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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드는 K태양광
한동안 먹구름이 끼었던 국내 태양광 업계에 다시 볕이 들고 있다. 한화솔루션 주가는 지난해 말 1만5000원대에서 이달 현재 3만원대로 2배가량 올랐다. 최근 실적 호조에 힘입었다. OCI홀딩스도 분위기가 좋다. 핵심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태양광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모듈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데다, 경쟁 상대인 중국이 강력한 규제로 타격을 입을 것이 유력해지면서 한국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K태양광이 미국의 우호 정책 등에 힘입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사진은 한화솔루션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지은 태양광 발전소. [사진 한화솔루션]
한화솔루션은 올해 1분기 매출 3조945억원, 영업이익 303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달 말 공시했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31.5%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당초 증권가에선 한화솔루션이 1분기에 600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미국 주택용 태양광 사업에서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22%의 성장세를 기록한 데 힘입었다”며 “2035년까지 연평균 8%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깜짝 실적에 증시 투자자는 매수세로 화답했다.
OCI홀딩스도 올해 1분기 매출 9465억원, 영업이익 487억원으로 선전했다. 직전 분기보다 매출은 10.8%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김효식 삼성액티브자산운용 팀장은 “올해 들어 미국 내 태양광 모듈 판매 가격이 오르고 있고 2분기에도 추가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 같은 변화가 기업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OCI그룹은 2008년 폴리실리콘 생산, 한화그룹은 2010년 한화솔라원 인수로 태양광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태양광 모듈은 태양광 산업에서 최종 생산되는 완제품이다. 처음엔 정제된 실리콘을 단결정 형태로 만들어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고, 다음으로 이것을 얇게 썰어 웨이퍼를 만든다. 이 웨이퍼에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셀이 붙고, 그 셀을 하나로 잇는 제품이 모듈이다. 한국 태양광 산업(이하 ‘K태양광’)의 핵심 수출 시장은 미국이고 핵심 수출 품목이 모듈인데, 그 수요가 늘면서 판매 가격도 오름세라 두 기업 실적이 반등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내 태양광 모듈 생산 규모는 지난해 40GW(기가와트)에서 올해 50GW, 내년 56GW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태양광 시장, 중 업체 점유율 70% 달해
한화솔루션 미국 조지아주 달튼 1공장 전경.
K태양광은 지난 수년간 실적 부진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2023년 한국태양광산업협회가 위기감 속에 “정부가 태양광 산업의 생태계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정책 전환과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을 정도다. 태양광은 전 세계적 흐름이던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정책에 힘입어 각광받은 발전원이다. 석탄화력보다 발전 단가가 지난해 기준 2분의 1 이상 저렴하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안전성에 물음표가 붙은 원전보다 안전한 친환경 발전원으로 인식돼서다. 한동안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면서 “K태양광이 새로운 유망 수출 산업으로 성장 중”이라는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탈(脫)원전에 나섰던 주요국이 전력을 원활하게 확보하지 못해 수입할 처지에 다다른 ‘에너지 안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원전으로 유턴, 태양광 수요는 기대보다 증가세가 더뎠다. 시장 선점을 위한 선제 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던 각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진 배경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태양광 산업에 적극 뛰어든 게 결정타였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 따르면 2018~22년 5년간 중국은 글로벌 태양광 신규 장비의 약 39%를 설치할 만큼 태양광 산업 육성과 점유에 성공했다. 그러면서 중국발(發) 과잉 공급이 심화했고 이는 폴리실리콘과 웨이퍼·셀·모듈 등 태양광 산업 모든 부문의 판매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아닌 중국 기업을 택하는 글로벌 고객도 계속 늘어났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email protected]
그러나 미국의 수입 감소가 태양광 모듈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판매가격 반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등 경제가 급성장 중인 신흥시장의 태양광 수요가 새롭게 가세해 청신호가 켜졌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에 따른 변화도 K태양광엔 호재로 작용 중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대선 토론회 등 공식석상에서 “태양광은 멋진 산업”이라고 발언하는 등 태양광 발전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화석 연료로의 귀환을 선언할 만큼 반친환경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예외적으로 태양광 발전은 풍력 발전보다 효율이 높다는 점에서 고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최근 미국 내 건설 현장의 태양광 모듈 수요 증가와 연관이 있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또 중국 태양광 업체는 현재 미국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관세 폭탄’을 투하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말레이시아·캄보디아·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에서 생산된 태양광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AD)를 최고 관세율 271.28%, 상계 관세(CVD)를 최고 관세율 3529.33%로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업체 차입금 등 재무 구조 개선 과제
이 4개국엔 중국의 세계 최대 규모 태양광 부문 제조사인 징코솔라와 트리나솔라, 후넌솔라 등의 공장이 있어 사실상 이들을 겨냥한 관세다. 다음 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이를 최종 확정할 경우 K태양광은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게 될 전망이다. 미 상무부가 말레이시아에 태양광 셀 공장을 둔 한화큐셀엔 반덤핑 관련 무혐의로 관세율을 14.64%만 책정한 데다, OCI홀딩스도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OCI엔터프라이즈를 둔 덕에 보호받을 가능성이 커서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업체 재고에도 관세를 소급 적용하기 때문에 과잉 공급 가능성 역시 작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화솔루션은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서 짓고 있는 공장이 마무리 단계로 연내 가동에 나선다는 목표다. 미국 내에서 한화솔루션처럼 대규모 설비에 기반을 두고 제조부터 판매·설치까지 할 수 있도록 수직 계열화한 태양광 업체는 드문 만큼 향후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과제는 재무 구조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장기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차입금만 13조원이 넘어 이자 부담이 큰 상황이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유휴 부지 매각 등으로 자산 유동화에 힘쓰고 있다”며 “태양광 사업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모듈 재고가 빠르게 소진될 경우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