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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지난 4월 22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택에서 김장하 선생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효상 기자


[주간경향] “평생을 팬심으로 생각해왔던 이분을 알리고 싶었다.”

김주완 기자에게 김장하 선생 취재는 30년 기자생활 내내 간직한 과업처럼 보였다. 2년차 기자였던 1991년 처음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바로 퇴짜 맞았다. 그해 김장하 선생은 사재를 털어 설립한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막연히 ‘부자가 좋은 일 하는구나’ 싶었는데, 인터뷰 거절이 오히려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후 김장하 선생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놀라웠다. 학교 헌납 훨씬 전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더라, 1989년 전교조 해직 사태에도 전교조 교사를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더라, 차도 없고 일하는 한약방 3층에서 산다더라. 그런데 언론에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이후에도 인터뷰를 요청하길 몇 차례, 돌아오는 것은 “그런 거 안 합니다”라는 퉁명스러운 답변이었다.

그가 그때 포기했다면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는 경남 진주 안팎에서 아는 사람들에게만 구전되는 설화로 남았을지 모른다. 김 기자는 인터뷰를 사양하는 김장하 선생을 두고 주변인을 공략했다. 2015년부터 취재한 사람만 150명 가까이 된다. 2021년 정년을 3년 앞두고 경남도민일보를 조기 퇴직한 이유 중 하나도 김장하 선생을 더 잘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2023년 김장하 선생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피플파워)가 나왔다. 이 책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차트를 역주행 중이다. 재고가 동나 지난 4월 4일 이후 3주 만에 2만5000부를 더 찍었다. 시민들을 이 책으로 이끈 건 탄핵심판에서 주문을 읽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다. 김장하 선생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친 문 전 재판관은 2019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살아가는 것은 그분(김장하 선생) 말씀을 실천하는 것,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저는 살아왔습니다”라고 했다.

그 자체로도 값졌던 <줬으면 그만이지>는 대통령 탄핵심판을 거치면서 새로운 서사를 추가했다. “어떤 사람의 선한 의지가 세월이 지나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것”(김주완 기자)이다. 김 기자는 퇴짜만 맞았을 뿐 별다른 인연이 없었는데도 김장하 선생을 기자생활 내내 지표로 삼았다고 한다. 유혹이 일 때마다 ‘김장하 선생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삼갔다. 그렇게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썼고, 그를 삶의 잣대로 삼은 재판관이 책을 더 널리 알렸다. 김장하 선생의 삶이 누군가의 귀감이 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 김주완 기자를 지난 4월 22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택에서 만나 김장하 선생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장하 선생은 2021년 12월 장학사업 등을 벌인 재단법인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 34억 5000만원을 경상국립대로 이관했다. 경상국립대가 연 ‘재산 수증증서 전달식’에서 김장하 선생(왼쪽 두 번째)과 김주완 기자와 악수하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이 전달식을 두고 “버렸으면 미련 없이 버려야지. 줬으면 그만이지. 감사패 그거 뭐 하려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주완 기자 제공


-김장하 선생의 <줬으면 그만이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김현지 PD 연출·김주완 기자 출연)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다. 그간 인터뷰를 거절하시지 않았나.

“다큐와 책이 나온 직후에 김장하 선생을 찾아뵀다. 김현지 PD가 ‘처음에 허락 안 하셨지만, 중간에는 책과 다큐 준비하는 걸 아셨잖아요. 왜 묵인하신 거예요’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김 국장(김주완 기자는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이 허튼짓은 안 할 거로 믿었지’라고 하시더라”

-허튼짓?

“선생을 미화하거나 왜곡하거나 그렇게 안 할 거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저도 그렇고 김현지 PD도 그렇고 미화하지 않고 좀 건조하게 만들려고 조심을 했다. 김현지 PD는 웅장한 느낌 없이 하려고 다큐 배경음악에도 현악기는 일절 쓰지 말라고 했다더라.”

-자신의 이야기가 최근 다시 화제가 되는 것도 김장하 선생이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어제(4월 21일) 전화로 ‘요즘 관심이 쏟아지니까 불편하시지예’ 했더니 ‘아이고, 마’ 한마디 하시더라. 그 말에 다 표현이 된다.”

