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연금개혁을 요구하는 국회의원’ 긴급 기자회견 / 2025.3.23 국회 소통관 (왼쪽부터 전용기, 이소영, 이주영, 천하람, 장철민, 우재준, 김재섭 의원)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혁 논의는 18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노인 빈곤과 미래 세대 부담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청년이 더 유리하다! 사각지대 없애는 416 개혁안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대한민국의 '대왕고래'는 동해가 아닌 국민연금에 있다? ⑤ MBK식 '돈 넣고 돈 먹기'가 국민연금의 투자 원칙인가 ⑥ 1,200조 원 기금 '셀프 감독'…2년째 공석인 기금 위원 ⑦ '꿀 빤 세대'는 누구?…구조개혁,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망한다’ ⑧ 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연금개혁 시리즈 기사를 쓰는 동안 국민연금 모수개혁이 드디어 성사됐다. 18년 만에 모수개혁에 성공한 것이다. 보험료는 25년 동안 묶여 있다가 이번에 13%로 올랐고, 소득대체율도 43%로 소폭 높아졌다. 21대 국회 '연금 개혁 공론화 위원회'에서 시민들이 원했던 50% 수준은 아니지만 이른바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의 방향성은 살렸다.
그러나 이후 청년 세대들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연기금 고갈 시점만 10년 정도 늦춰졌을 뿐, 미래세대의 불안은 여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앞 세대보다 청년 세대가 불리한 연금제도를 갖게 됐다고 분노하는 목소리도 일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연금 가입자들끼리 다툴 때가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구조개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중요하다.
■ 이준석 의원 "657만 원 내고 1억 넘게 받은 국민연금 가입자"
최근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보험료 657만 원을 내고 노령연금을 1억 1,800만 원 넘게 받는 국민연금 가입자 사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제도가 미래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폰지 사기’라고 비난했다. 이렇게 증거까지 공개하면서 한 발언이니까 이른바 ‘팩트’는 틀리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러나 같은 팩트를 다르게 정리하면 느낌은 많이 변할 수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SNS에 공개한 국민연금 수급 확인서
우선 사례자는 2001년부터 연금을 탄 것으로 보아 194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분이 48살이 됐을 때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도입됐고 그 당시에는 월급이 많아 봐야 수십만 원이었던 시기였다. 또 이때는 만 60세 이후부터 연금을 수급할 수 있었으니 23년 동안 1억 1,800만 원을 받아 간 것도 사실일 것이다.
수급액을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이분은 한 달에 약 40만 원을 노후 소득으로 받은 셈이다. 이분의 아내가 국민연금이 없다면 40만 원은 부부가 함께 써야 하는 소득이다. 현재 기초연금을 받고 계시더라도 아마 다른 재산이나 자녀들의 도움이 없다면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에 매우 팍팍한 생활비이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 보험료는 3% (이때부터 9%까지 올린다는 계획은 가지고 있었음)였고, 소득대체율은 70%였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은행에만 예금해도 10%씩 이자가 붙던 시절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또 그렇게 후한 제도로 가입했지만 그렇다고 이분의 노후 소득이 그리 환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폰지 사기' 연금 피해자는 국민연금, 가해자는 정부
이런 보험료와 수급액의 엄청난 차이는 누가 만들었나? 1988년 처음 도입된 국민연금 제도를 반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월급에서 강제로 돈을 떼가고 환갑 넘어서 찾아가라고 하니, 참 긴가민가했던 시절이다. 그냥 또 다른 형태의 세금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이처럼 국민들이 연금을 꺼리니 정부는 제도를 빨리 정착시키기 위해 당근책이 필요했다. 보험료는 낮게 소득대체율은 높게. 특히 이준석 의원이 공개한 사례자처럼 도입 당시 이미 중년을 넘긴 사람들을 위해 특혜를 줬다. 지금처럼 최소 가입 기간을 10년이 아니라 5년으로 줄여준 것이다.
이런 당근책을 만든 주체는 정부였다. 그런데 정부는 연금 가입자에게 특혜를 베풀고, 정부 재정은 국민연금에 넘겨주지 않았다. 그저 기금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 셈이다. 앞의 사례자처럼 8년 정도 보험료를 내고 23년 동안 연금을 받아 가고 있으니, 국민연금은 억울하다. 정부는 생색만 내고 돈을 주지 않았으니 이렇게 쌓인 적자는 연기금 고갈을 앞당긴다. 현 보건복지부의 시각처럼 국민연금 부실이 가입자들의 문제라면 정부는 오랫동안 연기금에 끼친 손해를 빨리 갚아야 한다.
크레딧 제도의 확대는 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는 방법이다. 자료:국민연금공단 홍보 사진
정부는 정책적 목적으로 군복무나 출산 크레딧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보험료 지원에 연기금이 돈을 내도록 하고, 그마저도 실제 연금급여는 만 65세가 될 때 받도록 해 미래 정부와 국민연금에 빚을 떠넘기고 있다. 또 IMF 이전까지 연기금을 정부가 공공사업에 갖다 쓴 것도 국민연금 입장에선 손해일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은 고령화 저출산의 영향만 있는 게 아니고 정부가 꾸준히 써야 했을 복지 재정을 연기금에 떠넘긴 것이 한몫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폰지 사기’라면 연금 제도를 만들고 부실하게 운영한 정부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 소위 '꿀 빤' 사람은 있을지언정 ‘꿀 빤 세대’는 없다
현재 국민연금의 평균 연금 수급액은 약 6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연금만으로 적정 노후소득을 얻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과연 청년 세대가 부러워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앞 세대는 과연 '폰지 사기'란 말을 들을 정도로 후한 연금을 확보했을까?
