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외상센터는 소외되고 약한 이들이 오는 곳
못살 것 같다가 회복하는 모습서 힘 얻어
의정 갈등에 인력난…소송 위험부터 없애야”
“어제 한숨도 안 잤어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제가 외상센터를 떠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환자입니다.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습니다. 동료와 팀원도 떠날 수 없어요.”
지난달 19일 오후 충남 천안시의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만난 허윤정(37) 교수의 얘기다. 허 교수는 2020년 3월 권역외상센터에 들어온 지 5년째 막내 의사로 지내고 있다. 그의 뒤로 외상외과 전문의가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2016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분당서울대병원 전공의 수련을 거쳐, 외과 전문의가 됐다. 외상 전문의 자격은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전문의가 세부 전공으로 외상외과를 선택해 2년간 더 수련해야 취득할 수 있다.
더 빠르고 미래도 보장되는 길이 있었을 텐데 왜 남들이 멀리하는 외상센터로 왔을까. 예상과 달리 허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 길을 택한 건 대단한 사명감이나 희생정신 때문이 아니다”며 “환자를 살리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저서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에서 “환자와 지독한 사랑에 빠져서”라고 표현했다.
단국대병원은 2014년 11월 국내 세 번째로 권역외상센터를 열었다. 충남권에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발생한 중증 외상 환자 치료를 담당한다. 충남권역외상센터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권역외상센터 평가에서 4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A등급을 받은 곳은 전국 권역외상센터 17곳 중 4곳뿐이다.
허 교수는 “아주대병원처럼 권역외상센터 시스템과 근무 환경이 잘 구축된 병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권역외상센터들이 대부분”이라며 “단국대병원이 아주대병원에 이어 상위 2위에 올랐는데, 규모가 작어도 센터 구성원들의 끈끈한 단합과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 수련의 시절, 국내 중증외상센터를 개척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당시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과장에게 외상센터 현장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허 교수는 “두 달 간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파견을 가 그곳 의료진을 보면서 외상외과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남들이 잘 안 하는 일을 하면 엄청난 희생정신이 있는 것처럼 여기거나 안쓰럽게 보지만, 그런 분야에 가면 저 자신이 돋보이는 게 더 쉽다는 걸 일찍이 알았다”며 “조금만 열심히 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고 기회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택한 것”이라고 했다.
자란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허 교수는 “아버지와 남편, 사촌 등 친인척 다수가 의사인데 모두 소위 필수의료, 기피 과로 불리는 바이탈(Vital)과에 있다는 환경도 한 몫 했다”며 “불규칙한 외상외과의 일상을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과,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의료를 행하는 과목이 바이탈 과로 불린다.
허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 생활이 하루하루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환자들에게서 힘을 얻는 덕분에 버틸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했지만 끝내 일어선 환자가 그런 힘을 줬다.
한 환자는 화물차를 운전하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목 아래 근육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그는 예상을 뒤엎고 긴 재활 생활 끝에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다. 허 교수는 “제 딸 또래의 딸을 둔 환자였다”며 “환자 스스로 소변을 생성하지 못해 투석도 오래 했는데 오줌이 처음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기뻤다”고 말했다.
허 교수가 사랑한 환자들은 대부분 힘들고 궂은 일을 하다 다친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나 하고 주변에 물었을 정도였다. 허 교수는 “위험천만한 일을 제대로 된 보호 장치 없이 목숨을 내놓고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서 온다”며 “법도 지키지 못한 소외되고 약한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곳이 외상센터“라고 말했다.
지난해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외상센터를 뒤흔들었다. 전국 외상센터 대부분 워낙 인력이 빡빡하게 운영되다 보니 한 명이라도 빠지면 시스템이 붕괴한다. 허 교수는 “특히 응급 환자 이송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원래 A 병원에 가야 할 환자인데, 의사가 A 병원을 떠나는 바람에 갑자기 갈 곳을 잃는 식이다. 갈 곳을 잃은 응급 환자와 구급대원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원칙상 중증 환자만 봐야 하는 외상센터에도 읍소를 하거나 밀고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의정 갈등으로 많은 의대생들이 전공의가 되길 포기하면서 가뜩이나 사람이 귀한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공백 위기는 더 커졌다. 외상센터는 원래 전공의가 없다. 대신 의정 갈등으로 다른 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영향을 받았다.
허 교수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는 중증 외상 환자들을 살리려면 병원의 모든 과가 달려들어야 한다”며 “외상센터에서 환자 생명줄을 붙들고 있어도 정형외과에 인력이 없어 제때 수술을 못하면 치료가 지연되고,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는 식으로 문제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의사로서 사명감만 강요할 게 아니라 노동 강도와 리스크(위험)에 합당한 대가와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필수의료를 찾는 의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의대생,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고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소송 리스크”라며 “전문의가 되려면 갈 길이 먼 그들에게까지 법적 책임과 민사 배상을 묻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외상센터는 소외되고 약한 이들이 오는 곳
못살 것 같다가 회복하는 모습서 힘 얻어
의정 갈등에 인력난…소송 위험부터 없애야”
“어제 한숨도 안 잤어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제가 외상센터를 떠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환자입니다.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습니다. 동료와 팀원도 떠날 수 없어요.”
