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국내 안보 전문가와 언론에도 잘 알려진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가 트럼프 행정 2기의 국방부 정책차관(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Policy)으로 공식 임명됐다. 그가 과거 주한미군 역할 변화, 전작권 조기 전환 및 한국의 핵무장 용인 가능성 등을 언급했기에, 국내에서 그의 임명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에 따라 그는 역대 그 누구보다도 한국과 가장 협력하여 일할 정책차관이 될 수도 있다.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 현실주의자(Realist)인 그가 트럼프 2기 국방 정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콜비의 임명이 중요한 이유

그가 정책차관을 맡게 된 것은 두 가지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국방부 지휘부가 역할을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콜비의 상사인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장관과 스티븐 파인버그(Steve Feinberg) 부장관은 워싱턴 DC 내에서조차 생소한 인물이다. 미국 안보 및 국방 전반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국방부는 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로부터 상위 지침을 받겠지만, 과거와 달리 국방부 장관이 국방 차원의 지침을 하달하는 비중이 줄고, 이를 중간 관리자에게 상당 부분 위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 나이도 젊고 경력도 짧아 콜비 차관에게 많이 기댈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서 콜비의 평소 신념과 생각이 미국 국방전략서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 같다는 게 둘째 이유다. 그는 전략서 작성에 매우 정통하다. 2017~2018년 당시 정책차관보다 서열상 세 단계 밑인 전략 및 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를 맡았을 때도, 그는 전략서 작성을 주도했다. 콜비가 2019년 1월 전략서 이행 관련 청문회에서 그렇게 밝히기도 했고, 필자가 만나 본 2018년 국방전략서 작성 참여자들도 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20명의 국방전략서 발전 팀을 이끌며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



대(對) 중국 ‘거부 전략’의 핵심은

콜비의 2021년 저서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은 그가 그간 쌓아온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다. 핵심은 경쟁자인 중국으로부터 패권을 뺏기지 않도록 온 국력을 다해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만을 지켜야 한다.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국이 해양 패권 확장을 위해 설정한 최종 방위선이자 대미 방어선인 제1도련선의 중간쯤 위치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미국이 밀리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에 패권을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월 13일 호주 타스만해에서 호주 해군이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보급선 웨이샨후함(왼쪽)과 호위함 헌양함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 해군은 호주 해역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벌인 데 이어 호주 주변을 한 바퀴 일주해 호주를 놀라게 만들었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전략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그는 동맹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의 연대를 크게 강조한다. 그러나 동맹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고자 하기보다, 동맹이 미국의 패권 유지에 기여하는가에 방점이 있다. 중국이 아시아에 패권을 형성하지 않으려는 ‘반패권 연합’을 구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국가를 ‘우대’해야 한다고 한다. 우대할만한 국가로서 한국을 비롯해 인도, 호주, 일본, 심지어 러시아도 언급된다.



거부 전략, 실행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NYT)의 한 컬럼니스트는 콜비를 이 시대 가장 중요한 현실주의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그의 책은 널리 읽히고 정계와 학계에 두루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동시에 비판도 많이 받았다. 동맹의 관점에서 가장 큰 오류는, 상대적 국력이 약화해 반패권 연합을 만들어야만 하는 처지이면서, 미국이 우대할 국가를 노골적으로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는 국가들이 결국에는 미국을 택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가 깔려 있다.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주한미군의 아파치 공격헬기가 보인다. 캠프 험프리스는 해외 미군 기지 중 가장 크다. 연합뉴스

따라서 콜비의 전략이 이행되려면 적어도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들과는 여러 층위에서의 국방협력을 유지 혹은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따라 빚어지는 갈등은 국방 분야에서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예된 관세 정책이 시행된다면, 미국 국방부와 방산 업체들이 그동안 공들여온 동맹 및 파트너국 중심의 공급망이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미국에 부품을 납품했던 업체들이 상당한 관세를 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추진해온 무기체계 합작투자 건들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더욱이 유럽에 대해 유독 가혹한 동맹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럽에서는 이제 중국보다 ‘미국이 최대 안보 위협’이라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다. 미국에 대응하거나 보복하려면 집단으로 경쟁을 선포할 수도 있고, 중국과 경제 관계를 개선하는 제스처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연설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EU가 중국과 무역 및 투자 관계를 심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유럽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 외 중국과 친밀한 러시아·이란·북한이 힘이 세지는 것도 보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콜비 청문회 전부터 톰 코튼(Tom Cotton) 공화당 의원이 그의 낙마를 벼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이란에 대한 입장 때문이었다. 콜비가 2010년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핵을 가진 이란을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추궁했고, 콜비는 우려를 불식하고자 이란의 핵보유를 저지하려는 외교적 및 군사적 옵션들을 제공할 것이라고 길게 설명했다. 미국 의회의 견제는 계속될 것이다.



