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라
‘누가 최고인가’라는 질문은 논쟁적이다. 그러니 ‘역사상 최고’라는 뜻의 ‘GOAT’(Greatest of All Time) 역시 논쟁의 단어. 축구의 메시, 농구의 조던,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는 큰 논쟁 없이 GOAT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GOAT는 오직 선택받은 자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거나 시대와 불화한다면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연이 닿지 않을 수 있다. 8개의 발롱도르를 거머쥔 메시 역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기 전까지 그를 GOAT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구는 이 배금주의 시대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니.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여전히 자본의 지배 밖에 있다. 모든 경쟁과 변수를 다 뛰어넘은 이에게만 주어지는 ‘역사상 최고’라는 왕관을 쓰는 일은 혹독하게도 어렵다.
다행히 ‘최고’란 말은 누구나 쉽게 꺼내 쓰는 단어다. 우리는 수시로 ‘네가 최고야’란 말을 주고받는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네가 최고야”라는 말이 더 간절할 때가 있으니까. 호들갑과 주접이 취미인 나는 ‘최고’라는 말로 표현의 선명도를 높인다. 최고 맛있어, 최고의 설렁탕, 최고의 케이크! 하지만 이렇게 아무 데나 최고를 뿌려대는 나도 ‘역사상 최고’를 말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 말만큼은 함부로 사용하기가 면구하다. 메릴 스트리프나 김연아 선수를 수식하는 존귀한 말을 아무 데나 붙일 순 없지 않은가.
‘역사상 최고’. 위엄과 존엄이 공존하는 이 키워드가 일본에선 2025년 최고의 ‘히트’ 키워드로 떠올랐다. 일본처럼 겸손과 겸양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역사상 최고’라는 말을 쓴다고? 의심의 눈초리로 기사를 읽어보니 ‘역사상’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자신의 역사상 최고’. 이 언어가 트렌드로 선정되는 데 일조한 만화책이 있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귀여운 규칙>은 SNS 때문에 외모지상주의가 심해진 일본의 초등학생들에게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기준’을 중심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어른들에게도 큰 공감을 받으며 2024년에 판매 부수가 급격히 늘었다.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나만의 규칙.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 중 내가 이보다 더 따르고 싶었던 규칙이 있었을까? 스코어나 타이틀 없이 그저 나 자신의 역사상 최고인 순간을 만끽하는 태도가 내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모른다. 고유함은 ‘남다름’으로, 생존은 ‘앞서감’으로 읽히고 쓰이는 자유경쟁 사회에서, ‘나의 기준’으로 나를 사랑해주라는 그 제안은 너무 달콤하다. 어차피 결국은 또 남다르기 위해, 앞서가기 위해서 질주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걸 알기에 더 위로된다. 그 달콤함에 잠깐 속고 싶어진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메타인지’와 ‘자기 객관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성공 방식’을 잠시 잊고 가끔은 내가 ‘자신의 역사상 최고’라는 감각에 흠뻑 빠지고 싶다.
가끔은 “네가 최고야”라는 말이 “사랑해”란 말보다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건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말보다, 오늘의 나는 내 역사상 최고라고 말해주는 것.
메시나 조던이 아니어도, 팀의 MVP나 분야의 톱이 아니어도 누구나 자기 인생의 GOAT가 될 수 있다. 민망해하지 말아야지. 그게 올해의 트렌드니까.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누가 최고인가’라는 질문은 논쟁적이다. 그러니 ‘역사상 최고’라는 뜻의 ‘GOAT’(Greatest of All Time) 역시 논쟁의 단어. 축구의 메시, 농구의 조던,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는 큰 논쟁 없이 GOAT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GOAT는 오직 선택받은 자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거나 시대와 불화한다면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연이 닿지 않을 수 있다. 8개의 발롱도르를 거머쥔 메시 역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기 전까지 그를 GOAT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구는 이 배금주의 시대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니.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여전히 자본의 지배 밖에 있다. 모든 경쟁과 변수를 다 뛰어넘은 이에게만 주어지는 ‘역사상 최고’라는 왕관을 쓰는 일은 혹독하게도 어렵다.
다행히 ‘최고’란 말은 누구나 쉽게 꺼내 쓰는 단어다. 우리는 수시로 ‘네가 최고야’란 말을 주고받는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네가 최고야”라는 말이 더 간절할 때가 있으니까. 호들갑과 주접이 취미인 나는 ‘최고’라는 말로 표현의 선명도를 높인다. 최고 맛있어, 최고의 설렁탕, 최고의 케이크! 하지만 이렇게 아무 데나 최고를 뿌려대는 나도 ‘역사상 최고’를 말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 말만큼은 함부로 사용하기가 면구하다. 메릴 스트리프나 김연아 선수를 수식하는 존귀한 말을 아무 데나 붙일 순 없지 않은가.
‘역사상 최고’. 위엄과 존엄이 공존하는 이 키워드가 일본에선 2025년 최고의 ‘히트’ 키워드로 떠올랐다. 일본처럼 겸손과 겸양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역사상 최고’라는 말을 쓴다고? 의심의 눈초리로 기사를 읽어보니 ‘역사상’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자신의 역사상 최고’. 이 언어가 트렌드로 선정되는 데 일조한 만화책이 있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귀여운 규칙>은 SNS 때문에 외모지상주의가 심해진 일본의 초등학생들에게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기준’을 중심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어른들에게도 큰 공감을 받으며 2024년에 판매 부수가 급격히 늘었다.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나만의 규칙.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 중 내가 이보다 더 따르고 싶었던 규칙이 있었을까? 스코어나 타이틀 없이 그저 나 자신의 역사상 최고인 순간을 만끽하는 태도가 내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모른다. 고유함은 ‘남다름’으로, 생존은 ‘앞서감’으로 읽히고 쓰이는 자유경쟁 사회에서, ‘나의 기준’으로 나를 사랑해주라는 그 제안은 너무 달콤하다. 어차피 결국은 또 남다르기 위해, 앞서가기 위해서 질주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걸 알기에 더 위로된다. 그 달콤함에 잠깐 속고 싶어진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메타인지’와 ‘자기 객관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성공 방식’을 잠시 잊고 가끔은 내가 ‘자신의 역사상 최고’라는 감각에 흠뻑 빠지고 싶다.
가끔은 “네가 최고야”라는 말이 “사랑해”란 말보다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건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말보다, 오늘의 나는 내 역사상 최고라고 말해주는 것.
메시나 조던이 아니어도, 팀의 MVP나 분야의 톱이 아니어도 누구나 자기 인생의 GOAT가 될 수 있다. 민망해하지 말아야지. 그게 올해의 트렌드니까.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