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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4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워싱턴/ AP 연합뉴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애초 유럽의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었다. 유럽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에 등이 떠밀렸다. 전쟁에 발을 담그자, 뺄 수가 없었고 수렁에 빠졌다. 때로는 미국보다도 강경하게 러시아를 욕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장했다. 그러다가, 미국이 마음이 바뀌었다.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가 러시아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서, 전격적으로 종전 협상에 합의했다. 유럽에 한마디 말도 안 했고, 종전 뒤에는 우크라이나를 책임지라고 독박을 씌웠다. 유럽은 이대로는 전쟁을 끝낼 수는 없지 않냐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

유럽은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돈도 줬는데 이제 “너나 처신을 잘해라”라며 뺨까지 맞았다. 지난 16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제이디(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유럽에 대한 최대 위협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내부에서 나온다”며 독일 정치권이 극우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을 왕따시키는 것을 강력히 비판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기도 한다.

유럽이 왜 이런 비루한 처지가 됐을까? 미국의 독주와 오만일까, 유럽의 잘못된 처신과 판단일까? 유럽으로서는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좋을 까닭이 없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내전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독일과 프랑스는 중재에 나서 2015년까지 민스크 협정 1·2를 체결시켰다. 러시아계 주민이 사는 돈바스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해, 내전을 해결하고자 했다.

유럽은 이때부터 갈지자 행보를 했다. 민스크 협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핵심인 돈바스 지역의 자치를 위한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를 실시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그 민병대들이 돈바스에서 테러 공격을 벌였다. 돈바스 반군과 러시아는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격이었다.

이 협정의 보장자인 유럽은 무얼 했단 말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인 2022년 12월7일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디 자이트’와 한 회견에서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에 시간을 벌어주려는 시도였다”며 “오늘날 볼 수 있듯이 우크라이나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더 강해졌고, 2014년과 2015년의 우크라이나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키려는 의도였단 말인가?

유럽과 러시아의 협력을 반대하던 미국 눈치를 보면서 독일은 오락가락했다. 유럽-러시아 협력의 상징인 러시아의 대유럽 송유관 노르트스트림 프로젝트를 놓고 미국과 격렬히 갈등한 부담도 컸다. 전쟁이 나자 독일은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자발적으로 잠갔다. 2022년 9월 말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폭발했다. 우크라이나의 공작이었고, 그 배후에 누가 있을지는 뻔했지만, 독일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망가진 유럽 경제의 상징이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인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값싸고 편리하게 수입하던 러시아의 가스 등 에너지가 중단되고 에너지 값이 폭등하자,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이 추락했다. 독일 가스의 32%, 석유의 34%, 석탄의 53%가 러시아에서 수입됐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경고하지 않았냐며, 러시아와 관계를 단절하라고 재촉했다.

달리 생각해보자. 자신에게 이익을 줄 게 많은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지, 불화해야 하는지. 여기서 나오는 것이 러시아 위협론이다. 그런데, 러시아에 유럽은 위협은 아니었나? 중세 때부터 스웨덴,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 독일의 러시아 침략은 무엇인가? 나폴레옹과 히틀러로부터 유럽을 구한 것은 러시아가 아닌가?

미국은 러시아는 침략자이자 위협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하루아침에 뒤집고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런데 유럽은 아직도 러시아 위협론 타령을 한다. 유럽도 이제 미국처럼 사고해야 한다. 트럼프가 압박하는 대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국내총생산 대비 5%로 방위비를 증액하면, 2024년 기준으로 미 국방비 8240억달러를 능가하는 1조1천억달러가 된다. 현재 4100억달러인 유럽 국방비가 미국 수준으로까지만 늘어나도, 유럽은 미국이 필요 없다. 오히려 유럽이 나토를 탈퇴하고, 유럽 독자군이나 독자적 군사동맹을 만들겠다고 하면, 미국이 매달릴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은 중국 때문이다. 그럼 유럽도 이제 러시아와 화해하고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세력균형의 논리이고, 지정학의 기본이다. 유럽이 미국에 수모당하는 것은 오랜 시간 미국 밑에서 살다 보니 독자적 사고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유럽의 저런 수모는 유럽의 일로만 그칠 것인가? 대한민국은 유럽 국가들보다도 낫다고 자신할 수 있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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