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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뒤 수많은 시민이 거리에 나와 집회에 참여할 때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청각장애인이다. 김홍남(52)·이수현(34)·정지현(40) 수어 통역사(통역사)는 지난 약 4개월동안 각종 집회 무대 한편에서 손과 표정 등으로 청각장애인들에게 현장을 전했다. 세 사람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당일에도 집회에서 역사의 순간 순간을 수어로 통역했다.

김홍남 수어 통역사가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주최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 모습. 사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해오름극장에선 만난 세 통역사는 “청각장애인도 집회 등 정치 상황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무대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집회에서 직접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청각장애인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공인수화통역사 자격증을 보유한 세 사람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계엄·탄핵 국면에서 집회 주최 측으로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어 통역을 해달라는 섭외를 받았다고 한다.

세 사람은 ‘12·3 비상계엄’ ‘트랙터’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통역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했다고 한다. 한 단어를 통역사마다 다르게 표현할 경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은 통역사 간 회의를 거쳐 4개의 동작으로 구분해 ‘대통령이’ ‘군을’ ‘뒤집어’ ‘선언했다’고 표현했다.

통역사 간 호흡도 중요했다. 보통 2명의 통역사가 조를 이뤄 통역하기 때문이다. 통역사들은 각각 무대 위와 무대 아래에 위치해 통역했다. 무대 아래에 위치한 통역사가 무대를 마주 보고 먼저 수어로 설명하면, 무대 위에서 이를 보고 전달하는 ‘거울 통역(동시 수어 통역)’ 방식을 활용했다. 무대 위의 통역사가 다른 곳을 응시할 경우 청각장애인이 정보를 전달 받는 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수현 수어 통역사가 탄핵 찬성 집회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 모습. 이씨는 추위를 잘 타 발열 조끼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사진 김홍남 통역사

연일 이어진 강추위에 손이 얼어붙고 집중력이 빠르게 떨어지는 등 어려움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15분 단위로 교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추위에 약한 편이라 핫팩은 물론이고 발열 조끼까지 입었다. 조끼에 보조배터리를 연결해두고 체온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감각이 둔해지니 손은 물론 온몸의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통역하다가 걸린 감기가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고 했다.

세 사람은 항상 검은색 옷을 입고 맨손으로 무대에 올랐다. 검은색 옷을 입어야 피부색과 대비되고, 손에 장갑 등 방한용품을 착용하면 손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무채색 중에서도 항상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며 “흰색이나 회색 옷은 무대 조명 빛을 받을 경우 번져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대에서 내려와 핫팩이 든 주머니 속에 손을 넣는 것이었다.

지난달 17일 정지현 수어 통역사가 광화문 동십자각 인근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 무대에 올라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 김홍남 통역사

이들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 감명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무대에 올랐을 때 많은 감정이 오갔다. 많은 시민이 겨우내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벅찼다”고 말했다. 이씨는 “새벽에도 자발적으로 침낭 등에 의지한 채 아스팔트 위를 지키는 시민들이 대단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도 친구들과 집회에 참여한 학생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청각장애인이 느끼는 언어 장벽이 낮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청각장애인이 집회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정보를 편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며 “집회에서도 참가자들이 흔드는 깃발에 수어 통역이 가려지기도 했는데 수어에 대한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더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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