지난달 19일 오후 충남 천안시의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만난 허윤정(37) 교수의 얘기다. 허 교수는 2020년 3월 권역외상센터에 들어온 지 5년째 막내 의사로 지내고 있다. 그의 뒤로 외상외과 전문의가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2016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분당서울대병원 전공의 수련을 거쳐, 외과 전문의가 됐다. 외상 전문의 자격은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전문의가 세부 전공으로 외상외과를 선택해 2년간 더 수련해야 취득할 수 있다.
더 빠르고 미래도 보장되는 길이 있었을 텐데 왜 남들이 멀리하는 외상센터로 왔을까. 예상과 달리 허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 길을 택한 건 대단한 사명감이나 희생정신 때문이 아니다”며 “환자를 살리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저서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에서 “환자와 지독한 사랑에 빠져서”라고 표현했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조교수(단국대 의과대학 외과학교실)는 조선비즈와 만나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필수의료 영역의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의 모습,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삶의 질을 개선해 주고 일하는 노동 강도와 리스크에 합당한 대가와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주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단국대병원
단국대병원은 2014년 11월 국내 세 번째로 권역외상센터를 열었다. 충남권에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발생한 중증 외상 환자 치료를 담당한다. 충남권역외상센터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권역외상센터 평가에서 4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A등급을 받은 곳은 전국 권역외상센터 17곳 중 4곳뿐이다.
허 교수는 “아주대병원처럼 권역외상센터 시스템과 근무 환경이 잘 구축된 병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권역외상센터들이 대부분”이라며 “단국대병원이 아주대병원에 이어 상위 2위에 올랐는데, 규모가 작어도 센터 구성원들의 끈끈한 단합과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 수련의 시절, 국내 중증외상센터를 개척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당시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과장에게 외상센터 현장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허 교수는 “두 달 간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파견을 가 그곳 의료진을 보면서 외상외과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남들이 잘 안 하는 일을 하면 엄청난 희생정신이 있는 것처럼 여기거나 안쓰럽게 보지만, 그런 분야에 가면 저 자신이 돋보이는 게 더 쉽다는 걸 일찍이 알았다”며 “조금만 열심히 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고 기회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택한 것”이라고 했다.
자란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허 교수는 “아버지와 남편, 사촌 등 친인척 다수가 의사인데 모두 소위 필수의료, 기피 과로 불리는 바이탈(Vital)과에 있다는 환경도 한 몫 했다”며 “불규칙한 외상외과의 일상을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과,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의료를 행하는 과목이 바이탈 과로 불린다.
허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 생활이 하루하루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환자들에게서 힘을 얻는 덕분에 버틸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했지만 끝내 일어선 환자가 그런 힘을 줬다.
한 환자는 화물차를 운전하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목 아래 근육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그는 예상을 뒤엎고 긴 재활 생활 끝에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다. 허 교수는 “제 딸 또래의 딸을 둔 환자였다”며 “환자 스스로 소변을 생성하지 못해 투석도 오래 했는데 오줌이 처음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기뻤다”고 말했다.
허 교수가 사랑한 환자들은 대부분 힘들고 궂은 일을 하다 다친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나 하고 주변에 물었을 정도였다. 허 교수는 “위험천만한 일을 제대로 된 보호 장치 없이 목숨을 내놓고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서 온다”며 “법도 지키지 못한 소외되고 약한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곳이 외상센터“라고 말했다.
지난해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외상센터를 뒤흔들었다. 전국 외상센터 대부분 워낙 인력이 빡빡하게 운영되다 보니 한 명이라도 빠지면 시스템이 붕괴한다. 허 교수는 “특히 응급 환자 이송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원래 A 병원에 가야 할 환자인데, 의사가 A 병원을 떠나는 바람에 갑자기 갈 곳을 잃는 식이다. 갈 곳을 잃은 응급 환자와 구급대원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원칙상 중증 환자만 봐야 하는 외상센터에도 읍소를 하거나 밀고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외상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단국대병원
의정 갈등으로 많은 의대생들이 전공의가 되길 포기하면서 가뜩이나 사람이 귀한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공백 위기는 더 커졌다. 외상센터는 원래 전공의가 없다. 대신 의정 갈등으로 다른 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영향을 받았다.
허 교수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는 중증 외상 환자들을 살리려면 병원의 모든 과가 달려들어야 한다”며 “외상센터에서 환자 생명줄을 붙들고 있어도 정형외과에 인력이 없어 제때 수술을 못하면 치료가 지연되고,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는 식으로 문제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의사로서 사명감만 강요할 게 아니라 노동 강도와 리스크(위험)에 합당한 대가와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필수의료를 찾는 의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의대생,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고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소송 리스크”라며 “전문의가 되려면 갈 길이 먼 그들에게까지 법적 책임과 민사 배상을 묻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