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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 ‘시민권 판매’
선진국이 기후재원 내팽개친 뒤 ‘호구지책’
나우루 해안가의 주택들.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아, 이주 프로그램이 절실한 상황이다. 나우루 정부 누리집 갈무리

남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나우루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민권 판매’에 나섰다. 선진국들이 ‘기후재원’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결과 가난한 나라가 생존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호구지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작은 섬나라가 기후변화를 이기기 위해 여권을 판다”는 제목으로 나우루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나우루 경제 및 기후 회복력 시민권’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지난해 11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공개한 이 프로그램은, 나우루의 기후 ‘적응’을 위해 10만5천달러(1억5천만원)를 기부한 사람에게 나우루 시민권을 주는 것을 뼈대로 한다. 나우루 정부는 “투자자들은 89개 국가에 무비자로 입국하고, 제한 없는 이중국적을 확보할 수 있으며, 가족에게도 시민권을 확대해 적용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 서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인 나우루의 면적은 21㎢가량으로, 전세계에서 바티칸시국, 모나코 다음으로 작은 나라로 꼽힌다. 독립 공화국으로선 가장 작다. 19세기 말 독일 식민지가 됐고 2차대전 땐 일제에 점령되기도 했다가, 1968년 독립했다. 무엇보다 나우루는 1980년대 이전까지 전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나라로 손꼽히는 등 한때 ‘부자 나라’로 유명했다.

나우루 정부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시민권 판매’ 프로그램 소개. 누리집 갈무리

철새들의 똥 등으로 이뤄진 섬의 표면이 희귀자원인 인광석이었기 때문에, 이를 채취해서 팔기만 해도 ‘석유 재벌’ 못지 않게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던 탓이다. 인광석이 품은 인산염은 비료 원료부터 의약품, 반도체, 세라믹, 실크 등 다양한 제품의 원료가 된다. 197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달러에 육박했다.

그러나 나우루의 인산염 매장량은 1990년대 들어 감소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아예 고갈됐다. 이에 따라 한때 가장 부유했던 나라가 순식간에 가난한 나라가 됐다. 수십 년 동안의 채굴로 이미 국토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황량한 땅이 되어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섬 자체가 사라질 위협에 놓였다.

2002년께 찍힌 남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의 위성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블룸버그는 미국 항공우주국 (NASA ) 데이터를 인용해 , 나우루에서 기준치보다 0 .5m 이상 높았던 홍수가 1975 ~1984년에는 8일 발생했었는데 2012 ~2021년에는 146일이나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 이런 기후위기에 ‘ 적응 ’하기 위해 나우루는 주민들이 주로 살고 있는 저지대에서 1만여명을 고지대로 이주시키고 새로운 마을 ·농장 ·직장을 개척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 그 전체 비용은 6500만달러 (934억원 ) 로 추산된다 . 이 비용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권 판매 ’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

블룸버그는 현재 “나우루가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신청을 받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 미국, 파키스탄, 영국을 포함한 지역에서 문의가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나우루 정부는 오는 6월30일부터 12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으로 900만호주달러(573만달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66명의 신청을 받아 그 연간 총액을 6800만호주달러(4335만달러)로 늘릴 계획이라고도 보도했다. 그래도 ‘시민권 판매’만으론 전체 적응 비용을 다 감당할 수 없어 다른 공공·민간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나우루 정부는 “나우루와 더 넓은 태평양 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돕는다”는 목적에 더해, “홍콩, 아일랜드,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영국 등의 지역에 비자 없이 갈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시민권 판매를 홍보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대안 여권으로 여행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귀중한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같은 ‘시민권 판매’ 프로그램은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기후재원’을 내팽개친 결과 궁지에 몰린 최빈국들이 쥐어짜낸 ‘호구지책’이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기후총회는 새로 마련해야 할 ‘기후재원’에 대한 합의를 이뤄낼 장으로 주목받았는데, 단지 “선진국은 2035년까지 연간 3천억달러 기후재원 마련을 주도한다”는 결과만 이끌어내는 데 그쳤다. 이는 애초 선진국에게 요구됐던 “연간 1조달러 이상” 기여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다. 이 때문에 나우루가 소속된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 등은 협상 도중 협상장을 빠져나가는 등 항의를 표출하기도 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은 나우루에 앞서 이 같은 ‘시민권 판매’에 대대적으로 나섰던 선례로 꼽힌다.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이 나라는 복구 자금 마련을 위해 ‘시민권 판매’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가동했었다. 주로 중국이나 중동에 있는 부유한 개인들이 수십만달러를 지불하고 도미니카 시민권을 사들였는데, 이것이 미국·유럽 등 ‘서방세계’로 접근하는 통로로 유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결국 극소수 부유층의 ‘시민권 쇼핑’에 동원될 뿐 장기적인 기후위기 적응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과 비판도 제기됐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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