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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고사리, 정말 정력 감퇴 부를까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잘 익은 삼겹살과 통통한 고사리. 삼겹살 위에 고사리를 얹어 한입 가득 먹던 방송인 백종원은 아쉬워한다. “그렇게 제주를 많이 다녔으면서 왜 이 조합을 몰랐을까.” 삼겹살과 고사리를 무한흡입하는 그에게 맞은편에 앉은 상대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옛날에 고사리를 많이 먹으면 정력이 감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순간 깜짝 놀란 백종원이 “얘기를 했어야지. 셋째 낳아야 하는데”라고 투덜대자 이를 지켜보던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된다. 2012년 방송됐던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출연했던 개그맨 최양락은 “고사리가 정력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 일생 고사리는 쳐다도 안 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고사리를 피한다거나 애꿎은 고사리를 타박하는 식의 농담 섞인 이야기들은 종종 개그나 유머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세간에 자리 잡은, 정력과 고사리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도를 닦는 스님들이 고사리를 즐겨 먹는 것이 그 때문이라는 속설도 여기에 한몫했다.

그렇다면 정말 고사리는 정력에 안 좋은 걸까. 또 왜 정력에 좋지 않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 걸까. 고사리는 응달에서 자라는 찬 성질의 식물이다. 몸의 기운을 가라앉히며 열을 내려주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때문에 소위 말하는 ‘정력’, 즉 불기운인 양기를 떨어뜨린다고 여겨졌다.

많은 전문가는 고사리가 정력을 감퇴시킨다는 것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고사리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면역력을 높이며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저열량 식품이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 약을 먹고 단백질 보조제도 따로 챙겨 먹으면서 굳이 고사리를 피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모든 음식이 그렇듯 체질에 따라 주의할 부분은 있다.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한방내과 정지천 교수는 “음식에는 각각의 성질이 있고 사람도 저마다 체질이 다르므로 특정한 음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작용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면서 “체질에 따라 좋을 수도, 많이 먹었을 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고사리는 찬 성질 때문에 기가 약하고 몸이 냉한 사람은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몸이 야위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설사가 잦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반면 열이 많고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정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몸속에 쌓여 있는 노폐물을 빼주고 기와 혈을 뚫어주기 때문이다.

음식에 관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결론은 비슷하다. 특정한 음식을 고집해 과도하게 먹을 것이 아니라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 보약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이든 저마다의 성격과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궁금하다. 열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은 고사리뿐이 아니다. 우엉, 연근 등 비슷한 성질을 가진 채소들이 여럿인데 굳이 고사리에만 그런 이미지가 씌워진 것이 말이다. 아마도 예로부터 사찰에서 특히 많이 먹는 식재료이다보니 이런 오해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사리는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서 구하기 쉽고 말려서 저장하기도 좋다. 불교문화사업단 김유신 종무관은 “수행자들의 음식은 기호식이 아니라 생존식이므로 산속에서 구하기 쉬운 것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면서 “고사리는 독성 때문에 야생동물도 먹지 않을 정도로 흔하고 보잘것없는 식물이라, 그런 고사리도 값있고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 수행자들의 마음가짐이었다”고 설명했다.

응달에서 자란 찬 성질 식물

‘양기 떨어뜨린다’ 알려져

스님들 즐겨 먹어 오해 증폭

전문가들 “근거 없는 속설”


몸에 열 많은 사람에겐 ‘약’

냉한 이는 많이 먹으면 ‘독’

기격증 치료 탁월한 효과

울분 삭이는 데 도움 줘


이른 봄이면 산과 들에 나기 시작했던 고사리는 봄의 전령으로 여겨졌다. 영양가가 있고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고사리는 일상의 끼니 걱정도 덜어줬던 ‘수행자의 도반’이었다. 사찰음식문화 연구자인 동방문화대학원대 공만식 교수는 ‘법보신문’에 “고사리는 고려~조선시대 백성과 스님에게 중요했다. 봄이 되면 민가나 사찰의 중요한 일상 가운데 하나가 들과 산에 핀 고사리를 캐 국이나 나물 등 일상적 식재료로 사용하고 또 찬거리로 …사용했다. 곡식이 부족한 시기엔 배고픔을 이기고 기아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생명줄로도 기능했다”고 썼다. 많은 스님이 시문을 통해 고사리의 미덕을 노래했음도 소개했다. 고려시대 나옹혜근 스님은 ‘삼종가’에서 “고사리 꺾고 땔나무해서 밥을 해 먹고 한평생 누더기 납의를 걸쳐도 싫증이 나지 않네”라고 노래했고, 대각국사 의천은 <대각국사집>에서 “한낮의 강론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아침 공양은 고사리를 먹었다네”라고 했다.

서양에서 고사리는 관상용이나 장식용으로 사용된다. 그러고 보니 문득 서양에서 고사리는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예전에 읽었던 D H 로런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는 고사리가 꽤 등장했었다. 헛헛하고 초조한 마음 달랠 길 없던 여주인공 코니가 고사리밭 위에 엎드린다거나 남주인공 멜라스의 오두막 주변 숲 고사리 덤불 묘사 등이 그것이다. 챗GPT-4o에 ‘서양문학에서 고사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하는 질문을 입력하자 다음과 같은 답이 나왔다.

“신비로움과 마법. 고사리는 종자를 맺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기 때문에 과거 서양에서는 ‘보이지 않는 씨앗으로 자라는 신비한 식물’로 알려졌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고사리 씨앗이 마법의 힘을 지닌다고 믿었으며 이를 가지면 투명해지거나 보이지 않는 능력을 얻는다고 전해졌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도둑들이 ‘우리는 고사리 씨앗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이러한 믿음을 반영합니다.” 혹시나 하고 팩트 체크 차원에서 찾아봤더니 예전에 출간됐던 <양치식물의 자연사>라는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와 있다. 이외에도 고사리는 숲과 자연의 신성함, 고독과 은둔을 의미하며 뉴질랜드의 은색고사리 ‘실버펀’은 뉴질랜드 상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동양문화권에서 고사리는 절개와 청빈의 상징이었다. 중국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선 뒤 백이와 숙제 형제는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다 굶어 죽었다. 신라 천년사직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도 금강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으며 망국의 한을 달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는 경남 함안으로 낙향해 세상을 등지고 여생을 보냈다. 그가 고향에 세운 정자 채미정(採薇亭)의 ‘채미’는 고사리를 캐다라는 뜻으로, ‘불사이군’의 의지를 드러낸다. 또 궁금해진다. 다른 산나물과 들풀도 있는데 왜 고사리였을까. 이에 대해 정지천 교수는 “고사리는 기가 가슴에 막혀 내려가지 못하는 기격증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서 “울분을 내려주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듣고 보니 귀가 솔깃해진다. 고사리를 먹으면 답답한 속을 좀 달랠 수 있으려나. 이번 주말엔 고사리에 삼겹살이나 실컷 먹어야겠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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