책과 다큐에 대해 김장하 선생은 ‘좋다, 나쁘다’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다큐 내용 중 김장하 선생의 남성당한약방이 잘될 때는 하루 800제까지 지었다는 주변인의 언급이 짧게 나오는데, 이 대목을 두고 “800제까진 아니었다”고 한마디 했다고. 거꾸로 말하면 책에 실린 선행 대부분은 사실에 부합한다는 얘기다.

-책에 기자생활의 지표로 두 분이 언급된다. 어머니와 김장하 선생이다. 그 정도로 인상 깊었나.

“기자생활하다 보면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은근히 언론에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분은 정말로 노출이 안 되려고 하더라. 언론만 멀리하는 게 아니고 권력자, 정치인도 멀리했다.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으면 그 이미지를 표로 바꾸려고 가장 먼저 정치인들이 접근한다. 왜 멀리할까 생각해봤는데, 선행도 권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언론과 권력과 친하게 되면 권력화될 수 있다. 지역민들이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해도 ‘저 사람 통하면 되겠네’ 생각할 수 있다.”

한 차례 예외도 있었다고 한다. 김장하 선생이 경남지역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을 지낸 정치인과 따로 찻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정치인이 그날 만남을 사진으로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후일 ‘왜 만났느냐’는 질문에 김장하 선생은 “선거 못 나오잖아”라고 답했다고 한다. 해당 정치인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였다.

-여러 차례 거절에도 취재를 계속했다.

“개인적 인연은 없었는데 취재하기 전부터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다. 기자생활하다 보면 이런저런 유혹도 있는데 그때마다 김장하 선생이 생각나더라. 내가 이렇게 하면 김장하 선생께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살아가는 데 나침반처럼 작용했다.”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한 장면.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 곁에서 취재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캡처


-요청을 주로 거절당한 입장 아닌가.

“1999년에 경남도민일보를 시민주주신문으로 창간했는데, 기자들도 일일이 주주를 모집하러 다녔다. 일면식 없이 김장하 선생을 찾아갔다. 김장하 선생은 진주신문을 지원하실 때였는데 ‘저는 지금 진주신문 하나만으로도 버겁습니다’라고 하셨다. ‘진주신문 잘 돌봐주십시오’ 하고 나왔다. 그런 사람 많다. 취재하면서 도움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선생을 지표로 삼은 사람들 많이 만났다.”

-취재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 초반부를 보면 김 기자와 김장하 선생이 걷는데 침묵이 숨 막힌다. 취재를 거부하는 취재원을 취재하며 어려움 없었나.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하고 서먹서먹하고 불안하고 그랬다. 질문을 드려도 답을 안 하면 화가 나셨나, 내가 잘못된 질문을 한 것인가, 화제를 돌릴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15년부터 선생 주변 사람들이 내가 취재하는 걸 알고 선생이 나타나는 자리에 나를 끼워줬다. 자주 얼굴 뵙고 하니까 언제부턴가 선생이 웃음을 지으면서 악수를 청하시더라. 그때 조금 편해졌다. 그때는 나도 선생님 스타일을 알아서 누굴 도와줬는지 묻지 않고 주로 주변 이야기했다.”

-7년을 취재했다. 김장하 정신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장하 선생과 닮은 사람을 꼽는다면 백촌 강상호 선생이다. 강상호 선생은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사람을 위해 가진 재산과 삶을 통째 바치고, 묫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돌아가셨다. 김장하 선생은 한결같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존중하고, 말로써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공부하고 책 읽는 사람이다.”

진주의 독립운동가 강상호 선생은 1923년 천대받던 백정의 신분 해방을 위해 형평사를 조직했다. “인간은 저울처럼 평등하다”며 백정 아이들을 양자로 들여 학업을 지원했고, 재산을 형평운동에 쏟았다. 사후 묘비도 없이 길가에 묻혔는데 나중에 이름 없는 시민의 성금으로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 뒷면에는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김 기자의 취재 결과 그 시민은 김장하 선생이었다.

-김장하 선생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했는데 그중에서도 형평운동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 같다.

