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어떻게 최고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되짚은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간경향] 현직 대통령으론 사상 최초다. 형사재판 법정에 선 윤석열 대통령. 2월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사건 1차 공판 준비기일 및 구속취소 심문은 약 13분 만에 끝났다. 법정에 선 윤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변호사에게 뭔가 귓속말을 하는 등의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탄핵소추 심판을 통해서다.
헌재에서 그가 거론한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은 탄식했다. 계엄 선포의 정당성이나 잘잘못 여부를 떠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명령을 듣고 수행한 부하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며 “어찌 저런 사람에게 2년 7개월 동안 나라의 운명을 맡겼던가” 하는 물음이다.
의문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통 사람들이 그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다. 그러나 적어도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자질 부족’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저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사람을 ‘공정과 상식’의 화신(化身)인 양 포장해 내놓은 사람들의 책임은 없을까. 기자가 ‘윤석열’을 가까이서 보고, 그의 말과 행적을 추적한 사람들을 취재에 나선 까닭이다.
현직 중 최초 형사 법정에 선 대통령
“처음 만날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인수위원장을 하던 시절이다.”
최근 기자는 사적인 자리에서 윤석열 정권 출범 당시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을 만나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 대선 직전 안 의원은 2시간 30분에 걸친 단독면담을 통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했다. 당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인수위에는 많은 사람이 일한다. 그중 유독 일을 잘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물어보니 당선인과 잘 알고, 처음 캠프를 만든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또 나에게 부탁했다. 당선인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저 열심히 잘한다고 말해 달라고. 그 뒤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가 있어 그 사람이 참 일을 잘하더라고 칭찬했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 날 잘렸다.”
안 의원에 따르면 당시 저런 일이 일어난 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이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안철수 쪽에 붙었다’고 판단한 듯하다는 것이 안 의원의 설명이다. 그게 ‘사람을 보는 검사 마인드’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장사에서는 일단 사람을 믿고 시작하는 것이 기본자세인데 ‘검사 마인드’는 다르다는 것이다. 매번 만나는 것이 범죄자, 피의자이니 사람을 만날 때 기본 생각이 ‘저 사람은 범죄자일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는 의심이라는 것이다. 안 의원은 “이걸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라고 덧붙였다.
몇몇 단서를 근거로 ‘안철수와의 관계를 의심받아 인수위에서 쫓겨났던’ 이 인사를 접촉할 수 있었다. 2월 18일 기자와 통화한 이 인사는 “안 의원은 좋은 뜻으로 이야기했겠지만 이제 와 다 지난 이야기인데 뭐하러 언급하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캠프나 인수위에서 일찌감치 떠난 인사들은 더 있다. 대선 당시 강남일 전 대전고검장(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은 캠프 법률고문으로 위촉됐다. 윤석열·김건희 부부 주위의 건진법사 같은 무속인의 전횡에 항의하다 뜻이 통하지 않자 그만뒀던 것으로 소문났었다. 독실한 신자였던 강 변호사의 입장에서 ‘무속 라인’의 일방통행을 참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 소문은 사실일까. 법조계 설명에 따르면 강 변호사가 무속 관련으로 마찰을 빚었다는 것은 과장이다. 처가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주요 의사결정에서 여사가 나서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만뒀다는 것이다.
인수위원장 칭찬 다음 날 쫓겨난 까닭
“인간적인 면은 있었기 때문에 당선은 된 것이었다.”
2월 17일 기자를 만난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의 설명이다. 캠프 정책 총괄실장을 역임한 그는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간경향 1603호, ‘명태균 관련 거짓말에 캠프에서 있었던 일 공개하기로 결심’ 신용한 인터뷰 참조)
“인터뷰 때도 말했지만 ‘형이 알아서 할게’와 같은 형님리더십 같은 것이 있다. 사인간의 관계라면 분명히 장점은 있지만, 이번 내란 쿠데타 사건을 보면 그 장점이 엉뚱하게 발현된 것이다. 충암고 라인과 군 내 충청도 인맥을 동원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그래도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윤석열의 인생을 보면 순탄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다. 검사 시절에도 좌천을 당해 한직으로 떠돈 적이 여러 번이다. 심지어는 사표를 내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도 ‘짜장면 냄새가 그리웠다’라며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때마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몇 배 이상 가는 식이었다. 그런 경험에서 이상한 신념 내지는 환상이 생겼던 것 아닌가 싶다.”
