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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경제]

언젠가 한국은 외신 기자들의 천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도 특종이 많아 뉴스거리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올 겨울 가장 추웠던 시기에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뉜 시민들이 대통령 관저 앞에서 밤새가며 대치했고, 헌법재판소와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는 화환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국가 경영을 책임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택할 때는 우리 정치와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계엄 사태 이후 한 달이 지났어도 윤석열 대통령에겐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탄핵을 포함한 모든 사법적 결과는 오로지 개인 윤석열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강추위를 마다 않고 거리에 나섰다. 6070이 주류였던 태극기 부대에 2030도 가세하고 있고, 그토록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했던 여론조사도 확연히 그 방향을 바꾸었다.

이게 한국 정치의 역동성인가. 광복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UN에서 두 표를 가진 유일한 나라가 된 것도 모자라 이젠 동서, 혹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네 쪽이 날 판이다. 국민의 심판을 받아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수단으로 통치 불능 상태를 유발해 권력을 뺏으려 한다. 지지층 결집을 넘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 권력을 잡으려는 욕심에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서로 죽고 죽이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는 지금의 한국은 이미 정상적인 민주 국가가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혼란을 보며 문득 떠오른 말이다. 유대 경전 주석자인 마드리시가 했던 말이라고도 하고, 페르시아 지방의 우화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헌법과 정치 제도,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지금의 이 사태는 지나가지 않고 무한 반복될 것이다.

87년 헌법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했지만, 작금의 사태는 오히려 제왕적 국회가 더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이 대통령제를 선호하기에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은 쉽지 않다.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견제할 계엄 해제권을 의회에 부여했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의회 해산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해야 한다. 제왕적 정당 대표의 출현을 막고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 대표가 아니라 국민에 충성하도록 정당 구조와 공천 제도도 바꾸자. 헌법과 법률의 중대한 위반 시에만 가능한 탄핵소추권 남용 시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정당과 국회의원으로부터 독립적인 의원 윤리 제도를 확립하고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해 윤리와 품격을 훼손한 의원들을 확실히 징계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인 불체포특권을 비롯한 모든 특권을 없애 국회의원을 진정한 봉사자로 되돌려야 한다. 범죄 의혹을 받는 사람이 공동체를 대표하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니 기소된 사람은 판결과 관계없이 선출직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자.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광범위한 시민 정치 교육이다. 관용과 봉사 정신, 올바른 역사의식과 공동체 정신에 투철한 사람만이 대표로 나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돌멩이라도 주워 일어나는 사람이라야 미래가 있다. 어차피 겪고 있는 정변이라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민주적 정치 제도로 바꾸고 사람도 바꿔야 한다.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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