“선생이 해왔던 말이나 활동해온 공간을 보면 관통하는 큰 줄기는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선생은 평등이란 단어도 잘 쓰지 않고 ‘사람은 다 똑같다’고 얘기한다. ‘사람은 다 똑같은 존재’라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돈 좀 있다고 돈 없는 사람 차별하는 것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들 이야기 중 문형배 전 재판관의 비중이 크다. ‘김장하 과’라고도 했다. 닮은 점이 있나.

“느껴지는 포스가 비슷하다. 두 분 다 말도 조용조용히 한다. 끊임없이 책 읽고 부족함을 채우려는 모습도 닮았다. 표를 안 내니 다들 잘 모르지만, 문형배 전 재판관도 여기저기 사람들을 많이 도운 것으로 안다. 본인을 부각하지 않고 공을 돌리는 것도 닮았다. 문 재판관이 ‘제가 살아가는 것은 김장하 선생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면, 젊어서 김장하 선생은 웃어른들의 칭찬에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했을 뿐이지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한다.”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한 장면 /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캡처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은 어떻게 보셨나.

“선고가 늦어지는 과정에서 나도 그랬고 김장하 선생도 마음을 졸였다. 김장하 선생은 결과에 대한 걱정보다는 문형배 재판관이 ‘마음고생 심하겠구나’ 걱정을 하시더라. 김장하 선생은 한창 춥던 지난해 12월에도 탄핵 집회에 나왔다.”

-경남도민일보 등에 있으면서 비판적인 탐사보도를 주로 했다. 특정 인물을 조명하는 <풍운아 채현국>, <줬으면 그만이지>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신문에 연재한 기사를 보완해서 처음 쓴 책이 <토호세력의 뿌리>였다. 해방 직후부터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토호들의 과거까지 파헤친 책이다. 그런데 토호들이 죽으면 새로운 토호들이 출몰하더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정권 교체가 됐는데, 저쪽에 붙었던 토호들이 일제히 민주당 쪽으로 붙더라. 내가 뭘 해봐도 바뀌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언론은 그런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과 더불어서, 채현국 선생이나 김장하 선생 같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분들을 발굴해 알리는 것도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언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다.”

-한편으로 이 취재는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에 김장하 선생 같은 분이 있어도 소위 중앙 언론이 취재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라면 찾는 것 자체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지역 기자라도 회사 안에 있었다면 못 썼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6000명 넘는 시민이 주주가 돼 만든 경남도민일보에 몸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생각한다. 지역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언론사에 있었다면 채현국 선생도, 김장하 선생도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다.”

-책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바란 점이 있다면.

“처음엔 세상에 이런 분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과 다큐에 대한 사람들 반응을 보니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이 없는 시절인데 이 사람이 살아온 길을 그냥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고 한다.”

-어떤 지점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하던가.

“한 장학생이 찾아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사람이 못 됐습니다’라고 하자 김장하 선생이 ‘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 말에 사람들이 굉장히 위로를 받은 것 같다. 항상 내가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더 큰 걸 이뤄야 하고, 더 많은 걸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교롭게 채현국 선생도 늘 얘기했다. ‘시시하게 살아라’, ‘소박하게 살아라’라고.”

고 채현국 선생은 사업을 해 번 돈으로 무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후원했다. 이후 권력과 얽힐 것을 우려해 사업을 정리하고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김 기자는 2015년 채현국 선생을 인터뷰해 책 <풍운아 채현국>을 펴냈다.

-책에서 김장하 선생의 삶을 얘기하면서 알프레드 아들러의 ‘공헌감’을 얘기한다. 아들러는 공헌감이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가장 높은 단계라고 했다. 김 기자도 기자생활하면서 공헌감을 느꼈나.

“김장하 선생 이야기를 통해서 요즘 제일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도 내가 우리 사회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일을 했구나.”

-김장하 선생에 대한 지금의 큰 관심이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

“취재하면서 스스로 내면의 공부를 했다.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김장하 선생의 영향을 받아서 내면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김장하 선생이 많은 사람을 돕고 선행을 베풀고 큰돈을 기부한 것만 부각되는 것 같은데, 더 중요한 것은 선생이 살아온 삶의 태도라고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1000명 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선생께 좋은 말씀 하나 해달라고 졸라서 받은 말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한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인데, 이것 하나만 실천해도 세상에서 싸울 일 없겠다 싶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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