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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2016년 朴 탄핵 과정서 '개헌 이슈' 급부상
②2018년 文정부 개헌안, 여야 대립 탓 '불발'
③2022년 대선 '4년 중임제 제안' 이재명 패배
④2025년 尹 파면 후 대선, 개헌 논의 급물살?
2023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석열(오른쪽)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일주일, 정국은
차기 대선이 아닌 ‘개헌’
으로 들끓었다. 지난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내놓은 ‘조기 대선·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안’이 도화선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선을 긋는 목소리가 컸고,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이야말로 개헌의 데드라인”이라며 우 의장 제안을 환영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과 함께 ‘구(舊)여권’이 돼 버린 국민의힘은 개헌을 수세 국면의 돌파구로 삼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반짝 불붙었던
개헌 정국은
‘3일 천하’
로 끝났다.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윤 전 대통령 최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추천하며 메가톤급 논란을 일으키자,
우 의장이 개헌 제안을 철회
한 것이다. 9일 우 의장은 “한 권한대행이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개헌 논의는 대선 이후에 이어가자”고 밝혔다. 제안을 꺼낸 지 딱 사흘 만이었다. 2022년 대선에서 ‘임기 1년 단축 및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했던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현재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아끼고 있다.

여여가 ‘개헌’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며 그때그때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본격화한 개헌 논의는 △2018년 문재인 정권 주도 개헌안 발의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2025년 ‘윤석열 파면’에 이르기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각 시기별 개헌 논의 배경과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 배경을 정리해 봤다.

①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민심 무색케한 개헌 정쟁

2017년 5월 23일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을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를 드러낸 사건
이었다. 당시 개헌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의 핵심 의제로 급부상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 민심은 대통령 한 사람의 퇴진을 넘어, 민주주의의 회복과 제도 전반의 재설계를 촉구했다. 권력 구조의 개편뿐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 확대 △선거 제도 개혁 △검찰 견제 △지방분권 △경제민주화 등을 아우르는 요구가 쏟아졌다.

그러나 개헌 논의는 이내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가 아니라,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휘둘렸다.
당시 여야는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철저히 개헌을 이용했다.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탄핵 대신 개헌”을 주장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내세워 임기 단축형 개헌을 밀어붙였다.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고, 탄핵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꼼수였다. 야권은
“탄핵이 먼저, 개헌은 그다음”
이라는 입장으로 맞섰다.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 등 당시 야권 대선 주자들은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안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못 박았다.

2017년 10월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로 열린 촛불 1주년 기념 '촛불은 계속된다' 집회에 시민들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홍인기 기자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2017년 5월 조기 대선에서는 개헌 관련 공약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4년 중임제를 비롯해 대통령 권한을 국무총리·국회 등과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 국회가 행정부 중심인 총리를 직접 뽑고 국정 운영까지 책임지는 의원내각제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
그러나 정치 구조 개편과 직결된 이슈 외에, 국민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는 기본권 관련 쟁점들은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보다 조금 앞선 2017년 1월, 국회 차원에서도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출범시키며 개헌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핵심 내용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여론조사 문항 설정과 같은 부차적 사안만 놓고 지지부진한 공방을 이어가다 약 1년 만에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②2018년 文정부의 개헌 시도: 대통령 독자 행보 한계



2017년 5월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4년 중임제 개헌”을 핵심 공약
으로 내걸었고 승리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적극적으로 개헌을 추진했다. 1987년 이후 ‘임기 내 개헌’을 시도한 대통령은 처음이었다.

2018년 2월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한 달 후인 그해 3월,
대통령 단독으로 헌법 개정안
도 발의했다. 국회 내 개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개헌안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5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임기 내 소회와 대국민 메시지를 담은 퇴임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주도한 개헌안의 핵심은 대통령중심제 틀을 유지하는 방향의
‘4년 중임제’
였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 △경제민주화와 노동권 강화 △정보 기본권 신설 등 국민의 기본권 강화 조항도 두루 포함됐다.

