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독일 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아스파라거스
아삭 섬세한 맛…왕실 상류층이 즐긴 ‘식품의 왕’
생김새 덕에 정력제 믿음…카마수트라 에도 레시피
설날엔 떡국, 복날엔 삼계탕.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때가 되면 ‘집단적으로’ 먹는 음식들이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는 칠면조가 그렇고, 일본 사람들이 섣달그믐날 먹는 도시코시 소바가 이런 사례로 꼽힌다. 독일 사람들에겐 아스파라거스가 그런 음식이다. 해마다 5월이면 독일 사람들은 아스파라거스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4월 중순부터 시작돼 두 달간 수확되는 아스파라거스를 먹는 것은 독일인들이 봄을 맞이하는 전통적 의례다. 이들이 주로 먹는 아스파라거스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녹색이 아닌, 흰색 아스파라거스다. 독일 언론은 매년 이맘때면 아스파라거스에 관한 각종 뉴스를 쏟아낸다. 독일 맥도널드엔 ‘스파겔’(독일어로 아스파라거스) 버거까지 있다.
한국에 있는 독일인들은 함께 모여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며 나름의 축제를 즐긴다. 매년 5월이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아스파라거스 디너 파티를 펼치는데, 이달 30일에도 이 행사가 열린다. 국내에선 흰색 아스파라거스를 쉽게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독일에서 수백㎏의 아스파라거스를 공수해온다. 2023년 이 행사를 취재했는데 퍽 흥미로웠다. 아스파라거스를 사용한 수프며 샐러드, 전채 요리가 차례로 나온 뒤 메인 요리가 등장할 시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독일인에 대한 편견이 무색하게 이들은 들뜨고 흥분된 표정으로 서빙될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요리기에… 뼈가 붙은 거대한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가 층층이 탑을 이루기라도 하는 걸까. 막상 앞에 놓인 접시를 보니 좀 당황스러웠다. 큼직한 접시엔 하얗고 굵고 길쭉한 아스파라거스 예닐곱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곁들여 나온 것은 노란 올랑데즈소스. 그저 ‘삶은’ 아스파라거스는 이날의 메인 요리였고, 많은 독일인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귀한 손님이었다. 그들은 환호하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봄을 만끽했다.
독일의 사랑이 압도적이긴 하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채소다. 고대 로마에서도 먹었던 아스파라거스는 주로 왕실과 상류층이 즐겼다. 흐드러지게 음식이 차려지는 고대 로마의 연회 메뉴 중 하나가 ‘아스파라거스 위에 얹은 참새고기 요리’다. 프랑스 요리의 기초를 닦은 17세기 요리사 프랑수아 피에르 라 바렌은 저서 <프랑스 요리사>(Le cuisinier francois)에서 올랑데즈소스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며 아스파라거스의 사회적 위상을 암시했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곤차로프가 쓴 <오블로모프>는 러시아 음식 백과사전으로도 불릴 만큼 음식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 당시 러시아 상류층의 식생활은 프랑스 음식이 지배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귀족 나으리께서 어떻게 아스파라거스 대신에 기름에 버무린 순무를 드실 수가 있담.” 대한제국을 방문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황실이 제공한 프랑스식 정찬 코스요리에도 ‘아스파라거스 줄기와 올랑데즈소스’가 포함됐다.
아스파라거스의 귀족적 이미지는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가 ‘식품의 왕’이라는 작위를 부여했다는 서사가 더해지며 오랜 시간 공고하게 유지됐다. 그는 궁전에 전용 온실을 만들어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할 정도였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스파라거스를 나르기 위해 함대까지 만들었다니, 황제 채소라고도 부를 만하다.
지금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비싸고 이색적인 식재료로 여겨졌다. 특급 호텔에선 아스파라거스를 사용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프로모션도 활발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강원도에서 본격적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면서부터다. 서늘한 기후로 생육 조건이 적합한 강원도에선 일찌감치 아스파라거스 재배가 시작됐다. 도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재배에 나서면서 현재 강원도의 아스파라거스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양구, 화천, 춘천, 인제 등이 주요 산지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스파라거스 수출길이 막히자 당시 최문순 강원지사는 아스파라거스 판매 홍보에 나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스파라거스는 아삭하고 섬세한 맛을 자랑한다. 숙취와 피로 해소에 좋고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되는 등 영양적 가치도 높다. 맛과 영양이 뛰어난 식품이 천하를 호령했던 이들에게 사랑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정력을 강화하고 최음제로서 기능한다는 믿음도 더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이 믿음에는 아스파라거스의 생김새가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아프로디테의 채소로도 불린 아스파라거스는 성애 교본 <카마수트라>에도 레시피가 소개돼 있다. 유럽에선 신혼부부에게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권했다. 반면 중세 수도원에서 아스파라거스는 금기 식품으로 여겨졌다. 음란한 상상력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19세기 프랑스 여학교에선 아스파라거스 배식을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스파라거스를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한 이는 독일의 대문호이자 미식가인 괴테다. 그는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 차례 아스파라거스를 언급했다. 5월, 즉 아스파라거스 수확이 한창인 시기에 보냈던 그의 편지를 보면 아스파라거스를 혼자만 먹으라거나 당신과 함께 먹고 싶다거나 하는 문구들이 나온다. 그가 아스파라거스를 거론한 것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했겠지만 감정적 은유를 담은 대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봄 도다리쑥국이나 가을 전어처럼 단순한 계절적 안부를 묻기 위함은 아니었을 듯하다.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소변을 보면 심한 악취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스파라거스 속 성분, 아스파라긴산이 분해되면서 나는 냄새라는 것이다. 10년 전 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는 이런 ‘상식’을 ‘판타지’로 꽤나 기발하게 표현한 대목이 있다. 실어증 걸린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청년 폴은 우연찮게 이웃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실내에 불법적으로 정원을 만들어 놓은 마담 프루스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폴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스파라거스 차를 대접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스파라거스는 기억을 씻어내 오줌으로 나오게 만든다. 차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폴은 이튿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역한 냄새에 흠칫 놀라고 만다.
‘섹스하기 전에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할 것’ 이런 종류의 제목을 단 칼럼이나 기사를 인터넷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음식 재료가 아스파라거스다. 섭취 후 특유의 강한 냄새가 소변 등 체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섹스하기 전에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뭘까? 미국 유명 섹스테라피스트이자 방송인 수전 블록은 그의 저서 <쾌락의 십계명>에서 ‘셀러리’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