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과 세상]
에밀리 A. 캐스파 '명령에 따랐을 뿐!?'
인지신경과학자의 명령 복종 뇌 분석
여인형(왼쪽)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류혁 법무부 감찰관. 뉴스1·류기찬 인턴기자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열린 법무부 장관 주재 긴급회의에서 사표를 썼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위법한 계엄에서 출발한 명령을 따르는 것은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운영하는 간수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12·3 불법계엄 주요 지휘관 중 한 명인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위기 상황에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가 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위헌적인 계엄 명령을 내린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류 감찰관처럼 저항할까 아니면 여 사령관처럼 명령에 따를까. 인지신경과학자인 저자 에밀리 A. 캐스파 벨기에 겐트대 실험심리학과 부교수가 쓴 '명령에 따랐을 뿐?!'은 한국 독자들을 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밤 선택의 기로 앞에 세운다.

계엄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저자는 홀로코스트(1,100만 명 사망), 캄보디아 킬링필드(150만 명 사망), 르완다 집단학살(50만 명 사망) 등 역사적 비극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에 어떻게 굴복하는가. 저자는 개인 간 도덕성 우열로 납득하기 힘든 역사적 비극에 과학적으로 접근해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의 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증적으로 살핀다.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함락된 직후, 어린 시민군이 계엄군에 끌려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명령을 따르는 뇌의 반응을 보기 위해 지난 8년간 실험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4만5,000명에게 내렸다. 이 중 약 1,340명(2.97%)만이 명령을 거부했다. 전기 충격 명령을 따르면 보상은 고작 0.05유로(약 75원)에 불과했다. 보상이 명령을 따르는 데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저자는 실험에서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뇌에서 주체성과 책임감, 공감과 죄책감을 담당하는 영역 활동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때보다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명령이 하달되는 강력한 계층 구조가 형성돼 있을 경우 당사자의 책임이 약화되면서 악의적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법정에 선 국가폭력 가담자들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내뱉은 이 무책임한 해명은 자기 방어적 태도일 뿐만 아니라, 뇌가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는 데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집단학살 가해자 집단이 명령 이행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 피해자 집단을 꾸준히 '비인간화'하는 사전 작업에 골몰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실험 결과, 이런 세뇌 교육은 뇌가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떨어뜨렸다. 나치는 유대인을 '쥐'로, 르완다에서는 학살 피해자인 투치족을 '바퀴벌레'와 '뱀'으로 묘사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가해자인 크메르 루주 역시 반대 세력을 '내부에 잠복한 숨은 적' '병적 요소'로 표현하면서 '청소' '분쇄' '죽이기'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언론을 통해 혐오를 조장하며 피아를 구분하는 행동의 사회적 해악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연구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독될까 염려한다. 그러면서 연구의 초점과 목적이 불복종한 극소수 사람들의 행동 기제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예방의 열쇠는 이해"라며 "(이 연구가) 집단학살의 무의식적 신경 활동과 같은 지식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공감, 도덕적 용기, 독립적 사고를 촉진하는 개입 방안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명령에 따랐을 뿐!?·에밀리 A.캐스파 지음·이성민 옮김·동아시아 발행·380쪽·2만 원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5157 7시간 ‘끝장 협상’ 결렬…특검법 수정안, 야당 주도 본회의 통과 랭크뉴스 2025.01.18
35156 “TSMC와 딤섬집 딘타이펑의 공통점은?”… 웨이저자 회장이 대학생들에 전한 이야기는 랭크뉴스 2025.01.18
35155 '건당 60만원 간병인 모집' 여성 유인·납치한 20대 구속송치 랭크뉴스 2025.01.18
35154 尹 구속여부 가를 쟁점은…"대통령 통치행위"vs"국헌문란 내란" 랭크뉴스 2025.01.18
35153 尹 운명 쥔 차은경 판사…'이재명 측근' 정진상 구속적부심 기각 랭크뉴스 2025.01.18
35152 매장으로 차량이 “쾅쾅”…6시간 뒤 나타난 차주의 황당 해명 뭐길래? 랭크뉴스 2025.01.18
35151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올림픽 金→IOC 선수위원→체육대통령... 유승민의 대반전 드라마 랭크뉴스 2025.01.18
» »»»»» "명령에 따랐다"... 대통령 불법계엄 왜 거부하지 못했을까 [책과 세상] 랭크뉴스 2025.01.18
35149 영장심사 불출석 尹 “뜨거운 애국심 감사” 지지자 결집 촉구 랭크뉴스 2025.01.18
35148 [르포] 전통 부촌 방배서 ‘로또 청약’ 단지… “역세권 입지 강점” [래미안 원페를라] 랭크뉴스 2025.01.18
35147 "독감 걸렸어도 백신 맞아야"…올핸 2종류 동시 유행 랭크뉴스 2025.01.18
35146 한수원, 어떻게 웨스팅하우스 마음 돌렸나... 원자력계 "통 큰 양보했을 것" 랭크뉴스 2025.01.18
35145 [단독] 검찰, 국수본 간부 소환 조사... '경찰 체포조 지원' 수사 재시동 랭크뉴스 2025.01.18
35144 "다 끌어내" 尹 지시, 영장심사 쟁점될 듯... 구속 땐 내달 초 재판행 랭크뉴스 2025.01.18
35143 STX 다롄 조선소 인수해 재가동…中조선 물량 넘쳐난다 랭크뉴스 2025.01.18
35142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 위기, 이르면 오늘 밤 결정 난다 랭크뉴스 2025.01.18
35141 尹대통령 운명의 날 밝았다…이르면 오늘 밤 구속여부 결정 랭크뉴스 2025.01.18
35140 [홍성걸의 정치나침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랭크뉴스 2025.01.18
35139 낮부터 기온 올라 '포근'…곳곳 미세먼지 '나쁨' 랭크뉴스 2025.01.18
35138 '계엄의 강'에 빠진 與 '반이재명'에 막힌 野... 갈 곳 없는 중도 민심 랭크뉴스 202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