국민연금 혜택 없는 노인들이 대거 ‘폐지 줍기’에 나섰다.
먼저 청년세대가 부러워하는 앞 세대가 40~50년대생은 설마 아닐 것이다. 이들 중에는 보험료 3~9%를 내고 50~60% 수준의 연금을 받는 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일 때 태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할 젊은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럼 '86세대' 등 2차 베이비부머인 60~70년대생을 부럽다고 할만한 젊은이들은 있을 수 있다. 지금 젊은 세대보다 고도 성장기를 살았고 취업도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제도만 놓고 보면 이들도 매우 피곤한 세대이다. 연금 혜택이 없는 부모 세대에게 연금보험료 이상의 용돈을 드려야 했고, 자신의 노후는 자식 세대에게 기대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중 부담'이라고 한다. 이들이 자식 세대에게 쓴 교육비까지 고려하면 평균적으로 풍족한 노후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김용하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순천향대 교수)
지금껏 국민연금 개혁 논의 때마다 재정안정 쪽에서 좌장 역할을 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은 사회제도인데 금융상품처럼 낸 돈과 받는 돈을 계산하고 세대 간 유불리를 따지는 풍조를 우려했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국민연금 제도로 소위 '꿀을 빤 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연금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를 걱정한다며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동조정장치 도입으로 앞세대의 연금액을 깎으면 청년세대가 미래에 받을 수 있는 연금도 줄게 돼 제 발등 찍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용하 교수도 아직 제도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는 국민연금에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 명목 말고 실질 소득대체율이 관건... 설계도만 보고 '갑론을박' 소모전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제도가 애초에 설계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낸 보험료와 나중에 받을 연금 급여(소득대체율)를 가지고 세대 간 비교를 하는데, 이때 쓰이는 수치는 설계도, 즉 명목 소득대체율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실제 급여액은 명목 소득대체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앞세대 연금이 매우 좋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 빈곤 문제에 처한 상태이니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1988년 정부는 '전 국민 행복시대'를 약속하며 국민연금을 설계하고 시행했지만,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
1. 실질 소득대체율은 25% : 직전 국민연금은 9%를 내고 40% 소득대체율을 보장한다. 이는 40년 가입했을 때이다. 그러나 2020년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4.2%였다. 한국의 고용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국민연금 제도가 성숙해도 실질 소득대체율이 크게 향상하지 못하고 있다. 2. OECD 부동의 1위 노인빈곤율 : 한국의 공적연금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1위(40%)이다. 2023년 나온 보고서에서 OECD 평균 노인빈곤율은 14% 수준이다. 3. 1,000만 명 넘는 사각지대 : 18~59세 인구의 약 34%에 해당하는 1,034만 명이 연금제도 밖에 존재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인이 된 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제도가 아무리 공평하게 개혁돼도 사각지대가 이렇게 클 경우 청년세대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하다.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이들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
결국 40년 동안 연금에 가입해 얻을 수 있는 명목소득대체율만 비교해서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유불리를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실질 소득대체율을 명목 소득대체율 수준으로 높이는 게 청년 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
여야 합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대학생들 2025. 3. 24 국회 소통관
군복무와 출산 크레딧 등은 보험료 지원 대상이 대부분 청년 세대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국가가 복지제도를 넓혀, 젊었을 때 연금 보험료를 지원해 국민들의 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는 조치가 필요하다. 연금급여를 늘리는 건 소득 수준만큼 '가입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구조개혁이 중요한 이유이다.
■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국민연금, 기금 고갈 막을 대책은 정부가 마련해야
우선 국민연금은 재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공적연금이다. 이미 부과식 연금으로 전환된 연금 선진국들은 우리와 같은 연기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구 고령화가 곧바로 국가의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부양비로 GDP의 10% 이상을 쓰는 나라가 수두룩하다. 한국은 아직 노인부양비로 GDP의 3.3%만을 쓰고 있다.
한국은 1,200조 원에 달하는 연기금도 가지고 있다. 이는 GDP 기준으로 세계 1등이다. 이번 모수 개혁으로 기금 고갈 시기도 늦춰져 40년 이상 여유가 있다. 남은 숙제는 고령화 저출생이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다는 건데, 연금제도의 신뢰를 높일 만한 구조개혁안을 지금 잘 만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GDP 대비 세계 1위 적립금을 보유한 국민연금 / 자료: 국민연금공단 기금 현황 (2024년 말 기준)
소득보장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정한 시기에 연기금 고갈을 받아들이고 부과식 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불필요하게 막대한 돈을 쌓아 놓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대전을 겪은 독일이 그랬다.
문제는 한국의 고령화 저출생이 세계사적으로 심한데, 한국 국민이 정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각자도생의 문화가 점점 더 퍼지고 있다. 많은 청년 세대가 국민연금은 기금이 고갈되면서 함께 파산하거나,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온 게 국고 투입이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정부가 GDP의 1%에 해당하는 국고를 2030년부터 연금에 투입하면 연기금을 100년 이상 고갈되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럴 경우 연기금이 3,000조 원 수준으로 유지된다. 연기금을 국부펀드처럼 계속 보유해 기금이 벌어들이는 수익금을 국민연금에 계속 기여하도록 만들면 한국이 가장 적은 보험료로 가성비 좋은 공적연금을 유지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선택이 남았다. 앞으로 있을 구조개혁에 국민이 원하는 바를 잘 고려해 국회와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함께' 원하면 안 될 일이 없다. 이번 연금 개혁을 통해 모수 조정과 함께 '정부의 지급 보장'을 국민연금법에 명문화한 것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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