“윤석열에게 인간적 매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윤석열에게서 술이나 밥을 얻어먹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에서 윤석열은 격의 없이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술값이나 밥값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나온 책 <망처시하 윤석열>를 쓴 최종희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대표의 말이다. ‘망처시하’란 아내에게 쥐여사는 남편의 처지를 빗댄 ‘엄처시하(嚴妻侍下)’의 ‘엄’을 망(亡) 자로 바꾼 것이다. ‘망처’는 원래 죽은 부인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남편을 망치는 아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그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나는 ‘언어가 그 사람이다’고 생각하고 있다. 언어는 어떤 사람의 사고방식, 심리, 선택의 총합이다. 윤석열이 쓰는 말과 부인 김건희가 쓰는 말을 보면 원래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런데 막판에 안철수가 단일화해주는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결국 계엄령이라는 최대의 악수를 두게 된 것은 재직기간 내내 그를 억누른 역대 평균 최저 지지율이나 총선 참패 등도 있었지만, 명태균 사건이 결정적인 뇌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전까지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만 상습적이고 만성적인 문제의 창고였지만, 명태균과 윤석열 본인의 통화까지 고스란히 까발려져서는 더 이상 도망칠 구멍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책에서 그는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한 무속의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2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건진이나 천공 등 무속인이 100일만 버티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윤·김 부부는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책과 비교적 거리가 먼 ‘유튜브 탐닉파’다 보니 천공과 같은 무속인과 일대일 대면도 잦고 윤석열까지도 무속의 의존도가 높은 부부다 보니 안팎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명태균이 말했다는 ‘장님무사, 앉은뱅이 주술사’라는 압축은 참으로 절묘한 요약인 듯싶다. 윤석열이 현실에 대한 오판으로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망언을 일삼는 것이나 탄핵소추 후 관저에의 반강제 유폐 때도 김건희 여사가 한가하게 개들을 끌고서 산책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두 사람은 ‘100일만 버티면’이라는 무속인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윤석열·김건희 무속 논란
2022년 6월 18일경 한 시민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근처 미군기지 담벼락 주변에 수십장 뿌려져 있었다고 제보한 용(龍) 자가 적힌 부적 / bada.us
올해 1월 14일 새벽, 한 유튜브채널 카메라에 포착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탄핵반대 시위 현장의 ‘용자’ 부적. /JBC뉴스 캡처
대통령 부부 주변 무속 논란은 건진법사, 천공 등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논란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대검 감찰부장을 지낸 한동수 변호사는 지난 2022년 10월 19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대검은 구름 속에 있는 기관처럼 국민이 그 실정을 알기 어렵다. 지난해 대검 청사 뒤편 웅덩이 근처에 용(龍) 자 부적이 뿌려져 있던 것도 기괴하다.”
한 변호사가 지난해 1월에 펴낸 책 <검찰의 심장부에서>에는 자신이 목격한 ‘부적’에 대해 자세한 부연설명이 실려 있다.
“어느 날 점심때 산책하다가 웅덩이 뒤 대나무숲에서 여러 장의 부적을 봤다. 네모난 흰 종이에 검은색 붓글씨체로 용 자 형상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경찰서에서 조사받거나 형사 문제로 조사를 받은 사람이 미신적인 의도로 군데군데 뿌려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할 때 용산 담벼락에 뿌려졌다는 용 자 부적 크기와 색상, 글 자체가 같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우연일까. 묘한 일치다.”
부적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가 결정된 뒤인 올해 1월 중순, 한남동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도 등장한다.
관저 부근 육교 옆에 주차돼 있던 트럭의 벽면에 누군가 사방을 두른 용 자 글씨를 붙여놓은 것이다. 필적 등을 비교해보면 한 시민이 대통령관저 주변을 산책하다 발견해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진 사진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한동수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 시절 자신이 목격했던 용 자 부적과 2022년 6월 18일경 시민이 찍은 용 자 부적 사진, 그리고 올해 1월 14일 새벽 한 유튜브 채널 영상에 포착된 한남동 부적 사진이 같은 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냐는 기자 질문에 “비슷한 것 같다”라는 대답을 내놨다.
“처음 봤을 때 한 7~8개쯤 됐을까. 이렇게 흩어진 것을 보면 이것은 무당이나 무속인의 솜씨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두 번째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 뿌려졌다는 부적 사진을 보니 완전히 대조해서 100% 일치하는 것까지 검증한 건 아니지만 동일한 인물의 동일한 글씨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뒤 한 변호사가 책에서 언급한 ‘만일 육사를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는 과거 윤석열의 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책에서 한 변호사는 윤석열로부터 그 말을 들은 것은 2020년 3월 19일 회식자리였다고 언급했다.
“자리에 참석한 다른 사람은 흘려듣는 분위기였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총선에 누가 다수당이 될까가 그날 회식의 중심 화제였다. 사람들이 만취하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는 채널A 사건이 약간 ‘밀당’처럼 되면서 잘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총선도 자기예측대로 흘러갈 것처럼 보이니 (윤석열 당시 총장의) 기분도 좋은 상태였다. 저도 그때는 특별히 충돌하는 것도 없었으니 그냥 믿고 부하들 앞에서 막 이야기한 거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아무튼 대통령이 되자는 생각은 중앙지검 시절부터 자리 잡았다고 본다. 총장이 되는 목표를 세운 뒤 그걸 이룬 뒤엔 대통령이 되는 목표를 세웠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영구집권을 꿈꾸는 그런 욕망이 끊임없이 계속 커져 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에너지와 힘은 윤석열의 힘이 아니라 김건희의 힘이라고 본다. 윤석열은 사법시험 하나 보려고 9년 동안 공부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주체적인 욕망의 덩어리를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건 김건희의 욕망이었다고 본다.”
“사실 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김건희 여사도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두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청와대에서 검찰총장 임명할 때 아닌가.” 김성순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지난 대선을 복기해보면 극과 극이 대치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복수를 확실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수 유권자들이 칼잡이 윤석열을 고른 것이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뭔지는 대선 과정에서는 다 드러나지 않았다.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문제는 탄핵 인용 이후 더 심각해지리라 전망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 인용은 불가피하다. 부정선거론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보수 지지자들이 순순히 승복할까 의문이다. 보수 쪽에서 국면은 이미 팩트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넘어갔다. 설혹 조기 대선이 치러져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주말마다 보수 지지자들이 거리에 나올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고 형사처벌이 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남긴 부정적인 정치적 유산은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