 장마철마다 산사태를 걱정한다고 했다. 권씨는 “아직 마을에 직접 피해는 없지만, 태양광으로 산사태 난다는 소식이 많이 들리니까 늘 불안하다”고 했다. 권씨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지난해에도 수해로 태양광 패널 등 시설물 일부가 무너져 내려 철원군에서 시정 명령을 내렸다. 급경사지에 발전소를 세운 탓이다.
강원도 철원군 두루미 태양광발전소. 산비탈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 있다. 반기웅 기자
철원 두루미 태양광발전소는 설립 단계에서부터 환경 당국으로부터 사업지로서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환경부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발전소 부지의 90%가량은 생태자연도 2급이자 식생보전 3등급 지역에 해당한다. 실제 현지 조사에서 두루미 발전소에도 삵과 수달, 맹금류 등 법종 보호종과 18종의 희귀식물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업지의 40.6%가 경사도 20도를 넘기 때문에 산림 훼손 면적 대비 발전 효율이 떨어지고, 산사태 위험이 크다는 경고도 나왔다.
검토 기관은 사업 부지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환경 당국은 훼손지 복원 등 보완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뒤 ‘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렸다. 이후 발전소 건립 사업은 강행됐다. 그러나 급경사지를 깎아낸 뒤 세운 태양광 발전소는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등 피해가 잇따랐다. 200㎿급 태양광 발전소 설립을 내세운 대형 프로젝트는 사업자 교체, 복구공사 등 부침을 겪다가 끝내 50㎿급으로 축소됐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검토기관들은 해당 발전소 건립에 부정적이었지만 당시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분위기여서 (그런 의견들은) 반영되지 못했다”며 “에너지 전환은 필요하지만 발전소를 부적절한 곳에 만들면 자연은 전보다 더 빠르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태계 훼손을 최대한 줄이면서 재생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풀씨행동연구소는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에너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입지를 찾는 방법에 대해 분석했다. 미국의 태양광 전략환경영향평가(PEIS) 방식을 활용해 전국의 입지를 분석해 국토를 생물다양성을 훼손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보급할 수 있는 ‘공존지역’과 생태계 훼손 가능성이 크거나 위험한 지역을 ‘회피지역’으로 구분했다.
20일 연구소가 낸 ‘생태계 보전을 고려한 재생에너지 보급 잠재량 분석’ 보고서를 보면 전국에서 생물다양성을 훼손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보급할 수 있는 ‘공존지역’의 면적은 1만2337㎢로 나타났다. 국토의 12.3%에 달하는 면적이다. 이는 국토에서 법정보호지역이거나 생태자연도 1등급지, 생태자연도 2등급이면서 식생 보전 3·4등급지를 제외한 뒤, 경사도가 15도 이상, 산사태 위험 지역 등을 제외한 수치다.
여기에 최소 2700㎡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에너지 수요가 있는 도시지역과 10㎞ 이내로 가까운 지역만을 추려 ‘공존지역’으로 지정했다. 요컨대 공존지역은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에너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다.
생태계 훼손 가능성이 커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은 ‘회피지역’으로 분류했다. 회피지역은 6만7681㎢로 국토의 67.4%를 차지한다.
강원도 철원군 두루미 태양광발전소. 산비탈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 있다. 반기웅 기자
보고서가 제시한 ‘공존지역’을 모두 태양광 시설로 전환하면 2050년 국가 에너지 발전량 목표 대비 98.1~102.1% 수준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 40㎿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 입지가 가능한 곳만 추려도 2050년 목표의 93.0~96.8%를 생산할 수 있다. 미래 에너지 수요 대부분을 태양광 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권역별 공존지역 발전 잠재량을 보면 충청권이 376.8TWh(테라와트시)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북권 232.9TWh, 전남권 230.1TWh, 전북권 227.8TWh, 경남권 181.9TWh, 수도권 179.2TWh, 제주권 96.1TWh, 강원권 54.1TWh 순이었다.
정부는 2021년 발표한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서 2050년에는 전력수요가 1208.8~1257.7TWh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전력량의 60.9~70.8%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들 계획도 함께 세웠다. 연구소는 공존지역을 중심으로 통합적인 입지 계획을 세운다면 태양광만 가지고도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넘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재생에너지는 ‘전통적인 발전소’들에 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입지를 특정하기 어려워 사회적 갈등이 컸다”며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통합된 공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계획·설치·운영·폐기하는 과정에서 ‘생물다양성 순증대’를 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빈번했던 ‘환경 패싱’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박찬호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면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반드시 필요한 곳인지, 또 대체지가 없는지 분석해서 선택지를 늘려야 한다”며 “입지 선정을 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