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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인터뷰
“가처분 시간·적절한 휴식이 저속노화 바탕”
“개인의 저속노화, 사회 발전에도 도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마라탕후루(마라탕과 탕후루를 함께 부르는 말)’로 대표되는 자극적인 식사의 대척점에는 저속노화 식단이 있다.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튀긴 치킨보다는 구운 통닭을, 탄산음료보다는 맹물을 마시는 식단이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의 유행을 반대한다. 대신 슴슴하고 담백한 한식을 추구한다.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건강한 식사다.

그런 정 교수도 매일 칼같이 저속노화 기준에 맞춰 식사하는 건 아니다. 정 교수는 지난 6일 밤 당직을 선 후 7일 곧바로 외래 진료를 시작했다.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를 모두 거른 채 저녁이 되어서야 먹은 첫 끼는 돈가스. 이후 실신하듯이 잠든 후 8일에 눈을 떠 아침을 먹었다.

“너무 힘들어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었어요. 제가 먹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죠. 돼지고기 뒷다릿살이 96% 들어간 소시지와 얇은 베이컨 2장, 써니사이드업(계란 프라이), 블랙 푸딩(돼지 피, 오트밀, 보리 등이 들어간 소시지) 3조각, 그리고 올리브유에 구운 해시 브라운을 먹었네요. 일종의 컴포트푸드죠.”

정 교수는 ‘식단을 한다’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칫 식단을 꼭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어서다. 정신적으로 지친 상황에서 무리하게 식단에 맞춰 식사하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안정적인 상태를 우선 갖추고 이후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결국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가처분 시간과 적절한 휴식이 저속노화 습관의 전제조건이다.

눈에 보이는 ‘노화’보다는 ‘내재 역량’에 초점 맞춰야
식재료에 신경 쓰기 전 건강한 삶의 지향점 설정이 우선이라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정크푸드로 스트레스를 푸는 삶’ ‘잠을 줄여 숏폼을 보는 삶’ 등을 목표로 살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순간적으로 도파민을 내는 자극적 인지 활동은 반대급부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부른다. 급하게 기분이 좋아진 만큼 빠르게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 낙폭도 크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셈이다. 이 같은 활동이 반복되면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고 편도체가 과활성화돼 ‘뇌 썩음(brain rot)’ 상태가 된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뇌와 근육이 성장하려면 몸 고생, 머리 고생, 마음고생을 적당히 해야 해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건강한 도파민을 찾는 거죠. ‘노잼 활동’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요즘은 이런 활동을 싫어하고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안 해볼지 고민합니다. 그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해요. 저는 ‘편안한 불편’이라고 표현하는데, 당장은 불편해도 습관이 되면 100년 동안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어요. 단순히 렌틸콩을 밥에 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가는 삶의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내재역량’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내재역량은 한 개인의 질병 유무, 혈압, 운동 시간 등 눈에 보이는 건강뿐만 아니라 적절한 휴식, 자기효능감, 목표 설정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

정 교수가 강조하는 ‘저속노화’는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게 아니다. 대신 내재역량을 관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타인의 돌봄 요구가 없도록 의학적 노력을 하고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이다.

식단, 수면 등 저속노화와 관련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 캡처

다만 한국은 아직 구조적으로 저속노화를 지원할 준비가 부족하다. 그래서 자기 돌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보통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6%를 넘어가면 노인의학 관련 연구가 활성화돼요. 그때부터 노인의 장기 요양 서비스 같은 게 사회에 부담을 주니까 어떻게 하면 이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준비하는 거죠.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하고 있지 않아요. 굉장히 많이 늦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24일 65세 이상 인구가 주민등록 인구 중 20.0%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구조는 갖춰지지 않았다.

식단·운동 등 개인의 노력, 사회 발전에도 도움
MZ세대를 중심으로 저속노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저속노화는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 ‘잘 관리된’ 개인의 삶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

정 교수는 하루 1시간 잠을 덜 자는 생활을 2주간 지속하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혈중알코올농도 0.08% 정도로 취한 인지 기능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소주 1병을 원샷한 상태와 비슷하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출근하더라도 업무 효율이 날 수 없다는 뜻이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특히 각성제를 먹어가며 근무 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대신 더 잘, 더 깊게 사고할 수 있는 게 지금 시대의 경쟁력이고 이를 위해서는 자기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썩은 뇌 상태에서는 실리콘 밸리에 있는 사람들하고 경쟁해서 이길 수 없어요. 지금은 미라클모닝을 하고 N잡을 뛰며 나를 학대하고 잠을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잘 자고 뇌가 깨끗해지는 음식을 먹으라 합니다. 항상 운동을 하고요. 내 연장인 뇌와 몸을 깔끔하게 만든 상태에서 일해야 한다는 겁니다.”

