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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의 노동]①용접공 김희재
호기심 많던 청년, 취업난에 좌절 거듭
용접 배우며 방황의 시간 끝내고 정착
"용접은 양심, 1mm 오차도 허락 못 해"
"가족 위해 초심 잃지 않는 용접공 될 것"

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용접은 한마디로 '양심'이죠. 겉에서 안 보인다고 용접 대충 하면 거대한 배가 멈춰 서거든요. 용접의 불꽃으로 방황을 끝냈고 예쁜 가정도 꾸렸습니다. 양심 지키는 용접공으로 살아가는 것, 저의 꿈입니다.

8년 차 용접공 김희재(32)씨에게 용접의 의미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학창시절 테너 색소폰을 연주했던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다. 과학과 운동을 좋아해 대학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많은 청춘이 그러하듯 희재씨도 높은 취업 문턱에서 넘어지고 좌절했다.

방황의 끝에서 그를 구해준 것이 용접이었다. 용접을 배우면서 기술인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됐다는 희재씨. 그의 작업복에선 한 사람의 남편으로, 곧 태어날 한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채취가 은은하게 배어 났다.

용접공의 자부심 "1mm 오차도 허락할 수 없다"

8년 차 용접공 김희재(32)씨가 경기 시흥에 위치한 LNG 선박 부품 공장에서 용접을 하는 모습. 송주용 기자


희재씨는 경기 시흥 소재 제조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대형 선박 내부에 탑재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배관을 용접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지난 6일 희재씨를 만나 작업장을 둘러보니 양팔을 가득 벌려 두 바퀴 정도를 돌아야 안을 수 있는 큰 원통형 배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희재씨는 "이 배관을 만들려면 팀원 세 명이 붙어서 용접을 해야 한다. 작은 오차도 허락되지 않아 팀워크가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배관 부품을 들고 용접기구 앞에 앉았다. 동그란 안경에 정돈된 말투, 깔끔한 인상의 희재씨가 주황색 보호구를 착용하고 용접기구 앞에 앉자 그 모습이 사뭇 낯설었다. 용접봉을 쥐고 불꽃을 튀기던 그는 "만약 용접한 부품에 문제가 있다면 그 부품이 들어간 배를 전부 다 뜯어내야 한다"며 "그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단 1mm 용접 오차도 허락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희재씨가 일하는 '생산팀 LNG반'은 LNG 선박에 들어가는 여러 부품을 만든다. 희재씨는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서울에서 경기 시흥으로 출근한다. 오전 6시 30분 기상해 7시 무렵 집을 나선다. 회사에 도착하면 간단한 아침조회로 작업지시를 받고, 특이사항이나 주의사항은 별도로 공지를 받는다.

희재씨와 함께 일하는 반원은 총 13명. 희재씨는 그중에서도 허리 역할을 하는 중간연차다. 위로 선배가 9명, 아래로 후배가 3명 더 있다. 그는 "작업에선 무엇보다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을 하며 생기는 팀원 간 마찰이나 오해를 풀어내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식사는 보통 반원들과 함께 하는데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혼밥을 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진행된 사무실에 희재씨의 선배 노동자 두 명이 앉아있었는데, 희재씨가 곧장 "물론 함께 일하는 반원들이 다 좋은 분들만 있다"고 말해 함께 웃었다. 직장인의 삶은 어디서든 똑같은 듯싶었다.

용접으로 끝낸 방황의 시간

희재씨가 LNG 선박에 들어가는 배관의 용접 부위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용접에선 단 1mm의 오차도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희재씨가 용접공의 길로 접어든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학창 시절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교내 관악단에서 활동하며 테너 색소폰을 연주했다. 운동회 날,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앞에서 오프닝 무대를 열었던 날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추억이다.

잔잔했던 그의 삶은 어른이 된 뒤 조금씩 흔들렸다. 군 제대 후 대학 전공인 스포츠과학 관련 취업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뉴스로만 보던 청년 실업자가 된 희재씨는 방황했다. 큰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삶의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희재씨는 "스무 살이 되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로 고민이 많았다.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힘든 시간을 몇 개월 동안 보냈다"고 회상했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희재씨는 문득 군 입대 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공사장이 생각났다고 한다. 벽돌을 나르고 흙을 퍼 올리는 현장 노동, 속칭 막노동을 했는데 공사 현장에서 불똥을 떨어트리며 일하던 용접공 모습이 떠오른 것.

희재씨는 "뭔지 모를 장구를 착용하고 진지하게 일하는 용접공 모습을 보면서 막연히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참 진로 고민이 많을 때 나도 그런 용접공이 되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민 끝에 직업학교 문을 두드렸다. 생전 처음 잡아본 용접봉과 보호구가 어색했지만 3개월 정도 교육을 받은 뒤 용접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8년 차 용접공이 됐다.

용접, 내 가족의 삶을 지켜주는 힘

희재씨는 곧 태어날 한 아이의 아빠다. 그는 아이를 위해 더 좋은 용접공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송주용 기자


그에게 용접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용접도구와 작업현장만 있다면 어디서든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신혼 5개월 차인 희재씨는 퇴근을 하면 아내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고, 산책을 한다. 아내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간식을 싸준다고 했다. 부부는 운동을 좋아해 방 한편에 헬스기구를 갖춰놓고 틈날 때마다 함께 체력을 단련하고 영어 공부도 함께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태어날 한 아이의 부모다. 희재씨는 "아내가 임신 13주 차"라며 "아기가 찾아왔을 때 너무 기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며 웃었다. 희재씨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더 좋은 용접공이 되어볼 생각이다. 그는 "20대 초반 방황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용접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며 "한 사람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용접봉을 처음 잡았을 때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희재씨는 오늘도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용접봉을 손에 쥐었다. 용접으로 누군가의 삶을 이롭게 하고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지켜내는 것. 용접공 희재씨는 오늘도 불꽃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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