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피디의 큐시트
희대의 인질극에 헬기 동원 추격전까지
역사 속 흔치 않은 경찰 체포 생중계
현직 대통령 체포 장면에 ‘딱’인 이 노래
희대의 인질극에 헬기 동원 추격전까지
역사 속 흔치 않은 경찰 체포 생중계
현직 대통령 체포 장면에 ‘딱’인 이 노래
2023년 4월26일(현지시각) 미국 국빈방문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다. 대통령실 제공
경찰의 체포 장면을 우리가 생중계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1988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죄수들이 이송 중에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다시 검거되었으나 4명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아 서울 시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은 결국 가정집에 침입해 일가족을 인질로 잡았고, 경찰과 티브이(TV) 카메라들이 그 집을 둘러싸면서 희대의 인질극 생중계가 시작되었다.
일당의 우두머리 지강헌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찍부터 절도범으로 전락해, 탈주 당시 이미 상습절도를 비롯한 전과 11건의 잡범이었다.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이 시인이었다고 하는 그는 인질극 당시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을 상대로 어록을 쏟아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 살 순 없지만 마지막만큼은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 총은 그 누구도 나에게서 뺏을 수 없어. 이건 내 마지막 재산이야.”
마지막 외침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2세’의 대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슬픔만은 그 누구도 나에게서 뺏을 수 없어. 왕관과 왕국을 가져가더라도 말이야. 내가 더 이상 이 나라의 왕은 아닐지라도 나는 여전히 슬픔의 왕이야.”
지강헌은 죽기 전에 경찰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대치 중인 경찰에게 노래를 신청한 인류 역사상 유일한 범죄자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노래가 나중에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이성재 주연)의 제목이 되기도 한 비지스의 ‘홀리데이’(Holiday), 오늘의 첫 곡이다. 영화 장면들을 뮤직비디오로 만든 영상도 볼만하다. https://youtu.be/7jf497Fj0CA?si=meLdZoc6K0LpiotP
‘홀리데이’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체포 장면은 오 제이(O. J.) 심슨이 주인공이다. 위대한 미식축구 러닝백으로 칭송받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슈퍼스타였던 그는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던 중 잠적해버렸다. 엘에이(LA) 경찰은 긴급 수배령을 내렸고 이틀 뒤 그 유명한 추격전이 펼쳐졌다. 경찰 차량은 물론이고 헬기까지 동원되어 심슨의 차를 쫓았고 이 과정은 시엔엔(CNN)과 지상파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어 1억명 가까운 시청자를 기록했다.
체포 뒤 재판도 생중계되어 엄청난 시청률을 올렸는데,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재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많이들 알다시피, 명명백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재판 결과는 무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지강헌의 외침이 여기서 또 메아리치는 듯하다. 그러나 민사 재판에서는 막대한 돈을 물어줘야 했고 초호화 변호인단 비용까지 지불하느라 심슨은 파산에 이르렀다. 말년에는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감옥에 갇혀 10년 가까이 형을 살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하늘의 형벌을 받은 셈일까?
심슨은 스포츠 선수로 은퇴하고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연예계에서 활동한 대중 스타였으며 흑인 최초로 유명 대기업의 광고들을 찍은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단골손님이었고 영화에도 정말 많이 출연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인공 형사 단짝으로 출연했던 코미디 영화 ‘총알 탄 사나이’ 시리즈가 제일 유명할 듯하다. 유튜브 영상 2분만 봐도 웃음 보장. https://youtu.be/umOuik_Rdgs?si=Rsc7sILe0vvKr8rn
코미디 영화 ‘총알 탄 사나이’ 시리즈 관련 영상
이 영화를 유치한 슬랩스틱 코미디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만만하게 볼 작품이 아니다. 개봉되었던 1988년 미국 최고 히트작이었고 지금도 코미디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총알 탄 사나이’의 멋들어진 주제곡이 오늘의 두번째 노래다.
https://youtu.be/9Bx20cflBBk?si=12bPlnf4CgtUg13I
‘총알 탄 사나이’ 주제곡
자, 그리고 또 하나의 체포 작전이 생중계되었다. 이번엔 대통령이다.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되었는데도 관저를 요새처럼 만들어놓고 버티다가 해를 넘겨 집행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장면을 위해 미리 직접 노래를 불러두었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에서 불렀던 돈 매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가 오늘의 끝 곡이다. https://youtube.com/shorts/UdnrCodTjSI?si=1sY5SU-jX54YSATx
윤석열 대통령이 부르는 ‘아메리칸 파이’
당시 뉴스를 보면서 나는 정말 의아했다. 누군가 이 노래의 한 소절을 부른다면 100명 중 99명은 ‘바이~ 바이~ 미스 아메리칸 파이’로 시작하는, 귀에 익숙한 코러스 부분을 부를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앞부분만 노래하고 멈췄다. 왜 그랬을까? 혹시 코러스 부분의 가사가 현실이 될까 주술적인 두려움 때문에? 소름 돋게 예언적인 노랫말을 소개하면서 오늘 칼럼을 마친다.
그러니, 예쁜 아가씨여 이제 안녕.
차를 끌고 강에 가봤는데 강물은 벌써 말라버렸더군.
옛 친구들은 술을 마시며 노래하네.
오늘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 될 거라고.
오늘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 될 거라고.
이재익 에스피에스(SBS)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