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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베트남전쟁 정보전
오는 30일은 남베트남 패망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미국에도 큰 상처를 남긴 남베트남 패망은 남북으로 대치 중인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정보전 실패는 국가 패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 누구도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이 패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나, 미국과 남베트남의 총체적인 정보 실패가 패망의 원인으로 이어졌다. 남베트남 패망사(史)를 따라가다 보면 그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가장 치명적인 정보 실패는 베트남전의 흐름을 바꿔 놓은 북베트남과 베트콩에 의한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 정보수집 실패였다. 1968년 1월 베트남 전역은 여느 해처럼 민족 최대 명절인 1월 30일 구정(음력 설날)을 앞두고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과거 우리 설날 명절 같았다. 그래서 남·북 베트남 정부도 전쟁을 잠시 잊고 구정 임시휴전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모든 국민이 가족과 고향을 찾아 즐거운 민족대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정이 되자, 느닷없이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임시휴전을 깨고 남베트남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게릴라 공격을 퍼부었다. 남쪽 깊숙이 위치한 사이공의 대통령궁은 물론 미 대사관과 주월 미군 사령부까지 공격했다. 민간 복장으로 위장한 베트콩들이 앞장섰다. 미군과 남베트남은 공산세력의 위장 전술에 일격을 당했다.

민족 최대 명절에 휴전 파기 허 찔려
1968년 1월 북베트남 게릴라 베트콩에 의해 남베트남 후방 깊숙이 위치한 사이공 주재 미국 대사관까지 공격 당했다. 당시 전투로 큰 구멍이 뚫린 미국 대사관 담장. [중앙포토]
다행히 구정 대공세는 미군에 의해 곧 진압됐다. 그러나 그 파장은 컸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후방의 대통령궁과 미군 사령부 등이 공격당하면서 남베트남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특히 미국의 승리를 낙관하던 국제 여론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구정 대공세 계기로 미국 내 반전 여론이 악화하면서 그해 11월 대선을 앞둔 미 정치권이 베트남전에서 발을 빼는 것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구정 대공세는 베트남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국과 남베트남의 정보실패가 여실히 드러났다. 무엇보다 공산세력이 구정 임시휴전 합의를 깰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베트남 민족 최대 명절 기간에 휴전을 깨고 공격하는 것은 민심을 악화시키는 것이므로 그런 아둔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다. 북베트남이 남베트남 후방까지 공격할 능력도 없다고 오판했다. 남베트남 곳곳에 숨어 있는 베트콩 게릴라와 간첩들의 존재를 경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보 오판 때문에 남베트남은 구정 대공세에 관한 정보수집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미 중앙정보국(CIA)도 어이없는 실책을 범했다. 구정 대공세 두 달 전쯤인 1967년 12월 8일 CIA 사이공지부는 공산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워싱턴 CIA 본부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정보보고를 했다.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전쟁의 흐름을 바꿀 대대적인 게릴라전을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 시기는 1968년 1월 구정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됨. 이 시기가 전쟁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판단됨.”

그러나 CIA 본부는 이 정보를 백악관에 축소 보고했다. ‘정보의 신뢰성이 높지 않으니 단순 참고만 하라’고 보냈다. 당시 백악관은 군의 정보를 바탕으로 베트남 전황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CIA 본부는 군 정보와 배치되는 사이공지부의 정보를 그대로 보고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CIA 사이공지부가 구정 대공세에 대해 조기경보를 했으나 워싱턴 지휘부가 이를 경시했다.

남베트남의 방첩 정보전도 실패했다. 1955년 남베트남에 가톨릭 세력인 응오딘지엠 정부가 들어서자 북베트남은 가톨릭 신자들을 신문기자·신부 등으로 위장시켜 간첩으로 침투시켰다. 사이공 주재 타임스 기자였던 팜쑤안 안(이하 ‘안’)이 대표적이다.

