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업무규정 따라 정상 간 통화 내용은 외교상 기밀 분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4일 서울 공관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6·3 대선 출마 여부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궁금해했다는 ‘정상 간 통화’ 내용이 알려지자, 보수진영은 이를 한덕수 차출론 지렛대로 썼다. 이런 정치적 쓰임이 다하자 비밀로 분류되는 통화 내용 유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유사한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 사건에서 법원은 외교상 기밀누설죄를 인정한 바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트럼프
국민의힘에서 한덕수 차출론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8일 밤, 한 권한대행은 트럼트 대통령과 통화했다. 총리실은 통화가 끝난 뒤 한미동맹·무역균형·북핵 문제 등 미국 쪽과 협의가 이뤄진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통화 이틀 뒤 중앙일보는 ‘관련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출처로 트럼프 대통령이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 출마 의향을 직접 물었다며 비공개 통화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통화에서 한 권한대행이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서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답했고, ‘특정 선택지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수준에서 짧게 문답이 오갔다’는 소식통의 통화 해설까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 보도를 기점으로 한덕수 차출론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총리실은 “외교적 사안”이라며 보도된 통화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오보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통화 당사자나 통화 내용을 검토한 실무진 외에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한 권한대행 쪽이 출마 여론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흘린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은 외교상 기밀로 분류된다. 외교가에서는 “비밀이 보장된다는 신뢰가 없다면 상대를 믿고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가 없다” “정상 간 통화나 회담 내용 가운데는 안부를 묻는 등 일상적 부분도 있지만, 민감한 정보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서 전체를 비밀로 지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5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등학교 후배인 외교관으로부터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듣고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일 뒤 한국에 들러달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당시 청와대나 백악관이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으로,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3급 비밀에 해당한다.
외교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강 의원은 1심에서 유죄(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가 선고됐다. 1심 판사는 “구체적 통화 내용을 여과 없이 공개할 중대한 공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강 전 의원에게 통화 내용을 유출한 외교관에게도 징역 4개월의 선고유예를 처분했다.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심리 중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고위공직을 맡았던 인사는 14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국내 정치를 위해 유출했다는 의심이 든다. 이런 행위를 묵과한다면 외교 신뢰도 하락은 물론, 불법 유출을 묵인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파면으로 외교 등 국정 공백이 큰 상황에서 통화 내용 유출자 확인을 위한 총리실이나 감사원 감찰은 물론, 필요할 경우 수사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