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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최후 진술에서 무려 25번에 걸쳐 ‘간첩’을 언급하며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을 비롯한 외부 주권 침탈 세력과 우리 사회 내부 반국가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진술 내내 한국이 “망국적 위기”와 “국가비상사태”에 처해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증거조사로 시작한 탄핵 심판은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과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종합 변론만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한 윤 대통령은 증거조사를 마치고 국회 측 종합 변론이 진행 중이었던 오후 4시 30분경 헌재에 도착했다. 소추위원단장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은 발언 직전인 오후 9시 3분에야 재판정에 들어섰다.

A4 용지 총 77쪽 분량의 문서를 꺼내 들고 재판관 앞에 선 윤 대통령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후 84일이 지났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날들이었지만 감사와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7일 국회의 탄핵소추 1차 표결을 앞두고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며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게 불안과 불편을 끼쳤다. 많이 놀라셨을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저는 이번 계엄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탄핵 심판 최후진술은 윤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체포 전 내놓은 영상 메시지와 체포 직후 공개한 ‘국민께 드리는 글’, 이후 탄핵 심판 변론 기일에서 줄곧 주장한 내용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사과 대신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강성 지지층에게 ‘결집하라’는 식의 옥중 메시지를 내서 분열을 부추기는 방식은 마지막 변론에서도 그대로였다.

윤 대통령은 1시간 7분간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며 계엄 선포를 정당화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과거의 부정적 기억도 있을 것이다.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악용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며 “이번 계엄은 윤석열 개인을 위한 게 아니었다. 국민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나서달라는 호소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이미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 가장 편한 길은 사회 여러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임기 5년을 안온하게 보내는 것”이라며 “일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치열하게 싸울 일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자리에서 국정을 살피다 보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서서히 끓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다”며 계엄 선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거대 야당에 홀로 맞서야 하는 ‘피해자’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주장도 그대로였다. 윤 대통령은 “간첩들이 가짜뉴스, 여론조작, 선전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들이 북한의 지시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반복했다.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은 2022년부터 178회에 걸쳐 열린 대통령 퇴진 집회였다. 윤 대통령은 “이 집회에는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언론노조 등이 참여했고 거대 야당 의원들도 발언대에 올랐다. 북한의 지령대로 된 것”이라며 “간첩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체제 전복 활동으로 더욱 진화했다”고 했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현 상황에 대한 진솔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총 1만4811자에 이르는 진술 중 국민들에게 사과한다거나 사죄한다는 등의 표현은 단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 특히 ‘청년’에 대한 호소를 이어갔다.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동 사태에서는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며 오히려 이들의 폭력·범법 행위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오는 이들을 겨냥한듯 “저의 진심을 이해해주시는 국민,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론’에 대한 주장도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북한에게 해킹당하고도 점검에 응하지 않았고,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짜 투표용지” 등을 예로 들면서 계엄 당일 군을 선관위에 투입한 데 대해 “어떤 부분이 내란이고 범죄라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당일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축소했다. 윤 대통령은 “정말 계엄을 하려 했다면 고작 280명의, 실무장도 하지 않은 병력만 투입했겠느냐”며 “계엄 해제 요구 결의 이전에 국회에 들어간 병력은 106명에 불과하고, 본관까지 들어간 병력은 겨우 15명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데 대해서는 “자신들의 근무 위치가 본관인데 입구를 시민들이 막고 있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불 꺼진 창문을 찾아 들어간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정치인·법조인 등 체포 지시 의혹에 관해서도 “터무니없는 주장”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준비된 치밀한 작전 계획이나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혼선과 허술함도 있었다”며 계속해서 계엄이 ‘대국민 호소’였다고 말했다. 그간 탄핵 심판에 출석한 증인들이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는 것과 같은 허황된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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