야당의 반발은 거셌다. 당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청와대발(發) 관제 개헌“이라고 맹비난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본질을 그대로 남긴 안“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고, 개헌안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주도로 마련됐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적 진정성이 없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개헌 저지선을 쥐고 있던 야당을 설득하지 않고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2018년 5월 24일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자유한국당이 단체로 표결에 불참하면서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를 채우지 못해 결국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촛불 혁명에서 확인한 국민적 요구를 개헌으로 실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2018년 5월 24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표결하기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등이 보이콧에 나서며 야당 의원들 의석이 텅 비어 있다. 이에 따라 개헌안은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배우한 기자


③2022년 제20대 대선: '개헌에 소극적' 尹이 당선



2018년 문재인 정부 주도의 개헌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한동안 뜸했던 개헌 논의가 다시 점화한 계기는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였다. 대선 주자들은 1987년 헌법이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구체적 방향에선 이견을 보였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는 4년 중임제와 함께, 여야 합의 시 임기 1년 단축을 약속했다.
아울러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와 총리 권한 강화도 제안했다.

반면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는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중심제 개편과 관련해 “국회 논의에 따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고수했다.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4년 중임제에 대해선 “대통령 임기가 5년에서 8년으로 늘어날 수 있는데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실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
를 표명했다. 2018년 자유한국당이 적극적으로 밀었던 이원집정부제에도 선을 그었다.

2022년 3월 2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3차 법정 TV 토론회의 시작 전 대선 후보들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오대근 기자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는 책임총리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는 의회 중심의 내각제와 책임 연정을 통한 다당제 정치 체제를 각각 제안했다.

다만 2022년 대선은 △집값 폭등 △코로나19 펜데믹 △양극화 등 민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주요 화두였던 탓에, 개헌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선 주자들 중에선 이재명 후보가 개헌 추진에 있어 가장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나, 그 뜻은 대선 패배로 물거품이 됐다.

④2025년 尹파면: 개헌으로 국면 전환? 정치적 오염?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헌정 위기를 초래했다.
그해 12월 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과 동시에, 정치권 전반에서는 각자의 ‘정치적 셈법’에 따른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자당 소속인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에 따른 동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개헌 카드를 이용했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국회가 발족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 단 한 명의 추천위원도 내지 않을 정도로 개헌에 소극적이었으면서, 돌연 태도를 바꿨다.
윤 전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자 국면 전환 카드로 개헌을 꺼내 든 것이다.
지난해 12월 13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개헌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연이어 개헌을 공론화했다.

윤석열(맨 오른쪽) 전 대통령이 2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1차 변론에 참석해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개헌을 자신의 정치적 방어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는 지난 2월 25일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계엄령은 야당의 폭거에 맞서 헌법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내가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개헌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불법 계엄·내란 시도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이 나온 이 발언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개헌 프레임’은 정치적으로 오염됐고,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파면됐다.

우 의장의 헌법 개정 제안은 이런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나왔다. ‘내란 세력 단죄’가 끝났다고 볼 수 없는 시점에, 국민의힘 전략에 호응이라도 하듯 정국을 ‘
개헌 블랙홀‘
에 빠뜨린 것이다. 민주당 주류는 물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거센 반발이 나왔던 건 이 때문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신중 모드’다.
지난 7일 당 공개회의에서 그는 “계엄 요건 강화와 5·18 광주 정신 전문을 수록하는 부분적 개헌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대선 때와는 달라졌다. 민주당 지도부는 개헌이 조기 대선의 주요 의제가 될 경우, 국민의힘의 ‘대통령 임기 단축’ 압박 공세가 거세질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개헌 이슈를 키우려 하는 모습
이다. 지난 10일에도 △분권형 대통령제·책임총리제 도입 △4년 중임제 등 5대 개헌 방향을 발표했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 축소를 위해서라지만, 행간에는 ‘이재명 견제’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번 개헌 논의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의뢰로 한국갤럽이 지난 8, 9일 실시해 1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7%
에 달했다.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은 21%에 그쳤다. 다만 △권력 구조 개편 방향(대통령 중심제/분권형 대통령제/의원내각제) △대통령제 유지 시 임기(5년 단임제/4년 중임제) △개헌 국민투표 시기(6·3 대선/내년 6월 지방선거/2028년 4월 총선)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여론도 제각각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이 개헌 이슈를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 소재로만 다룰지,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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