북베트남은 안을 간첩으로 침투시키기 위해 먼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신분 세탁을 위해서다. 특히 CIA 사이공지부장인 에드워드 랜스데일의 추천서를 받도록 했다. 신분을 더 완벽하게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이 덕택에 1959년 귀국한 그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인사가 돼 어떤 감시와 의심도 받지 않고 남베트남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남베트남 패망 하루 전인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미 CIA 직원 숙소에서 미국인들과 남베트남인들이 탈출 헬기를 타려고 옥상으로 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 안은 미군과 남베트남의 내부정보를 입수해 북베트남에 보냈다. 이뿐만 아니다. 남베트남 정부의 무능과 부패, 미군에 의한 무차별 공중폭격의 문제점 등 반전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특종을 수십 차례 보도했다. 이 덕분에 남베트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자가 됐다.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핼버스탬과 같은 저명 기자들이 안의 도움을 받을 정도였다. 이처럼 안은 북베트남에 유리하도록 전쟁 여론을 주물렀다. 전쟁이 끝난 후 북베트남이 안에게 이례적으로 인민영웅 칭호와 장군 계급까지 부여한 것은 그의 간첩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말해 준다.

남베트남 정치권과 정부에 침투한 고정간첩들도 남베트남 패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7년 남베트남 대선 때 2위를 한 쭝딘쥬 후보 등 정치권 간첩들은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외치며 남베트남 사회의 반공 이념을 무디게 만들었다. 남베트남 합참의장 응우옌히유안과 사이공 경찰청장 찌에우꾸억마잉 등 군·경에서 암약한 간첩들은 미군 철수 후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침공했을 때 유혈 피해를 막는다며 남베트남 군·경에 저항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심지어 남베트남 티우 대통령 정치특보로 침투한 부응옥냐 신부는 북베트남군의 남베트남 대통령궁 진입 때 선두에서 안내했다. 그야말로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간첩들에게 농락당했다. CIA는 당시 북베트남 간첩이 3만 명이라고 추산했을 정도다.

미 CIA의 특수정보전도 실패했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외교나 군사력을 통한 대외문제 해결이 어려울 경우 정보전을 통해 해결한다는 소위 ‘제3전략(third option)’을 애용했다. 이에 북베트남에 대해서도 외교나 군사력 대신 내부를 분열시켜 스스로 무너지게 한다는 정보전을 추진했다. 그리고 1961년 5월 극비 국가안보행동각서 52호(NSAM-52)를 통해 실행계획을 세웠다. 북베트남 내 저항세력을 구축해 공산정권을 약화시키고, 북베트남의 베트콩 지원을 차단해 남쪽의 베트콩도 고립시킨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1961년 4월 CIA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정보작전을 감행했는데, 사전 비밀누설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에 화가 난 케네디 대통령은 느닷없이 북베트남 특수정보전을 국무부가 관리하도록 지시했다. CIA의 일방적인 작전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국무부는 피그스만 작전 실패를 의식해 CIA를 통제하는 데만 급급했다. 가령 CIA는 북베트남의 남베트콩 지원경로인 ‘호찌민 비밀루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무력화시키는 작전을 추진했다. 그런데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연결된 호찌민 비밀루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끔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국무부는 라오스·캄보디아와 외교 문제를 우려해 이를 막았다. 이 때문에 작전은 제대로 실행도 못한 채 끝났다.

세계 4위 군사력 2년도 못 버티고 패전
정보전쟁
이처럼 미국과 남베트남은 정보수집·방첩정보·특수정보전 모두 실패했다. 미국도 인정했다. 1968년 6월 백악관은 내부조사를 통해 정보 실패를 인정했고, 2012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도 베트남전 정보 실패를 미국의 10대 정보 실패로 평가했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한 남베트남의 안보정책도 아쉬움이 남는다. 1968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남베트남의 국방력을 강화시켜 스스로 지키도록 하겠다며 남베트남 철수를 결정했다. 이 정책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군사 무기를 지원받은 남베트남은 당시 군사력이 외형상 세계 4위일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나 1973년 11월 1일 미군이 완전철수하자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북베트남에게 함락당했다. 이로써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50년이 흐른 지금 베트남은 과거 상흔을 잊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에게 남베트남 패망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거울이다. 50년 전 남·북 베트남 민족 대결이 현재의 남북한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남베트남 패망 50주년을 맞아 ‘우리 안보는 안녕한가’ 다시 묻게 되는 이유이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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