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남편이 3년차 회계사인데 일이 너무 많나봐요. 매일 집에서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오전 9시에 출근하고 반복이에요. 오늘은 집에서 3시간 동안 ‘진짜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퇴사해야지. 뭐 먹고 살지’를 무한 반복합니다. 이 업계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그리고 긴박하게 시키나요.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서 업계 최초로 설립된 노동조합이 3년 만에 해산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회계사들은 여전히 감사 업무가 몰리는 1~3월, 7~8월의 시기에는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자리 잡지 못하는 데는 업계 특수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삼일회계법인지부는 지난 2018년 11월 15일 설립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지부장으로 황병찬 현재 청년공인회계사회장을 선출했다. 노조 명칭은 ‘S-Union’으로, 설립 당시 규모는 150여명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3년 뒤인 2021년 9월 공식 해산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조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최소 2명 이상의 인원이 신고돼야 유지된다. 하지만 당시 황 위원장이 아닌 다른 한 명이 회사를 떠나면서 노조 설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황 위원장도 2021년 12월 삼일회계법인에서 퇴사했고, 이후 재설립 시도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회장은 “노조 활동 당시 운영 과정에서 회사의 큰 방해는 없었다”면서도 “다만 전임노조원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다른 요구사항들을 들어주는 대신 전임노조원을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일과 병행해 노조 활동을 하다 보니 제약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 삼일회계법인 노조가 출범했을 당시만 해도 노조 설립이 업계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회계사의 업무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1~3월엔 감사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재무제표 감사 업무가 집중돼 회계사들은 평소보다 더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청년공인회계사회가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회계사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기간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이 80시간을 초과하는 비율은 55.7%에 달했다. 40시간~52시간은 2.2%에 불과했다. 또 회계법인 입사 후 3~5년차(시니어 직급)인 상대적 저연차 직급의 노동 강도가 더 높았다.
그러나 삼정·안진·한영 등 대형 회계법인을 비롯해 업계 전반에서 노조는 설립되지 않았다. 황 회장은 이에 대해 “물론 노조 설립을 문의하는 연락이 있었지만, 최소 1명은 실명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듣고 나서는 노조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업계에서도 노조가 생기지 않는 원인으로 실명으로 활동할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또 입·퇴사 회전율이 높아 신규 가입자를 받고 심지어 노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근무 환경이나 복지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나중에 본인의 커리어(경력)에서 노조 활동을 했던 것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