한국 국방에겐 기회

어떻게든 중국과의 대결에 모든 국력을 집중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콜비에게, 한국은 절대 잃고 싶지 않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특히 콜비는 역내에서 대체 불가한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과 단일 해외기지로는 세계 최대인 평택 미군기지의 가치를 잘 알기에, 기대 섞인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콜비는 일본이 한국과의 통합 방위를 본받아야 한다며 높이 평가했고, 대만도 한국처럼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과 같이 “능력 있고 의지가 있는 동맹국”에게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난해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K2 전차가 분열하고 있다.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은 미국이 결코 놓치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우리만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이제 미국도 우리에게 군사적으로 의지하는 시점에 왔다는 점, 미국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다는 점을 불안하게만 여길 것인가? 미국이 바라는 것은 중국의 위협 대응에 한국이 앞장서는 게 아니다. 미국은 대만 인근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할 것이니, 주로 북한으로부터 불거질 한반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선 한국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 전작권 전환, 한미 억제태세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미국의 국익에 따라 조정을 당할까 봐 걱정하기보다, 각각의 이슈에서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확히 찾아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그것을 먼저 제시할 수 있는 때가 됐다.

그것이 미국만을 위한 일인가? 전혀 아니다. 한반도와 우리 국민에게 다가오는 위협에 가장 잘 대처하는 일이며, 초강대국 미국이 한국에 의지하게 만드는 일이고, 이로써 미국이 아닌 한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일이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387 트럼프 “일부 예외 있을 수 있지만, 상호관세 10%가 하한선” 랭크뉴스 2025.04.12
47386 트럼프 "예외 있을 수 있지만, 국가별 상호관세 10%가 하한선" 랭크뉴스 2025.04.12
47385 총리실도 궁금한 한덕수의 넥스트 스텝…무소속 출마 나설까 랭크뉴스 2025.04.12
47384 장순욱 변호사 “윤석열 특이한 캐릭터…한나 아렌트처럼 누가 좀 연구해서 평전 썼으면” [논썰] 랭크뉴스 2025.04.12
47383 안철수 “범죄 혐의자는 이재명에게 필패”… 김문수·홍준표·오세훈 겨냥 랭크뉴스 2025.04.12
47382 "오늘을 기다렸다"…박은정, 尹에 받은 난 재차 꺼낸 이유가 랭크뉴스 2025.04.12
47381 '영업이익률 25%' 성심당 진격에…파바·뚜레쥬르 "사정이 다르다" 랭크뉴스 2025.04.12
47380 ‘일극체제 비판’ 의식한 듯, 통합에 힘준 이재명 선대위 랭크뉴스 2025.04.12
47379 자금지원부터 금리인하까지…각국 '관세전쟁' 격화에 대응 총력 랭크뉴스 2025.04.12
47378 "살인죄보다 형량 높아"…편의점서 전처 살해한 30대 결국 랭크뉴스 2025.04.12
47377 [단독] "그는 헌신적인 선생님"‥가해자 감싸기와 반복되는 성범죄 랭크뉴스 2025.04.12
47376 트럼프 “예외 있을 수 있지만 국가별 상호관세 10%가 하한” 랭크뉴스 2025.04.12
47375 토요일 전국 비… 돌풍·천둥 번개 주의, 강풍까지 겹쳐 랭크뉴스 2025.04.12
47374 트럼프 "상호관세 10%가 하한선…예외 있을 수도" 랭크뉴스 2025.04.12
47373 "대기업이 밀어준다"…'K-휴머노이드' 연합 출격에 로봇株 들썩 [줍줍리포트] 랭크뉴스 2025.04.12
47372 윤석열 서초동 도착하자 지지자 “아버지, 이건 아니잖아” 울다가 실신 랭크뉴스 2025.04.12
47371 본토도, 베트남도 설 곳 없다… 美 관세에 벼랑 끝 몰린 中 공장들 랭크뉴스 2025.04.12
47370 실수로 건 전화 한 통에 27번 '따르릉'…협박까지 한 40대 실형 랭크뉴스 2025.04.12
47369 돌풍·천둥·번개 동반한 비…강원 등엔 ‘4월의 눈’ 랭크뉴스 2025.04.12
47368 뚝심의 김상욱... 탈당 압박에도 '尹 탄핵' 앞장 [배계규 화백의 이 사람] 랭크뉴스 20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