“악플러들이 가끔 부모님 안부 묻는데 모두 건강”
저속노화 홍보대사인 정 교수의 부모는 어떤 식사를 할까. 정 교수는 “저속노화가 가풍이었던 것 같다”며 각각 1956년생과 1959년생인 아버지 어머니 모두 만성질환 없이 건강하다고 전했다. “두 분 다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충분히 하세요. 할아버지는 1928년생이신데 요즘도 엘레베이터가 고장 나면 9층까지 걸어 올라가시고요. 가끔 악플러들이 부모님 안부를 묻는데 모두 건강하십니다.”

정 교수는 지난달 31일 본가에서 부모와 함께 식사했다. 저속노화 식사법에 대한 책과 논문을 실컷 읽고 쓴 후였다. “결국 저속노화 식단이라는 게 엄마 밥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잡곡밥에 두부 잔뜩 넣은 찌개, 해산물과 채소가 가득한 전. 샐러드를 반찬으로 내시고 약간의 고기와 생선을 드시죠. 늘 말씀드리는 전통 한식이에요. 잡곡과 채소가 메인에 단백질이 약간 추가된 정도입니다.”

식단, 수면 등 저속노화와 관련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 캡처

이런 가풍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정 교수가 엑스(X)에 올린 초등학생 아들의 식단이 화제가 됐다. 멸치, 어묵, 광어, 김, 잡곡밥 등으로 구성된 식단이었다. 일부 누리꾼은 아이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양이 적다고 지적했다.

“뼛속까지 이과라 그런지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설명하면 비교적 빨리 습득하더라고요. 집에서 먹는 음식 자체가 뻔하다 보니 그런 음식들에 계속 노출돼서 굉장히 협조적이에요. 강압적으로 하진 않았습니다. 그 사진은 참고로 식사 중 찍은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고 집에서는 저속노화 식사를 한다. 물론 간식도 먹는다.

“100세 인생에서 ‘85세’까지 현역으로 남고파”
언론 기고 등 본격 대외활동에 나선 지도 벌써 5년째. 지난해에는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를 개설했다.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저속노화를 알리고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채널 개설 7개월 만에 영상 41개를 올렸다. 구독자도 25만명에 달한다. 한국인이 좀 더 건강하게 나이 들도록 돕고 싶다는 게 정 교수의 꿈이다. “신체 건강, 인지 건강, 정서 등 모든 게 균형 있게 나이 들어야 ‘잘 나이 든다’라고 할 수 있겠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이 어느 정도 괜찮은 상태를 만드는 겁니다. 신체적, 인지적 사회 활동은 가능한 이어가는 게 좋고 전반적인 생활 습관도 중용에 부합하는 게 좋겠죠.”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지금처럼 환자를 보고 논문을 쓰고 교육을 하는 ‘현역’으로 85세까지 지내는 게 정 교수의 장기 목표다. ‘100세 인생’이 당연하고 그 이상을 대비해야 하는 사회에서 오랜 시간 현장에 남고 싶다는 마음이다.

정 교수가 생각하는 저속노화의 핵심은 ‘흐름’이다. 단순히 밥 한 끼를 건강하게 먹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중용’의 인생을 위한 추세선을 그리는 과정이다.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가끔의 일탈도 괜찮다고 정 교수는 설명한다. 곧 다가오는 구정의 명절 음식도 마찬가지다.

“차례상에 쌀밥을 올리긴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밥만 잡곡 콩밥으로 바꿔도 좋을 것 같아요. 나물이랑 함께 비빔밥으로 먹으면 좋겠네요. 잡채, 갈비찜 같은 것도 너무 많이 먹지 않으면 괜찮아요. 명절 때 먹고 살 좀 찔 수도 있죠. 그냥 즐기세요.”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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